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립중앙박물관과 MMCA 과천, 상설전 동선이 서사를 만드는 방식

박물관 건축의 동선은 전시를 담는 그릇을 넘어, 관람객이 어떤 순서로 무엇을 이해하게 될지까지 결정한다. 같은 ‘상설전’이라도 공간이 층과 축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따라 전시는 연대기적 역사 서사가 되기도 하고, 매체와 장르를 따라 이동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2026년 10월 현재 공개된 공식 안내를 기준으로 보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상설전은 그 차이가 뚜렷하다. 전자는 넓은 축과 교차 동선을 통해 방대한 시대사를 분산 배치하고, 후자는 램프코어를 중심으로 전시실을 따라 오르내리게 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구획된 장면들로 읽게 만든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이 만든 통사형 관람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은 2026년 기준 7개 관, 39개 실, 9884점으로 운영된다. 규모 자체가 큰 데다 전시품이 주기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이 박물관의 핵심은 개별 유물보다도 전체를 묶는 이동 구조에 있다. 박물관은 상설전시관을 동관 1·2·3층에 두고, 1층 입구에 ‘역사의 길’을 배치해 관람객이 동서남북 방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도록 설계했다고 안내한다.

이 동선의 효과는 1층 배치에서 가장 선명하다. 1층에는 선사·고대관과 중·근세관이 함께 놓여 있다. 선사·고대관은 구석기부터 남북국시대까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통사 전시 공간이고, 중·근세관은 고려·조선·대한제국의 역사 자료를 이해하기 쉽게 구성한 공간이다. 한 층 안에 시대 구간을 크게 나누되 관람객은 입구에서 어느 한쪽으로 고정 진입하지 않고, 축을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횡단하며 시대 구획 사이를 오갈 수 있다.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이 구조는 더 분명해진다. 2층은 서화관, 기증관, 사유의 방으로 구성돼 회화·공예·기증 문화유산·단일 주제 공간이 나란히 놓인다. 3층은 조각·공예관과 세계문화관으로 나뉜다. 다시 말해 이 박물관의 상설전은 한 방향으로 관람객을 몰아가는 선형 통로보다는, 큰 시대사 위에 매체와 성격이 다른 방들을 얹어두는 방식에 가깝다. 공식 안내가 밝히는 것처럼 ‘역사의 길’ 중간의 다리는 좌우 전시관을 넘나들게 해 동선을 단축시키는데, 이 장치는 관람 순서를 고정하기보다 관람자가 자기 속도에 맞춰 통사와 주제 사이를 왕복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은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거대한 역사 체계를 공간적으로 분절해 놓고 관람객이 그 사이를 편집하게 하는 구조를 갖는다. 전시가 건축을 이용해 말하는 방식도 “이 순서대로 보라”보다는 “이 범위 안에서 시대와 유형을 비교하라”에 가깝다.


MMCA 과천, 램프코어를 축으로 한 장면형 상설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상설전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과천관 안내는 1층에 1원형전시실, 1·2전시실, 중앙홀과 램프코어가 있고, 2층에 3·4전시실, 3층에 5·6전시실이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옥상정원 안내 자료는 로비 정면의 중앙 램프코어를 따라 3층에서 반 바퀴 더 돌아 진입한다고 적고 있다. 상설전 여부와 무관하게 과천관의 이동 경험이 중앙 램프코어를 축으로 조직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과천관 상설전은 이 건축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다.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은 2026년 4월 22일부터 2027년 6월 27일까지 진행되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20세기 전반 작품 147점을 소개한다. 미술관은 이 전시가 대한제국, 개화기,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질문을 따라간다고 설명한다. 같은 시기 함께 운영되는 ‘한국근현대미술 II’는 20세기 후반 주요 작품 120여 점을 통해 195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분화한 한국미술의 흐름을 잇는다. 두 전시를 합치면 254점 규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 수보다 배치의 논리다. 과천관 상설전은 한 번에 전체 시대를 평면적으로 펼쳐 보이기보다, 전시실 단위의 구획을 따라 시기를 나눠 읽게 한다. 램프코어와 층별 이동은 관람을 단순한 통행이 아니라 장면 전환으로 바꾼다. 1부와 2부가 시간대별로 이어지더라도, 관람객은 넓은 홀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기보다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의 문턱을 반복해서 통과하며 근대와 현대의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이 방식은 현대미술관의 상설전에 더 잘 맞는다. 미술사 전개를 보여주되, 시대마다 매체와 형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하나의 직선형 연대기로 밀어붙이기보다 구획된 전시실에서 밀도를 높이는 편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과천관의 건축은 바로 그 밀도 조절을 돕는다. 중심축은 분명하지만, 각 전시실은 독립된 장면처럼 작동해 관람객이 시대별 분위기와 형식 변화를 또렷하게 구분하도록 한다.


동선은 해설문보다 먼저 작동한다


두 기관을 나란히 놓고 보면, 상설전의 공간 구성은 단순한 편의 설계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다리와 교차축을 포함한 넓은 순환 구조를 통해 방대한 역사 자료를 비교 가능한 체계로 바꾸고, MMCA 과천은 램프코어와 층별 전시실 배치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단계별 장면으로 분절한다. 전자가 관람객에게 스스로 경로를 편집할 여지를 크게 준다면, 후자는 건축적 리듬을 따라 시대 구획을 더 선명하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이 차이는 공공 문화기관이 지식을 제공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상설전은 한 번 보고 끝나는 이벤트 전시가 아니라, 재방문과 부분 관람을 전제로 한 공공 인프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자유로운 횡단 동선은 방대한 소장품 체계에 반복 접근하기 쉽게 만들고, MMCA 과천의 구획형 동선은 한국미술사의 특정 시기를 다시 찾아보게 하는 구조를 갖는다. 박물관 건축의 동선은 결국 전시 해설문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관람의 문법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공간;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층별 안내(202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용안내; 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2026); 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2026); 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 보도자료(202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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