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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공공도서관에서 ‘정치적인 책’을 빼면 중립적일까

공공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살 것인가는 생각보다 정치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최근 춘천시립도서관의 희망도서 선정 과정에서 그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춘천시립도서관은 지난해 3월 한동훈 의원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에 대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는 이유로 시민의 구매 요청을 거절했다. 반면 조국 전 대표의 책과 김민석 의원이 쓴 ‘이재명에 관하여’ 등 다른 정치인 관련 서적은 구매해 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훈 의원의 책 역시 민원이 이어진 뒤 약 두 달 후에는 결국 도서관에 들어왔다.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정을 했느냐만 보면 이 사건은 곧바로 진영 논쟁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더 눈여겨볼 문제는 따로 있다. 춘천시립공공도서관이 현재 공개하고 있는 희망도서 신청 제한 기준에는 실제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도서’가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책인지 누가 결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이 직접 쓴 책만 정치적인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다룬 평전은 어떤가. 민주주의와 자유, 노동, 젠더, 부동산, 북한 문제를 다룬 책은 정치적인가 아닌가. 역사책도 어느 시점부터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같은 언론사의 후속 취재에서는 전국 공공도서관 가운데 ‘민주주의’나 ‘자유’ 같은 표현을 이유로 정치성을 판단하거나, 직원 한 명이 한 달에 100권이 넘는 신청도서를 검토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춘천시립도서관에서는 최근 2년 동안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희망도서 19권이 반려됐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정치적인 책을 걸러내겠다는 기준은 얼핏 공공기관의 중립을 지키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 운영 단계에서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정치적인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할 권한을 준다.

그리고 그 순간 중립을 지키려 만든 기준이 새로운 편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공공도서관이 모든 시민이 신청하는 모든 책을 반드시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공간도 부족하다. 이미 소장한 책이나 지나치게 고가인 자료, 전문성이 너무 강한 자료처럼 일정한 선정기준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는 성격이 다르다.

책의 가격이나 발행연도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정치성은 판단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한 사람에게는 정치선전으로 보이는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현실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일 수 있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은 도서관 자료의 선정과 제공이 정치적·도덕적·종교적 견해가 아니라 전문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서관이 사회의 다양한 관점이 담긴 자료를 폭넓게 제공하고 지적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여기서 도서관의 중립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립은 정치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는 서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도서관은 존재할 수도 없다. 역사와 경제, 철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소설조차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점을 담는다.

오히려 중립에 가까운 도서관은 서로 충돌하는 생각이 함께 존재하는 곳일 것이다.

보수 정치인의 책이 있다면 진보 정치인의 책도 있을 수 있고,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책 옆에는 그것을 비판하는 책도 놓일 수 있다.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책과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는 책이 같은 도서관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독자는 그 가운데 무엇을 읽을지 스스로 선택한다.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시민 대신 어떤 생각이 올바른지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시민이 충분한 자료를 접하고 자신의 판단을 만들 수 있도록 조건을 제공하는 데 더 가깝다.

물론 도서관도 혐오와 허위정보, 명백한 불법콘텐츠 같은 문제에서는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한다. 지적 자유가 아무 기준도 갖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논쟁적이라는 이유와 해로운 정보라는 이유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정치적 견해는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기 시작하면 끝을 정하기 어렵다.

오늘은 한 정치인의 책이고 내일은 다른 정치인의 책일 수 있다. 그다음에는 특정 역사관이나 경제관, 사회문제를 다룬 책까지 대상이 넓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논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느 정치인의 책이 더 많이 들어갔는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다.

희망도서를 거절할 때 적용하는 기준을 더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만들고, 한 명의 담당자에게 민감한 판단이 집중되지 않도록 검토 절차를 갖추며, 시민이 반려 이유를 충분히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할 방법을 만드는 일이다.

책을 고르는 일에도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시민의 생각을 미리 골라내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의 서가가 조금 시끄러워도 괜찮다. 서로 반대되는 생각이 같은 공간에 놓여 있고, 어떤 책을 읽을지는 시민이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공공도서관다운 모습에 가깝다.

도서관의 중립은 정치적인 책을 없애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책을 함께 둘 수 있는 데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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