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음은 다시 무료 TV? FAST가 스트리밍 시장을 흔드는 이유
구독 없이 광고 보고 콘텐츠 시청하는 FAST…유료 OTT 성장 뒤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
삼성 TV 플러스 월간 이용자 1억명 돌파…드라마·예능 넘어 지상파 뉴스까지 채널 확대
구독료 대신 시청시간·광고가 수익 결정…K콘텐츠 해외 유통의 새로운 통로 가능성도
넷플릭스를 보려면 매달 돈을 내야 한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디즈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서비스가 다시 커지고 있다. 회원가입도 구독료도 없이 콘텐츠를 보여주고 대신 광고를 받는 FAST다.
FAST는 ‘Free Ad-supported Streaming Television’의 약자다. 우리말로 옮기면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에 가깝다. 이용자는 돈 대신 광고를 보고, 플랫폼은 시청시간을 광고매출로 바꾼다.
언뜻 보면 오래된 지상파 TV의 사업모델과 비슷하다. 그러나 콘텐츠를 안테나나 케이블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전송하고, 스마트TV와 모바일 기기에서 수백 개의 전문 채널을 제공한다는 점이 다르다.
유료 OTT가 방송시장을 바꾼 지 불과 몇 년 만에 ‘무료 TV’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FAST란 무엇인가…무료 OTT와는 조금 다르다
FAST를 단순히 ‘무료 넷플릭스’라고 이해하면 절반만 맞는다.
넷플릭스와 같은 주문형비디오 서비스는 이용자가 보고 싶은 작품을 검색해 원하는 시간에 재생하는 구조가 중심이다. 반면 FAST에는 기존 TV처럼 프로그램이 일정한 순서로 계속 송출되는 선형 채널이 많다.
예를 들어 드라마만 하루 종일 보여주는 채널, 특정 예능 프로그램을 반복 편성하는 채널, 뉴스나 스포츠·음악·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채널을 선택해 그대로 시청할 수 있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TV 이용 방식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옮겨온 셈이다.
FAST와 AVOD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AVOD는 광고를 보는 대신 이용자가 원하는 영상을 골라보는 주문형 서비스다. FAST는 여기에 TV 채널처럼 콘텐츠를 편성해 연속 송출하는 방식을 결합한다.
물론 실제 시장에서는 두 영역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 미국의 투비(Tubi)처럼 주문형 콘텐츠와 FAST 채널을 함께 제공하는 플랫폼도 많다.
결국 FAST의 핵심은 ‘무료’보다 광고다. 이용자에게 직접 돈을 받지 않는 대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보고, 그 시간에 광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판매하느냐가 사업을 결정한다.
구독의 시대에 왜 다시 무료가 등장했나
FAST가 성장하는 배경에는 스트리밍 시장의 역설이 있다.
OT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용자들은 비싼 유료방송을 대신할 저렴한 서비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 애플TV+,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보고 싶은 작품이 여러 플랫폼으로 흩어졌고 각각 구독료를 내야 하는 구조가 됐다.
이른바 ‘구독 피로’다.
유료 서비스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들도 광고를 포함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제를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앰피어 애널리시스 자료를 인용한 최근 미국 시장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신규 스트리밍 가입자 가운데 약 60%가 광고형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다. 스트리밍 업체들의 광고 노출시간도 올해 들어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시청자가 광고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과 광고 사이에서 다시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FAST는 이 흐름을 가장 극단적으로 가져간다.
구독료를 조금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앤다.
무료라는 진입장벽 덕분에 이용자는 별도의 결제 여부를 고민하지 않고 채널을 선택할 수 있다. 콘텐츠 사업자는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쓰는 대신 광고시장에서 수익을 만든다.
광고가 돌아오지만 과거 TV 광고와는 다르다
FAST의 성장은 한동안 구독경제에 밀렸던 TV 광고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 시청시장에서는 이미 이 변화가 뚜렷하다.
닐슨이 2026년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18~49세가 광고가 포함된 TV 콘텐츠를 보는 시간 가운데 스트리밍이 차지하는 비중은 66.7%에 달했다. 같은 연령층의 스트리밍 시청에서도 광고가 포함된 서비스 이용 비중이 81.1%로 집계됐다.
