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관객 수보다 오래 남는 것…지역 예술가를 살리는 건 다음 무대의 약속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녹서 2025’에는 청년문화와 그 규범을 누가 정하느냐는 시민 질문이 실려 있다. 이 문제를 공연예술 현장으로 옮기면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지역의 젊은 예술가와 단체가 한 번 무대에 오른 뒤에도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인가. 축제의 하루 관객 수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결국 다음 해의 협약, 다시 잡힌 공연 일정, 다른 도시로 이어지는 유통 경로다.
지역 축제는 작품을 처음 알리는 창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창작 생태계를 유지하지는 못한다. 공연이 끝난 뒤 단체에 남는 것이 단발성 홍보뿐이라면 다음 작품은 다시 제로에서 시작된다. 반대로 초청 이후 재공연, 상주 협약, 순회 배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있으면 한 작품은 레퍼토리가 되고, 한 단체는 지역의 이름을 달고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
한 작품이 오래 사는 방식, 부산 오오씨어터의 경우
부산의 아동·가족극 단체 오오씨어터의 ‘토장군을 찾아라!’는 이 점을 비교적 또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작품은 2019년 부산문화회관 프로그램에 올랐고, 2021년에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배정 결과에 포함돼 을숙도문화회관 공연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다른 지역 공연장 편성이 이어져 2025년에는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공연 일정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번의 흥행 기록이 아니라 이동 경로다. 지역에서 만든 작품이 지역 공공극장의 기획 공연, 전국 유통 사업, 타 지역 공연장 편성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 작품’은 지역 안에만 머무는 행사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콘텐츠가 된다. 관객 수는 그날의 성적이지만, 재초청과 순회는 작품이 다음 제작비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쇼케이스에서 본공연, 다시 재조명까지
최근 지역 재단들이 내놓는 지원 방식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은 ‘올해의 포커스온’ 공연예술 사업을 통해 쇼케이스 제작, 본공연 제작, 재조명 지원을 단계적으로 설계했다. 2025년도 사업에서는 쇼케이스 심의를 거쳐 오오씨어터가 2026년 본공연 제작지원 대상으로 선정됐고, 2026년 통합공모에는 3차년도 시범 사업으로 ‘재조명지원’이 별도 편성됐다.
이 구조의 핵심은 지원금 액수보다 시간의 길이다. 한 번 발표하고 끝나는 공모가 아니라, 시연을 거쳐 전막 공연으로 가고 다시 부산 밖 유통까지 염두에 둔 사다리를 만든 것이다. 지역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발견’ 자체보다 발견 이후를 제도화하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재계약은 고용계약서만이 아니다
공연예술에서 말하는 재계약은 흔히 상업 공연의 출연 계약만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조금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공공극장과 단체의 상주 협약이 다음 해에도 이어지는지, 같은 공연장이 다시 기획 초청을 하는지, 연습실과 공연장을 계속 쓸 수 있는지, 레퍼토리 공연 예산이 별도로 붙는지가 모두 실질적인 재계약에 가깝다.
실제 공모 문서를 보면 이 구조는 꽤 구체적이다. 부산문화재단의 2022년 공연장-예술단체 육성지원 공고와 2023년 금정문화회관 안내에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협약을 전제로 사업비뿐 아니라 사무·연습 공간 무상 제공, 공연장 사용료 면제 같은 조건이 적시돼 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가이드북에도 상주단체에 연습실 제공, 사용료 면제, 공연장 우선권 부여가 포함돼 있다. 화성시문화재단은 2023년 공모 계획에서 아예 ‘우수 예술 활동 지원’을 별도 항목으로 두고 기존 작품의 재공연을 지원 대상으로 명시했다.
이런 장치들은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지역 예술가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생존 조건이다. 축제 포스터의 메인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달에도 연습실 문이 열리는가, 같은 작품을 다시 올릴 예산이 있는가, 다른 도시로 옮겨 갈 배정표가 생기는가다.
오래된 과제라는 점도 분명하다
이 문제가 새삼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 공모한 ‘창작 팩토리’ 사업은 이미 대본 공모, 쇼케이스, 작품 제작, 재공연 지원을 단계별로 묶어 놓았다. 초연만으로는 창작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책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비슷한 사다리가 2020년대 지역 재단들에서 다시 반복해 설계되고 있다는 점은, 단발성 노출의 한계가 아직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역 축제가 한 해의 방문객 수로 평가받는 동안, 지역 예술가는 그 축제 이후 몇 번 더 무대에 설 수 있는지로 생존을 판가름받는다.
그래서 지역 공연예술을 평가하는 잣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축제 한 번의 총관객 수만이 아니라, 그 축제 이후 지역 단체의 재초청 비율, 다음 연도 협약 유지율, 재공연·순회 편성 건수, 쇼케이스 이후 본공연 전환율이 함께 공개돼야 한다. 지역문화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묻는다면 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많이 본 하루보다, 다시 부를 수 있는 제도가 더 오래 남는다.
자료: 더불어민주당, 온라인자료실 ‘모두의질문Q 시즌1, 녹서 2025 발간!’(2025); (재)부산문화회관, 가족뮤지컬 ‘토장군을 찾아라!’ 공연안내(2019);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2021년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프로그램 문예회관별 배정결과’(2021);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가족뮤지컬 ‘토장군을 찾아라’ 공연안내(2025); 부산문화재단, ‘2025년도 부산문화재단 올해의 포커스온(공연예술) 2차년도 본 공연 제작지원 대상 선정’ 보도자료(2025); 부산문화재단, ‘2026년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2차 통합공모’(2026); 부산문화재단, ‘2022년도 공연장-예술단체 육성지원 공고’(2022); 금정문화회관, ‘2023년 공연장 연계 예술단체 육성지원사업’ 안내(2023); 화성시문화재단, ‘2023년 예술지원센터 주요 공모계획 안내’(2023); 문화체육관광부, ‘2008 창작 팩토리 사업 공모’ 보도자료(2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