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라혜석, 羅蕙錫… 이름 표기가 갈라놓는 문화기록의 검색 결과
문화기록을 디지털로 읽는 일은 이제 연구의 출발점이 아니라 연구 방법 자체가 됐다. 문제는 검색창에 넣는 이름 한 형태가 조사 범위를 미리 잘라낸다는 데 있다. 같은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이 현대 한글 표기, 옛 한글 표기, 한자 표기, 로마자 표기로 흩어져 있으면 연구자는 출발선에서부터 서로 다른 자료 묶음을 만나게 된다.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작가 나혜석 사례는 그 차이가 얼마나 쉽게 연구 결과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작품이 기준 자료가 될 때, 이름 표기의 오차는 더 커진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정보는 나혜석의 <화령전작약(華寧殿芍藥)>을 1930년대 작품으로 소개한다. 미술관은 이 작품이 나혜석의 확실한 진작으로 평가되며, 현존 작품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의 기준이 될 만한 자료라고 설명한다. 작품이 적고 진위 판단의 기준점이 되는 경우, 작가명 표기와 작품명 표기의 안정성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연구의 재현 가능성을 좌우하는 기초 데이터가 된다.
실제로 같은 기관 안에서도 표기는 늘 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상세 페이지와 최근 전시·디지털 안내 자료는 작품명을 대체로 ‘화령전작약’으로 적고 있지만, 2021년 이건희컬렉션 기증 보도자료에는 같은 작품이 ‘화녕전작약’으로 소개돼 있다. 작가명이 아니라 작품명 사례이기는 하지만, 문화기록 검색에서 한 글자 차이가 어떤 문제를 만드는지 잘 보여준다. 연구자가 한 표기만 검색하면 관련 기록 일부를 놓칠 가능성이 생긴다.
도서관 목록에서는 ‘나혜석’과 ‘라혜석’이 함께 남아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종합목록은 이런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같은 검색 결과 안에서 ‘(원본)정월 라혜석 전집’, ‘정월 라혜석 전집’, ‘정월 나혜석전집’이 함께 나온다. 학위논문 목록에도 ‘정월 羅惠錫 연구’와 ‘정월 나혜석 연구’가 나란히 잡힌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같은 인물을 찾고 있지만, 실제 서지 기록은 서로 다른 표기를 독립된 접근 경로처럼 남겨 둔 셈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오탈자와는 구분해야 한다. ‘라혜석’은 오늘의 표준 표기와 다르지만, 과거 문헌과 판본에서 실제로 쓰였던 이름의 흔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역사적 흔적이 설명 없이 그대로 검색 환경에 남을 때 생긴다. 연구자가 현대 표기인 ‘나혜석’만 입력하면, 옛 표기와 한자 표기로 남은 자료군을 충분히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동시대 신문 기록은 한자 표기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근대 자료로 더 내려가면 이름은 다시 다른 얼굴을 갖는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의 1930년 5월 16일자 ‘鮮展入選者氏名’ 기사 키워드에는 나혜석이 한자 이름인 ‘羅蕙錫’으로 올라 있다. 같은 기사에는 나상윤 역시 ‘羅祥允’으로 적혀 있다. 오늘의 연구자가 한글 이름만으로 식민지기 기사 색인을 훑는다면, 검색 시스템이 별도 연결을 해주지 않는 한 당시 표기로 남은 기록은 바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디지털 인문학의 핵심 문제가 드러난다. 연구 결과는 텍스트를 읽는 해석 능력만이 아니라, 어떤 표기 체계를 경유해 자료를 불러왔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특정 시기의 전시 참여 이력, 작품 출품 빈도, 비평 언급량, 인물 간 네트워크를 계량적으로 분석할 때 이름 표기가 통합되지 않으면 한 사람의 궤적이 여러 사람의 데이터처럼 찢어질 수 있다.
검색 시스템은 이미 ‘이름 통합’의 필요를 인정하고 있다
국가자료종합목록 도움말은 이 서비스가 국립중앙도서관과 전국 소장 자료의 목록정보를 제목, 저자 등으로 검색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저자명과 표제명은 이용자가 자료를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입구다. 입구가 여러 이름으로 갈라져 있으면, 자료가 존재해도 발견 가능성은 낮아진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ISNI-KOREA는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도서관은 ISNI-KOREA를 국가전거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는 시스템으로 소개하고, ISNI 안내 자료에서는 같은 공적 신원에 대해 철자 차이, 표현 차이, 문자 차이, 번자 차이, 언어 차이 때문에 새 식별자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요컨대 이름의 여러 표기를 하나의 창작자 정체성과 연결해 보려는 시도다. 다만 식별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개별 기관의 검색창, 소장품 페이지, 보도자료, 과거 서지 기록이 자동으로 모두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는 ‘정답 표기’가 아니라 ‘표기군’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유산 검색 데이터의 표기 문제는 교정 몇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선 기관은 대표 표기와 이표기, 한자명, 옛 표기, 로마자 표기를 연결하는 전거 데이터를 더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소장품 설명, 도록, 보도자료, 검색 결과가 서로 다른 이름을 쓰더라도 이용자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즉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 쪽의 실무도 달라져야 한다. 한 인물의 자료를 모을 때는 현재 통용 표기 하나만 쓰지 말고, 옛 표기와 한자 표기, 필요한 경우 로마자 표기까지 묶은 검색어 집합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검색 결과가 적게 나왔다면 자료가 없는 것인지, 이름이 달라서 못 찾은 것인지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문화기록의 디지털화가 깊어질수록, 좋은 해석은 좋은 읽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잘 설계된 이름 찾기에서 시작한다.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상세 ‘나혜석 | 화령전작약(華寧殿芍藥)’; 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공개’(2021-05-07);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종합목록, 검색 도움말;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종합목록, ‘정월’ 검색 결과;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鮮展入選者氏名’(1930-05-16); 국립중앙도서관, ISNI-KOREA 및 ISNI 안내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