광고가 TV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기존 방송광고와 FAST 광고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채널을 보는 시청자가 대부분 같은 광고를 본다. 인터넷 기반 FAST에서는 이용자의 지역과 기기, 콘텐츠 시청 특성 등에 따라 광고를 다르게 제공할 수 있다.
전통적인 TV의 편성 방식과 디지털 광고의 데이터 기술이 결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FAST 시장에서는 프로그램 못지않게 광고 기술이 중요하다. 광고를 어느 위치에 넣을지, 빈 광고 구간을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 특정 시청자에게 어떤 광고를 제공할지가 수익성을 좌우한다.
삼성 TV 플러스 1억명…TV 제조사가 미디어 회사가 됐다
FAST의 변화가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플랫폼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26년 2월 자사 FAST 서비스 ‘삼성 TV 플러스’의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1억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2024년 10월 8800만명에서 약 1년 2개월 만에 1200만명이 늘었다.
삼성은 원래 TV를 판매하는 제조사였다.
FAST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TV를 판매한 뒤에도 화면 안에서 콘텐츠를 유통하고 광고를 판매할 수 있다. 한 번 제품을 팔고 거래가 끝나는 제조업에서 지속적으로 콘텐츠와 광고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사업으로 수익 구조가 확장되는 것이다.
올해 1월 삼성 TV 플러스에는 KBS 뉴스 24와 SBS No.1 뉴스라이브도 추가됐다. 국내 FAST 플랫폼에 지상파 24시간 뉴스 채널이 들어간 첫 사례다. 예능과 드라마 중심이던 FAST의 영역이 뉴스로 넓어진 셈이다.
FAST를 단순한 무료 동영상 서비스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TV 제조사와 방송사, 콘텐츠 제작사, 광고회사, 데이터·광고기술 기업이 하나의 시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미디어 유통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FAST에서는 오래된 콘텐츠도 다시 상품이 된다
FAST는 콘텐츠 산업의 재고 개념도 바꾼다.
방송사가 수년 전 제작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본방송이 끝난 뒤 재방송과 VOD, 해외 판매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낸다. 시간이 지나면 일반적으로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는 낮아진다.
FAST에서는 오래된 콘텐츠를 주제별 채널로 다시 묶어 유통할 수 있다.
특정 드라마만 연속으로 보여주는 채널이나 특정 장르의 예능을 하루 종일 편성하는 방식이다. 이미 제작비를 대부분 회수한 라이브러리 콘텐츠에 새로운 광고수익을 붙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콘텐츠의 ‘롱테일 수익화’다.
유료 OTT에서는 오래된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검색해야 한다. FAST 채널에서는 시청자가 특별한 목적 없이 채널을 돌리다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콘텐츠를 ‘검색해서 보는 것’에서 ‘틀어놓고 발견하는 것’으로 다시 돌려놓는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알고리즘 추천이 이용자가 볼 다음 콘텐츠를 계산한다면 FAST는 오래된 TV의 편성 기능을 디지털 환경에서 다시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글로벌 FAST 시청시간 1년 새 55% 증가
실제 글로벌 FAST 시장에서도 시청 증가 흐름이 확인된다.
미디어 기술기업 아마기가 2026년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사 시스템을 통해 유통되는 약 6500개 FAST 채널의 올해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시청시간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증가했다. 광고 노출도 53% 늘었다.
미국과 캐나다가 여전히 가장 큰 시장이다. 두 지역은 조사 대상 글로벌 시청시간의 54%, 광고 노출의 74%를 차지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숫자는 단순 시장 성장률보다 ‘시청시간’이다.
FAST 사업자는 이용자로부터 월 구독료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가입자를 확보했는지만으로는 사업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채널이 얼마나 오래 시청됐는지, 광고가 얼마나 노출됐는지, 광고 공간이 실제로 어느 가격에 팔렸는지가 중요하다.
