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동리 ‘밀다원 시대’로 읽는 피란수도 부산, 옛 지도와 겹쳐 본 전후소설의 공간

한국전쟁기 부산을 다룬 전후소설을 옛 지도와 대조해 보면, 작품이 포착한 ‘피란 도시’는 부산 전체가 아니라 남쪽 원도심에 밀집한 좁고도 과밀한 생활권으로 먼저 나타난다. 이번에 실제 자료로 대조가 가능한 대표적 사례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다. 1955년 발표된 이 작품은 피란 시절 문인들이 모였던 광복동 일대 다방을 중심으로 부산을 기억하는데, 1950년대에 제작된 ‘남부산시가지도’가 보여주는 공간 범위와 겹쳐 보면 그 무대가 당시 상공업 중심지와 주거지가 맞물린 원도심 남부 축에 집중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이 붙잡은 부산은 ‘도시 전체’보다 ‘남부 원도심’에 가깝다


임시수도기념관이 소장 정보를 제공하는 ‘남부산시가지도’는 1950년대 부산의 남쪽 지역을 보여준다. 지도 설명에는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 신창동, 영도 같은 당시 상공업 중심지와 부평동, 대신동, 부민동 등 주변 주거지가 함께 담겼다고 적혀 있다. 행정 중심과 항만, 상권, 피란 주거가 서로 멀리 떨어진 별개의 점이 아니라 좁은 도시권 안에서 밀집해 있었다는 뜻이다.

이 점은 소설의 무대감과도 맞물린다. 부산시와 지역 문화기관이 축적해 온 자료에서는 ‘밀다원 시대’를 광복동의 다방을 배경으로 한 피란 부산의 대표적 소설로 다룬다. 지역 자료가 전하는 작품의 공간 단서는 광복동, 보수동, 남포동, 자갈치, 범일동 같은 생활권이다. 옛 지도 위에 이 지명을 얹어 보면, 전후소설이 포착한 피란 도시는 넓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항구와 시장, 다방, 비탈 주거지, 교통거점이 압축된 원도심의 체감 거리였다고 읽을 수 있다.


‘밀다원’은 위안의 장소였지만, 그 바깥의 부산은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학술 연구가 반복해 짚는 것도 이 대비다. ‘밀다원 시대’를 분석한 연구들은 작품 속 부산과 밀다원을 대립적인 장소감으로 설명한다. 피란민 문인들에게 부산은 끝으로 밀려난 도시, 생계와 거처가 불안정한 공간으로 그려지는 반면, 밀다원은 그 와중에 관계와 대화를 이어가는 거의 유일한 실내의 문화 거점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옛 지도와 맞대었을 때 더 선명해진다. 지도는 부산 원도심의 기능이 상업, 주거, 교통, 광고, 서비스업까지 한데 뒤엉킨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즉 소설 속 다방은 낭만적 배경이라기보다, 과밀한 피란 도시에서 예술가와 지식인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좌표’를 얻는 장소였다고 보는 편이 실제 도시 구조와 가깝다. 피란 도시의 핵심 이미지는 넓은 조망이 아니라, 좁은 반경 안에 겹겹이 포개진 생존과 교류의 장소들인 셈이다.


오늘 남아 있는 유산은 소설의 무대를 더 넓은 생활사로 되돌려 놓는다


다만 작품이 도시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부산시와 국가유산 관련 자료가 정리하는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대통령 관저와 임시중앙청 같은 행정 공간, 부산항 제1부두 같은 물류 공간, 영도다리 같은 연결 거점,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같은 생활 공간을 함께 묶어 제시한다. 문학 작품이 광복동 일대의 문화적 밀도를 강하게 남겼다면, 오늘의 유산 목록은 그 기억을 행정·주거·구호·항만의 네트워크로 복원하는 셈이다.

그래서 ‘밀다원 시대’를 옛 지도와 함께 읽으면 작품의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다. 장점은 피란 부산의 감각을 놀랄 만큼 또렷하게 붙들었다는 점이다. 한계는 그 감각이 주로 문인들이 체류한 원도심 남부의 문화 공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전후소설 속 피란 도시는 결국 추상적인 전쟁 배경이 아니라, 광복동과 남포동, 영도와 보수동으로 이어지는 좁은 생활권 안에서 압축적으로 형성된 장소 경험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피란 도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소설 한 편을 역사 기록 전체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밀다원 시대’처럼 실제 장소와 대조 가능한 작품은 전후 부산의 문화적 기억이 어디에 응축돼 있는지 보여주는 강한 단서가 된다. 옛 지도는 그 단서를 확인해 주는 외곽선이고, 소설은 그 선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디서 서로를 붙잡았는지를 드러내는 내면 기록에 가깝다.

자료: 부산근현대역사관, 남부산시가지도(1950년대 제작 설명자료); 부산광역시 부산근현대역사관, 부산1950’s(2012); 송명희, 「밀다원 시대」에 나타난 ‘부산’과 ‘밀다원’의 장소감(2012); 부산광역시, 시민 추천 미래유산 – 밀다원 시대(2024 확인본); 부산광역시, 피란수도 부산유산 안내 자료(2026 확인본); 국가유산청, 한국의 세계유산-피란수도 부산유산 설명 자료(2026 확인본);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전후 여성 대중소설의 형성과 젠더 정치학(2008)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