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첫 50권을 대조해보니, 여성 작가 권수는 출판사마다 2권·3권·7권이었다
국내 주요 세계문학전집의 여성 작가 구성을 확인하려면 전체 시리즈의 현재 권수를 한꺼번에 세는 방식보다, 같은 출발선에서 목록을 맞춰 보는 편이 낫다. 각 전집은 창간 시기와 증보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비교는 현재도 목록 확인이 가능한 민음사, 을유문화사,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1번부터 50번까지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작품이 여러 권으로 분권된 경우도 권수대로 계산했고, 여성 작가 여부는 원저자의 성별이 분명한 경우에 한해 판단했다.
그 결과는 단순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권에서 여성 작가의 단독 저작은 2권, 을유세계문학전집 1~50권에서는 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권에서는 7권이었다. 세 전집 모두 초반 50권 기준으로 여성 작가가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출판사는 초반부터 목록의 균열을 시도했고 어떤 출판사는 오래된 정전의 관성을 더 강하게 따라갔다.
같은 50권인데, 여성 작가 수는 왜 이렇게 달랐나
민음사의 경우 확인 가능한 1~50권 목록에서 여성 작가 작품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두 권이었다. 1번부터 26번까지는 여성 작가가 보이지 않았고, 첫 등장은 27번이었다. 초기 목록은 카프카, 셰익스피어, 괴테, 토마스 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플로베르 같은 이미 공고한 남성 중심 정전이 전면에 놓여 있다.
을유문화사는 1~50권에서 세 권이 확인됐다. 6번 다이허우잉의 『시인의 죽음』, 33번 히구치 이치요의 『키 재기 외』, 38번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다. 민음사보다 한 권 먼저 여성 작가를 포함했지만, 초반 전체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비중은 아니었다. 1~25권에는 한 권, 26~50권에는 두 권이 배치돼 있다.
문학동네는 차이가 더 컸다. 1~50권에서 여성 작가 작품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콜레트의 『여명』,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 앙헬레스 마스트레타의 『피로 물든 방』, 앤절라 카터의 『내 생명 앗아가주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제인 오스틴의 『설득』까지 일곱 권이었다. 여성 작가가 한 구간에 몰려 있지도 않았다. 10번대, 20번대, 30번대, 40번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배치됐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록을 짜는 방식이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출판사의 취향 차이로만 보기 어렵다. 각 전집이 스스로 밝힌 기획 문구를 보면, 초반 목록의 방향이 이미 달랐다.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을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유럽에서 중남미와 아시아까지 아우르는 고전 시리즈로 설명해 왔다. 초창기 50권 목록에서도 이 기획은 주로 이미 정전화된 남성 거장들의 연속으로 구현됐다.
을유문화사는 1959년판 전집을 잇는 새 전집을 2008년부터 내며, 새 번역과 새 목록을 강조했다. 실제로 을유의 1~50권에는 다이허우잉, 히구치 이치요처럼 다른 시리즈에서 상대적으로 보기 어려운 이름도 포함됐다. 다만 초반 50권만 놓고 보면, 이 실험이 여성 작가의 가시적 확대까지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전의 외연을 넓히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여성 작가 비중 자체는 여전히 낮았다.
문학동네는 출발부터 최근 반세기 동안의 창작과 연구가 바꿔놓은 정전의 변동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초반 50권에서도 이 기조가 보인다. 괴테,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와 함께 옐리네크, 뮐러, 카터, 마스트레타가 초기에 들어왔고, 출판사 소개문에서도 이를 ‘동시대 세계의 중요한 정치·문화적 실천에 영감을 준 새로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작가 수가 더 많았던 이유를 목록의 우연보다는 편집 방침의 결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성 작가를 더 넣는 문제는 번역 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비교가 말해주는 것은 여성 작가가 적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아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번역하고, 어떤 작가를 ‘세계문학’의 입구에 세우느냐는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번역자와 연구자를 더 많이 길러내는 일은 중요하지만, 전집의 첫 50권이 남성 중심 정전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다면 새로운 인력이 유입돼도 독자가 처음 만나는 세계문학의 지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이번 대조가 세 전집 전체를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세 시리즈는 모두 이후 권수를 크게 늘렸고, 최근 목록에서는 여성 작가와 비서구 작가의 비중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을유문화사는 2026년 150번째 작품을 냈고, 민음사와 문학동네 역시 장기간 증간을 이어왔다. 다만 창간 초반 50권은 각 시리즈가 독자에게 처음 제시한 ‘세계문학의 기본 지도’라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그 기준에서 보면 세 출판사는 같은 이름의 전집을 펴냈지만 같은 지도를 내놓지는 않았다. 민음사는 가장 정전 중심적이었고, 을유는 일부 비주류 작가를 들여오면서도 여성 작가 비중은 크게 넓히지 못했으며, 문학동네는 초반부터 정전의 재배치를 더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세계문학전집에서 여성 작가가 얼마나 보이는지는 결국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세계문학으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편집의 결정에 가까웠다.
자료: 민음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A세트 : 1-50 (전50권)』 상품 안내 및 세계문학전집 소개(확인 2026-10-23);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1~108』 목록 PDF(2019), 『을유세계문학전집 A세트 01-25』(2008), 『을유세계문학전집 B세트 26~50』(2012), 『을유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안내(확인 2026-10-23); 문학동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세트 1』(2009), 『세트 2』(2010), 『세트 3』(2010), 『세트 4』(2010), 『세트 5』(2010), 『도서』 세계문학전집 소개(확인 2026-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