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2분으로 짧아진 이유…AI 숏폼은 무엇을 바꾸나
AI 만나 제작기간·비용 낮추는 숏폼 드라마…콘텐츠 생산 방식 변화
1~3분 세로형 드라마 성장에 생성형 AI 결합…기획부터 영상 제작까지 자동화 확대
중국 6억명 이상 시청 시장으로 성장…한국 콘텐츠 산업도 ‘Prompt Industry’ 실험 본격화
한 편에 60분 안팎이던 드라마가 1~3분으로 짧아지고 있다. 화면도 가로에서 세로로 바뀌었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서 변화는 영상 길이에 그치지 않는다. 대본 작성부터 이미지와 영상 생성, 후반작업까지 AI가 들어오면서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시간과 비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AI 숏폼 드라마’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실험장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짧은 영상을 모바일에서 소비하는 방식이 먼저 시장을 만들었고, 생성형 AI가 그 시장의 제작비와 생산 속도를 다시 낮추고 있다. 기존 방송 드라마와 숏폼 드라마의 차이가 단순한 러닝타임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고, 얼마나 빨리 시험하고, 어떻게 수익화하느냐’의 차이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1분짜리 영상이 드라마의 기본 단위가 되다
숏폼 드라마는 대체로 스마트폰 화면에 맞춘 9대16 세로형 영상으로 제작된다. 한 회는 1~3분가량이며 하나의 이야기를 수십 개 에피소드로 잘게 나눈다. 짧은 시간 안에 갈등을 제시하고 다음 회를 보도록 만드는 강한 반전과 ‘클리프행어’가 자주 사용된다.
중국에서 ‘마이크로드라마’ 또는 ‘세로형 드라마’로 불리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마이크로드라마 이용자는 2024년 6억6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관련 산업 역시 2020년 10억위안 미만에서 2025년 1000억위안 규모로 성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존 드라마와 가장 다른 점은 제작과 소비의 단위다. 전통적인 방송 드라마는 50~70분짜리 에피소드 여러 편을 제작해 편성하거나 OTT에 공급한다. 숏폼 드라마는 처음부터 모바일 이용자의 짧은 체류시간을 전제로 설계한다.
콘텐츠를 보는 행위가 ‘한 시간 동안 한 작품을 본다’에서 ‘이동 중 몇 분 동안 다음 이야기를 본다’로 바뀐 것이다. 숏폼 드라마는 단순히 긴 드라마를 잘라놓은 형태가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 문법에 가깝다.
AI가 바꾸는 것은 영상보다 제작비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들어오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AI는 대본 초안 작성과 캐릭터 설정, 콘티 제작, 배경 이미지 생성, 영상 생성, 더빙, 번역, 후반 편집 등 제작 공정 곳곳에 활용될 수 있다. 제작자가 모든 장면을 직접 촬영하지 않고도 일부 장면을 생성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제작 현장에서도 비용과 기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마이크로드라마 제작사 비글루(Vigloo)는 2026년 제작 과정에 AI 활용을 확대하면서 기존 약 3개월이 걸리던 제작기간을 1개월 수준으로 줄이고 비용도 종전의 5분의 1 수준까지 낮췄다고 밝혔다. 전체 제작예산 가운데 약 30%를 AI 기반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에서는 변화가 더 빠르다. 선전의 AI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는 수개월 걸리던 제작 과정이 수주 수준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등장했다. 80분 분량의 AI 기반 코믹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연산 비용이 약 2만5000위안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업계 사례도 나왔다. 같은 길이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제작비는 최소 16만위안 수준으로 비교됐다.
AI 숏폼의 산업적 의미가 여기서 나온다. 생성형 AI가 단순히 ‘특이한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라면 일시적 유행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제작비와 제작기간을 동시에 낮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작사가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산업에 ‘대량 실험’ 구조가 들어온다
기존 드라마 산업은 실패 비용이 크다. 배우와 작가, 촬영장, 세트, 조명, 후반작업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작품 한 편이 흥행하지 못할 경우 제작사가 부담해야 하는 위험도 크다.
AI 숏폼은 이 구조를 일부 뒤집는다.
한 편을 크게 제작해 성공 여부를 기다리는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여러 작품을 제작하고, 이용자 반응이 좋은 이야기와 캐릭터를 다시 확장할 수 있다. 콘텐츠 산업에 소프트웨어 산업의 ‘빠른 테스트’ 방식이 들어오는 셈이다.
