[사설] 집은 숫자로 짓는 게 아니다… ‘공급 대책’보다 착공부터 증명하라

정부가 또다시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놓을 태세다.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면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크지 않다.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공급 계획이 실제 집으로 얼마나 이어졌느냐다. 수십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숫자는 넘쳐났지만 정작 착공과 입주는 계획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대책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공급 관련 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은 책임은 분명하다. 노후 공공청사 복합개발이나 공공재개발 용적률 완화처럼 여야 간 이견이 상대적으로 적은 법안마저 장기간 계류시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주택시장 안정이 민생의 핵심 과제라면서 정쟁 때문에 필요한 입법을 미루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처리할 법안은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공급 부진의 원인을 국회에만 돌리는 것도 본질을 흐린다. 법이 통과된다고 다음 날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부지를 개발하려면 기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사업성을 확보해야 하며, 주민과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인허가와 기반시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과정까지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법안 통과는 공급의 출발점일 뿐 공급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가 주택정책을 지나치게 ‘숫자 경쟁’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100만 채가 넘는 공급 계획이나 수만 채의 추가 공급 발표는 당장은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착공이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면 그 숫자는 시장의 기대만 키우는 정치적 구호로 전락할 수 있다. 주택은 발표문에서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토지가 확보되고 인허가가 끝나고 첫 삽을 떠야 비로소 공급이 시작된다.
시장 역시 이제 발표 숫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 언제 착공하고, 언제 입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 있어야 공급 신호로 받아들인다. 정부가 정말 집값 안정을 원한다면 새로운 공급 목표를 추가하는 것보다 기존 대책의 사업별 진행 상황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계획 물량 가운데 토지 확보가 끝난 곳은 몇 곳인지, 인허가 단계에 들어간 사업은 얼마나 되는지, 착공이 지연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도 정부도 이제 ‘공급한다’는 말 뒤에 숨을 때가 아니다. 국회는 필요한 법안을 묶어두지 말아야 하고, 정부는 법안 지연을 공급 부진의 방패로 삼아서는 안 된다. 공급정책의 성패를 평가하는 기준도 발표 물량에서 착공과 준공 실적으로 바꿔야 한다.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거창한 숫자가 아니라 실제로 지어지는 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공급 대책’이 아니다. 이미 약속한 주택이 언제 첫 삽을 뜨고 언제 국민에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닥치고 공급’을 말하고 싶다면, 이제는 ‘닥치고 착공’으로 증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