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몸에 박힌 화살보다 아픈 것…우리는 무엇에 상처받으며 사는가
깊은 산길 하나가 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두려워했다. 산세가 험한 데다 수백 명의 도적이 자리를 잡고 오가는 상인과 여행객의 재물을 빼앗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도적들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산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이들을 붙잡기는 쉽지 않았다. 도적들의 횡포가 계속되면서 상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고 사람들은 길을 지나는 것조차 꺼리게 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처는 도적들을 벌해야 할 악인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재물을 탐하고 사람을 해치면서도 자신들이 어떤 삶을 만들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행동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 고통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부처는 이들을 깨우치기 위해 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을 찾았다.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말을 탔으며 값비싸 보이는 물건까지 지녔다. 도적들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수백 명의 도적이 여행자를 에워쌌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여행자가 활을 당기자 한 발의 화살이 수백 갈래로 나뉘어 도적들에게 날아갔다. 칼을 휘두르자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지만 도적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신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몸에 박힌 화살을 빼달라고 했다.
그때 여행자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몸에 박힌 화살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근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무지,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이야말로 인간에게 깊이 박힌 화살과 같다는 가르침이었다.
육체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과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마음의 상처는 힘으로 뽑아낼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한 뒤 여행자는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도적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만났는지 그제야 알았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이들은 잘못을 돌아보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한다.
산길을 위협하던 도적들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 안심하고 길을 오갈 수 있게 됐다.
이 불교 설화가 흥미로운 것은 악인을 처벌하는 이야기처럼 시작해 인간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는 점이다.
상처의 크기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몸에 난 상처를 떠올린다.
피가 나거나 뼈가 부러진 상처는 눈에 보인다. 병원에 가면 어느 정도 다쳤는지 진단할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는 다르다.
걱정과 후회, 미움, 열등감, 욕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당사자조차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알지 못한다.
설화에서 도적들은 몸에 박힌 화살을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르침은 그보다 깊은 곳을 향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해치게 만든 탐욕, 자신의 행동이 만들어낼 결과를 보지 못하게 한 어리석음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 안에 박혀 있었다.
화살을 맞기 전부터 상처 입어 있었던 셈이다.
오늘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돈이 부족해서 불안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면서 자신이 뒤처졌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인정, 더 좋은 집과 더 많은 자산을 얻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곧 다음 것이 필요해진다.
욕망에는 도착점이 없기 때문이다.
목표를 갖는 것과 욕망에 끌려가는 것은 다르다.
목표는 삶의 방향을 만들지만 욕망은 지금 가진 것을 끊임없이 부족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많이 가진 사람이 반드시 평온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근심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부족함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끝없는 생각일 때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이 설화에서 탐욕만큼 중요한 것이 어리석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과 조금 다르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다.
도적들은 재물을 빼앗으면 자신들이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 산길은 위험해졌고 상업은 위축됐으며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결국 국가가 이들을 잡기 위해 움직이면서 도적 자신들의 삶 역시 끊임없는 도피와 불안 속에 놓였다.
눈앞의 이익은 봤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보지 못했다.
이것이 설화가 말하는 무지의 무서움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당장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온라인에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말을 던진다. 성공하기 위해 몸을 망가뜨릴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기 위해 관계를 희생하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계산서가 돌아온다.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가 끊어지며 마음의 평온을 잃는다.
지혜란 모든 것을 아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결국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에 더 가깝다.
악인을 벌주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악인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설화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부처가 도적들을 없애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빠른 해결책은 도적들을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결론을 선택한다.
사람을 없애는 대신 행동의 원인을 바꾼다.
도적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않도록 삶의 기준을 가르친다.
그 결과 산길의 안전도 회복된다.
여기에는 처벌과 교화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 담겨 있다.
사회에는 당연히 규칙과 처벌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동까지 이해와 용서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처벌만으로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바꾸기도 어렵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무엇이 그 사람을 그곳까지 몰고 갔는지 보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수 있다.
설화에서 부처가 치료하려 한 것은 도적의 손에 들린 칼이 아니라 칼을 들게 만든 마음이었다.
문제를 뿌리에서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욕망을 버리라는 말은 아무것도 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래된 불교 설화를 오늘 읽을 때 가장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욕심을 버리고 세속적인 즐거움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을 모든 욕망과 성취를 포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욕망의 존재보다 욕망과 인간의 관계다.
내가 욕망을 사용하는가, 욕망이 나를 끌고 가는가.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돈을 버는 것과 돈을 많이 갖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은 다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다른 사람보다 인정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게 되는 것도 다르다.
욕망이 삶의 도구일 때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욕망이 삶의 주인이 되면 인간은 끌려간다.
도적들이 처음부터 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었다고 설화는 말하지 않는다.
탐욕과 무지가 깊어지면서 결국 사람을 해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구조다.
그래서 치료의 시작 역시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우리는 매일 보이지 않는 화살을 맞으며 산다
수천 년 전 이야기 속 도적이 맞은 화살은 눈에 보였다.
오늘 우리가 맞는 화살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비교에서 시작된 열등감, 미래에 대한 불안,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 오래된 관계에서 생긴 미움이 마음속에 남는다.
어떤 화살은 시간이 지나면 빠진다.
어떤 화살은 너무 오래 품고 있어서 그것이 박혀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그래서 이 오래된 설화가 오늘에도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 묻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인가, 아니면 그 사건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마음인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망인가.
잃을까 두려워하는 근심인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인가.
몸에 박힌 화살이라면 사람들은 서둘러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마음에 박힌 화살은 오랫동안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이 설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의외로 현실적이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상처는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계는 무엇이 자신을 아프게 하는지 알아차리는 데 있다.
도적들이 바뀐 것은 부처의 화살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이 이미 더 깊은 화살을 품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래된 이야기를 읽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옛사람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거울 삼아 지금 내 마음에는 어떤 화살이 박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