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스타 무용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한예종 무용원 30년이 보여준 K무용의 성장

세계 정상급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이 한 무대에 다시 모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은 지난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원 30주년 기념공연 ‘RE: MOVE ERA’를 열었다. 발레와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아우른 이번 공연에는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동문과 교수진, 졸업생, 재학생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전석 무료로 진행된 공연은 세 차례 모두 매진됐다.

첫날 무대는 특히 상징적이었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을 비롯해 같은 마린스키에서 활동하는 전민철,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박선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수석 안재용, 국립발레단 수석 정은영 등 한예종 무용원을 거쳐 세계 무대로 나간 동문들이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김기민은 직접 재구성하고 연출한 ‘돈키호테 스위트’에도 출연했다.

무대의 장면만 보면 화려한 스타 동문들의 귀환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조금 다르게 보면 지난 30년 동안 한국 무용교육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예종 무용원은 1996년 문을 열었다. 발레와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여러 장르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를 꾸준히 배출해왔다. 학교 측이 30주년 기념공연의 제목을 ‘RE: MOVE ERA’로 정한 것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RE’와 움직임을 뜻하는 ‘MOVE’,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ERA’를 결합해 과거의 성과와 다음 세대의 방향을 함께 보여주겠다는 뜻에서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한때 한국 발레계에서 세계적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는 매우 드문 존재였다. 해외 유학과 국제 콩쿠르를 거쳐야 하는 과정도 지금보다 훨씬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에서 전문교육을 받고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 진출하는 경로가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다.

김기민은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고, 전민철 역시 지난해 같은 발레단에 입단하며 주목받았다. 박선미와 안재용 등도 각각 미국과 유럽의 주요 무용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한예종 무용원이라는 교육 배경이다.

물론 한 학교가 모든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 지도자의 역량, 국내 발레단과 민간 교육기관, 국제 콩쿠르 경험이 함께 작용했다. 그럼에도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인재가 한두 명의 예외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교육 시스템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김기민도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후배들의 장점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언급했다. 실제로 이번 공연 첫날 프로그램 역시 무용수가 연습실에서 기본기를 쌓는 과정부터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했다.

발레에서 기본기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몸의 정렬과 균형, 턴과 점프, 발끝의 움직임은 오랜 시간 반복해서 몸에 익혀야 한다. 세계 어느 무용단에 들어가더라도 클래식 발레의 기본 언어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본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같은 동작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과 관객에게 자신만의 인물과 감정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최근 한국 무용교육의 과제는 뛰어난 테크닉을 갖춘 무용수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예술적 언어를 가진 무용수를 길러내는 데 있다.

30주년 공연에서도 이 점이 드러났다.

첫날 1부가 연습실과 교육과정, 클래식 발레의 전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2부 ‘돈키호테 스위트’에서는 세계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선배들이 후배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갈라공연과 거리를 뒀다.

공연이 끝난 뒤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토슈즈를 벗고 몸을 풀며 다시 일상의 무용수로 돌아가고, 어린 발레리나가 선배의 토슈즈를 받아 신어보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적인 스타의 화려한 기교보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무용의 시간을 강조한 연출이었다.

이 장면은 한예종 무용원이 지난 30년 동안 만들어온 가장 큰 자산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스타 무용수 개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그 성공이 후배에게 다시 하나의 가능성으로 전달되는 구조가 생겼다는 점이다.

어린 무용수가 해외 정상급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배를 직접 보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은 30년 전과 다른 환경이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동문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 후배와 공연하고 자신의 경험을 전달한다면 교육 역시 교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무용수들의 국제적 활약은 K팝이나 영화와는 다른 방식의 ‘K컬처’ 확장이기도 하다.

K팝과 드라마는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해외로 수출되는 방식이지만, 무용은 예술가 개인의 몸과 기술이 직접 세계 무대에 진출한다. 마린스키나 아메리칸발레시어터 같은 해외 단체의 무대에서 한국 무용수가 주역을 맡는다는 것은 한 나라의 교육 시스템에서 길러진 예술적 역량이 세계적인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생긴다.

한국이 세계적인 무용수를 배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국내 무대와 창작환경도 같은 수준으로 성장했느냐는 질문이다.

많은 우수 무용수가 해외 발레단을 선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더 넓은 레퍼토리와 안정적인 공연 기회, 세계적인 안무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이다.

한국에도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비롯한 주요 단체가 있고,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분야에서도 뛰어난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무용수가 계속 늘어나는 속도와 비교하면 국내 공연시장의 규모와 창작 기회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무용은 특히 제작 여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무용수의 몸이 작품의 중심인 만큼 지속적인 연습과 의료·재활 지원이 필요하고, 창작작품을 만들려면 안무가와 무용수, 음악, 무대, 조명 등 여러 요소가 결합돼야 한다. 공연 기간도 짧은 경우가 많아 티켓 수입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 쉽지 않다.

세계적인 무용수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자동으로 세계적인 무용 생태계를 갖는 것은 아닌 이유다.

앞으로 한국 무용의 다음 과제는 ‘세계적인 무용수를 얼마나 더 많이 배출할 것인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무용수들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창작하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 해외에서 얻은 경험이 국내 예술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30주년 공연처럼 해외 동문이 잠시 돌아와 후배와 한 무대에 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런 교류가 일회성 기념공연을 넘어 지속적인 협업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안무가의 성장도 중요하다.

한국 발레가 국제무대에서 더 큰 존재감을 가지려면 뛰어난 무용수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안무가와 제작자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해외 명작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능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이 해외 무대에서 반복적으로 공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역시 마찬가지다.

한예종 무용원의 30주년 공연이 발레만이 아니라 한국무용과 현대무용까지 세 장르를 함께 보여준 것도 의미가 있다. 학교 측은 이번 무대를 과거의 성과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무용교육과 창작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설명했다.

이제 무용교육의 경쟁력은 콩쿠르 메달이나 해외 무용단 입단자 수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이해하고 새로운 기술과 협업하며, 자신의 움직임을 하나의 창작 언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예술가를 얼마나 길러내느냐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30년 전 한예종 무용원이 문을 열었을 때와 지금의 세계 무용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국가 간 이동은 쉬워졌고, 무용수들은 SNS와 영상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세계 관객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각국의 뛰어난 무용수들이 같은 무대를 놓고 경쟁하는 환경도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시대에는 한 나라에서 배운 기술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보다 여러 무대와 문화, 장르를 경험하며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RE: MOVE ERA’가 흥미로운 이유는 30년의 성과를 숫자로 나열하지 않고 세대가 함께 움직이는 무대로 보여줬다는 데 있다.

세계적인 무용수가 된 선배들이 돌아와 후배들과 춤추고, 현재의 학생들이 그 무대를 바라보며 다시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김기민과 전민철을 비롯한 한국 무용수들의 해외 성공은 분명 지난 30년 동안 한국 무용교육이 만들어낸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진짜 다음 질문은 이제부터다.

세계적인 무용수를 만드는 데 성공한 한국이 앞으로는 세계적인 작품과 안무가, 그리고 그들이 오래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예종 무용원 30년의 성취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출발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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