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는 넓어지고 교실은 길어졌다…설계도가 보여주는 근대 학교 건축의 변화
근대 학교 건축에서 복도와 교실의 변화는 단순한 동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아 있는 설계도들을 보면 초창기 학교는 기존 대지에 필요한 건물을 그때그때 덧붙이는 방식이 강했고, 1920~30년대로 갈수록 교실군과 특별교실, 강당, 기숙사를 더 분명한 질서로 묶는 배치가 나타난다. 해방 이후에는 전후 복구와 학생 수용이 급해지면서 교실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표준형 교사 계획이 힘을 얻었다. 설계도는 그 변화가 추상적 교육 담론이 아니라, 복도의 위치와 폭, 교실의 길이와 배치 방식 같은 물리적 선택으로 굳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초기의 학교는 한 동의 건물보다 여러 동의 덧붙임에 가까웠다
국가기록원의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컬렉션에 실린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배치도를 보면, 1910년대 초 경운동 캠퍼스는 처음부터 완결된 교사군으로 설계됐다기보다 필요한 기능을 순차적으로 채워 넣은 결과에 가까웠다. 정문을 들어서면 교사와 사무실 건물이 먼저 놓이고, 그 뒤로 조화교실·수예과교실·음악교실 같은 특별교실이 일정한 배치축 없이 흩어져 있었다. 운동장과 기숙사 역시 같은 축 안에서 정리되기보다 남는 대지에 맞춰 들어간다.
이 시기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교실 한 칸의 모양보다 학교 전체의 질서가 아직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같은 학교의 1922년 이후 재동 캠퍼스 계획을 보면, 비로소 긴 일자형 교사와 본관을 연결해 누운 F자 형태를 만들고, 뒤편에 특별교실과 회랑을 덧붙이는 구상이 나타난다. 학교 공간이 흩어진 건물의 집합에서, 교실과 부속공간을 한 체계로 묶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복도는 연결 통로를 넘어 교실 조직의 중심이 됐다
복도의 위상이 뚜렷해지는 장면은 같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의 1923년 도면에서 더 선명하다. 체조장과 교사 사이에 음악연습실을 넣으면서, 건물과 건물을 잇는 넓은 복도를 두고 그 한쪽에 음악연습실을 나란히 배치했다. 복도는 더 이상 각 실을 부수적으로 잇는 통로가 아니라, 특별교실을 묶고 프로그램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는 공간 장치가 된다.
대구공립사범학교, 뒤의 대구사범학교 본관 설계도에서는 복도와 교실의 관계가 한층 더 규격화된다. 1923년경 본관은 좌우대칭의 일자형 2층 건물로, 복도를 전면에 두고 남쪽 후면에 개실을 배치한 구조였다. 계단실은 양 끝에, 중앙에는 포치가 놓였다. 복도의 위치가 정면을 차지하고 교실이나 실들이 그 뒤에 규칙적으로 배치되는 방식은, 이후 학교 건축에서 반복되는 편복도형 평면의 전조로 읽힌다.
배치도 차원에서도 변화는 확인된다. 대구사범학교는 1923년 배치도에서 본관과 기숙사가 먼저 놓인 뒤, 1927년과 1930년 계획을 거치며 교사동·기숙사동·강당이 다시 조정된다. 이 과정에서 교실동은 운동장과 기숙사군 사이에서 독립된 군을 이루기 시작하고, 교사와 부속시설의 관계도 점차 분절된 건물의 병치가 아니라 기능별 묶음으로 재편된다. 복도와 교실의 표준화는 결국 건물 한 동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전체를 관리 가능한 블록으로 나누는 방식과 맞물려 있었다.
전후 학교는 ‘표준형 교실+편복도’로 수렴했다
해방 이후에는 다른 조건이 개입했다. 학생 수 증가와 교실 부족을 빠르게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1964년과 1975년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국민학교 건축 표준설계도는 장방형 교실과 편복도형 블록플랜, 장식이 배제된 기능적 외관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근대기 학교에서 서서히 굳어지던 복도-교실 관계가 전후 표준설계 단계에서 사실상 하나의 전형으로 제도화됐음을 뜻한다.
제도 변화도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 정리와 국가법령정보센터의 문교부 직제 자료를 보면, 1960년 초등학교 시설기준 규정이 마련된 뒤 표준설계도 작성이 학교시설 행정의 중요한 업무로 자리 잡았다. 학교 건축은 개별 학교의 장소성과 실험보다, 얼마나 많은 학생을 빠르게 수용할 수 있는지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복도는 길어지고 교실은 장방형으로 반복되며, 오늘까지도 익숙한 학교 풍경이 이 시기에 고정됐다.
설계도에 남은 변화는 그래서 미감의 차이만이 아니다. 초창기 학교가 대지 조건과 필요에 따라 건물을 덧붙인 공간이었다면, 1920~30년대 학교는 복도와 회랑을 중심으로 교실군을 조직하는 쪽으로 이동했고, 전후 학교는 그 조직을 표준설계도로 대량 복제했다. 근대 학교 건축의 복도와 교실은 교육 이념을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어떤 학생을 어떤 방식으로 모으고 관리하며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시대의 판단을 가장 물리적으로 기록한 흔적에 가깝다.
자료: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컬렉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해제문;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컬렉션 「대구공립사범학교, 경상북도사범학교, 대구사범학교」 해제문; 이정우, 「1960~70년대 서울시 국민학교 건축 표준설계도에 관한 연구」(2008);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 연구원 연혁·학교시설사 정리; 국가법령정보센터, 「문교부직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