유료 OTT가 가입자 수를 핵심 지표로 성장했다면 FAST는 시청시간과 광고 효율이 사업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한국도 ‘K-FAST’를 정책 의제로 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FAST를 별도의 미디어 산업으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수행한 ‘K-FAST 생태계 진흥 방안 연구’가 지난 9월 2일 공개됐다. 연구에는 국내외 FAST 시장과 삼성 TV 플러스·LG 채널·투비·플루토TV·로쿠 채널 등 주요 플랫폼, FAST 광고 수익배분 구조와 K-FAST 수출 모델이 함께 다뤄졌다.
FAST가 단순히 미국에서 성장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라 국내 콘텐츠의 해외 유통수단으로도 검토되고 있다는 의미다.
K콘텐츠에는 특히 중요한 문제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더라도 모든 콘텐츠가 글로벌 OTT의 메인 화면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제작된 콘텐츠에 비해 글로벌 유통 창구는 제한돼 있다.
FAST에서는 기존 콘텐츠를 영어권·스페인어권 등 지역별 채널로 묶거나 특정 장르를 중심으로 편성할 수 있다.
OTT에 작품 한 편을 판매하는 것과는 다른 유통방식이다.
한국 방송사와 제작사 입장에서는 보유 라이브러리를 반복 활용하면서 해외 광고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내일 서울에서 ‘무료인데 어떻게 돈 버나’를 묻는다
FAST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이 수익모델 때문이다.
9월 14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 중인 국제방송영상마켓 BCWW 2026은 15일 ‘무료 스트리밍, 유료 이상의 수익: FAST 시장의 비즈니스 방정식’을 별도 세션으로 다룬다.
미국의 무료 스트리밍 플랫폼 투비와 글로벌 FAST 유통 기술기업 월(Wurl), 국내 방송광고 판매를 담당하는 스마트미디어렙 등이 참여한다. 논의의 핵심도 시청자 규모와 광고단가, 채널 노출, 글로벌 유통과 수익배분이다.
제목 자체가 FAST 산업의 현재 질문을 보여준다.
‘무료인데 어떻게 돈을 버는가’다.
답은 이용자 한 명에게 월정액을 받는 대신 많은 이용자의 시청시간을 모아 광고시장에 판매하는 데 있다.
그래서 콘텐츠 숫자가 많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시청자를 오래 머물게 하는 콘텐츠와 채널을 확보하고, 광고를 지속적으로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FAST 시장이 성장할수록 콘텐츠 편성 능력과 광고 기술, 데이터를 둘러싼 경쟁도 함께 커질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를 없애는 서비스는 아니다
FAST의 성장을 곧바로 유료 OTT의 쇠퇴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두 서비스가 해결하는 이용자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형 신작 드라마나 영화를 원하는 이용자는 여전히 유료 OTT를 찾는다. 원하는 작품을 광고 없이 선택해 보는 경험 역시 구독 서비스가 가진 강점이다.
FAST는 반대쪽에 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작품이 없거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고 싶지 않을 때 채널을 켜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과거 TV 시청과 비슷한 수동적 소비를 디지털 환경으로 옮긴다.
결국 향후 스트리밍 시장은 ‘유료냐 무료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향보다 여러 모델이 함께 존재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유료 무광고 서비스와 광고형 저가 요금제, 무료 FAST와 AVOD가 이용자의 상황에 따라 한 화면 안에서 경쟁하는 구조다.
OTT가 없앤 줄 알았던 TV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다
FAST가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기술이 과거의 미디어 이용방식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OTT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을 봐야 했던 TV의 편성을 해체했다. 사람들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선택하기 시작했다.
FAST는 다시 채널과 편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방송망 대신 인터넷을 사용하고, 리모컨뿐 아니라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으며, 광고는 디지털 데이터와 결합한다. 과거 TV의 사용성을 스트리밍 기술로 재조립한 셈이다.
따라서 FAST의 성장은 넷플릭스 이후 또 다른 플랫폼이 등장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콘텐츠 산업을 지배해온 ‘모든 사람이 여러 구독료를 계속 낼 것’이라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무료 콘텐츠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광고와 데이터, 스마트TV를 만나 새로운 사업모델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