마이크로드라마는 이미 제작주기가 짧다. 중국에서는 작품 촬영이 5~10일 안에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고 월간 제작량도 약 3000편 수준으로 안정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AI가 이 과정에 추가되면 제작 가능한 콘텐츠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많이 만드는 능력’이 곧 ‘좋은 작품을 만드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낮아진 제작비는 새로운 창작자에게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유사한 서사와 자극적 소재를 빠르게 복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올해 마이크로드라마 시장을 대상으로 선정성, 폭력적 복수극, 과도한 부의 과시, 저작권 침해 등을 단속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콘텐츠 품질과 저작권 문제가 동시에 산업 현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AI 숏폼’이 산업 의제로 올라오다
국내에서도 AI 숏폼은 기술 시연 단계를 넘어 콘텐츠 산업의 공식 의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방송영상마켓 ‘BCWW 2026’은 올해 OTT와 AI, 포맷, 크리에이터 등 미디어 산업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15일에는 ‘Prompt Industry : AI 기반 숏폼 콘텐츠’를 별도 세션으로 편성했다.
글로벌 숏폼 드라마 플랫폼 넷쇼트(NetShort)와 국내 콘텐츠 관계자들이 참여해 AI 기반 숏폼 작품과 제작 방식을 다룬다. 같은 날 ‘숏폼이 바꾼 미디어 패러다임과 비즈니스 모델’도 별도 의제로 논의된다.
주목할 부분은 ‘Prompt Industry’라는 표현이다.
프롬프트를 입력해 콘텐츠를 생성하는 행위가 단순한 제작 보조 기능에서 하나의 생산 방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메라와 편집장비 중심이었던 영상 제작 과정에 자연어 명령과 생성형 모델이 새로운 제작도구로 추가되는 것이다.
과거 디지털카메라와 비선형 편집 시스템이 영상 제작의 진입장벽을 낮췄다면 생성형 AI는 촬영 이전 단계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향 범위가 더 넓다.
콘텐츠 하나보다 ‘얼마나 빨리 현지화하느냐’가 중요해진다
AI 숏폼의 또 다른 특징은 해외 유통과 연결된다.
영상 제작뿐 아니라 자막과 번역, 음성 합성, 일부 장면의 현지화에도 AI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국가에 공급할 때 언어와 문화에 맞춰 콘텐츠를 바꾸는 비용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숏폼 플랫폼 입장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서는 어느 한 국가에서 성공한 작품을 다른 언어권에 빠르게 공급하고 이용자 반응을 확인하는 속도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최근 등장하는 마이크로드라마 플랫폼들이 처음부터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숏폼 제작 방식 역시 이미 동남아시아와 북미, 중남미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중국 제작사들도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 해외 이용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K콘텐츠 역시 같은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그동안 한국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이 높은 제작비와 완성도를 갖춘 드라마와 영화에 있었다면 AI 숏폼 시장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해외 이용자의 반응을 시험할 수 있는지가 또 다른 경쟁 요소가 될 수 있다.
AI가 배우와 작가를 대신할 수 있나
산업이 커질수록 논쟁도 커질 수밖에 없다.
생성형 AI가 대본 작성과 캐릭터 제작, 영상 생성에 활용되면 작가와 배우, 촬영·미술·후반작업 인력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중국 마이크로드라마 산업에서는 AI가 소규모 배우와 제작 인력을 대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저작권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AI 모델이 어떤 영상과 이미지, 음악을 학습했는지, 생성된 캐릭터나 장면이 기존 작품과 유사할 경우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아직 국가마다 정립 과정에 있다.
결국 AI 숏폼 시장의 경쟁은 생성 기술만으로 결정되기 어렵다.
제작비를 낮추는 기술과 함께 원작 IP 확보, 작가와 제작자의 창작 역량, 플랫폼의 이용자 데이터, 해외 현지화 능력, 저작권 관리가 동시에 필요하다.
2분짜리 드라마가 던지는 더 큰 질문
AI 숏폼을 단순히 ‘짧은 영상의 유행’으로만 보면 변화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숏폼은 이미 콘텐츠 소비시간을 분 단위로 잘게 나눴다. 생성형 AI는 이제 제작시간과 제작비까지 잘게 나누고 있다. 두 변화가 만나면서 콘텐츠 산업에는 대규모 제작보다 빠른 제작과 반복 실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생산 방식이 생겨나고 있다.
전통적인 드라마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와 장편 드라마가 긴 호흡의 서사를 담당한다면 숏폼은 모바일 환경에서 별도의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두 시장이 사용하는 제작방식과 수익모델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가 2분짜리로 줄어든 것보다 더 큰 변화는 한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돈이 함께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AI 숏폼을 둘러싼 콘텐츠 산업의 경쟁도 결국 여기에서 시작된다.
누가 가장 화려한 AI 영상을 만드느냐보다 낮아진 제작비와 빨라진 생산속도를 이용해 누가 더 좋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더 빠르게 세계 시장에 연결하느냐가 다음 경쟁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