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시청 78%가 시리즈…영화는 어디서 살아남나
유럽 SVOD 시청시간 시리즈 78%·영화 22%…에피소드형 콘텐츠가 스트리밍 주도
2024년 유럽 시청각시장 약 1420억유로…글로벌 스트리머의 현지 오리지널 투자도 확대
영화는 극장·페스티벌·거래형 VOD 등 별도 회수전략 중요성 커져
유럽의 스트리밍 시장에서 시리즈가 영화보다 훨씬 많은 시청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시청각관측소가 집계한 2024년 자료에 따르면 구독형 주문형비디오, SVOD 서비스의 전체 시청시간 가운데 TV·SVOD 시리즈가 차지한 비중은 78%였고 영화는 22%에 그쳤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스트리밍 시대에 영화가 시리즈에 밀려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와 시리즈는 제작방식과 이용시간, 유통창구, 투자회수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시청시간 점유율만으로 어느 형식이 우월하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78대22라는 격차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에피소드형 콘텐츠가 왜 강한지, 영화가 앞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산업적 신호에 가깝다.
시리즈는 한 작품으로 여러 번 이용자를 다시 부른다
시리즈가 스트리밍에서 강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용자를 플랫폼 안에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한 편은 일반적으로 한 번의 연속된 시청으로 끝나지만, 시리즈는 여러 에피소드와 시즌으로 이어지면서 동일한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플랫폼에 접속하도록 만든다.
구독형 플랫폼의 사업모델에서는 한 번의 구매보다 구독을 얼마나 오래 유지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용자가 특정 시리즈를 보기 위해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구독을 유지한다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고객 이탈을 늦추는 효과가 생긴다.
특히 인기 시리즈는 한 시즌의 성공이 다음 시즌 제작으로 연결되고, 기존 시즌을 다시 보는 수요까지 만들 수 있다. 작품 하나의 생명주기가 영화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때문에 시리즈는 단순히 시청시간이 길어서 유리한 것이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독경제와 구조적으로 잘 맞는 형식으로 평가된다.
시청시간 78%가 제작량 78%라는 뜻은 아니다
유럽시청각관측소가 발표한 78%는 시리즈가 전체 콘텐츠 제작량의 78%를 차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SVOD에서 이용자들이 실제로 소비한 시청시간의 비중이다.
작품 수와 시청시간은 다른 지표다.
2시간짜리 영화 한 편과 10시간 분량의 시리즈 한 시즌을 각각 한 사람이 모두 시청했다고 가정하면, 동일한 한 작품이라도 시리즈 쪽에 훨씬 많은 시청시간이 기록된다.
따라서 시리즈의 시청시간 비중이 높다는 사실은 이용자의 소비행태를 보여주는 지표이지 영화 제작 자체가 22% 수준으로 축소됐다는 의미로 볼 수 없다.
실제로 유럽의 장편영화 제작 편수는 2024년 2523편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스트리밍에서 시리즈 시청 비중이 높아졌지만 영화 제작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영화는 스트리밍만으로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영화는 시리즈와 달리 극장이라는 독립적인 유통창구를 갖고 있다. 작품에 따라 국제영화제와 극장 개봉을 거친 뒤 유료 VOD, 방송, 구독형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는 여러 단계의 유통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의 경제적 성과를 SVOD 시청시간 하나로만 평가하면 전체 수익구조의 상당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극장 흥행을 통해 제작비 일부를 먼저 회수하고, 이후 국가별 배급권과 항공·호텔 등 부가판권, TV 방영권, VOD와 스트리밍 계약으로 수익을 이어가는 방식은 여전히 영화 산업의 중요한 구조다.
특히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는 스트리밍 시청시간보다 영화제 수상과 극장 배급, 공공지원, 해외 판권 거래 등이 작품의 경제적 생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랫폼은 ‘다음 화’를 가진 콘텐츠를 선호할 이유가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 입장에서 시리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한 작품 안에서 이용자와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을 본 이용자에게 다음 편을 제안할 수 있고, 한 시즌을 마친 뒤에는 후속 시즌이나 비슷한 장르의 다른 시리즈로 연결할 수 있다. 추천 알고리즘과 자동재생 기능 역시 이런 연속 시청을 강화한다.
플랫폼이 시리즈를 통해 얻는 것은 단순한 시청시간만이 아니다. 어떤 지점에서 이용자가 시청을 중단하는지, 어떤 배우와 장르에서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는지 등 이용행태에 관한 데이터도 축적할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투자판단과 추천 알고리즘 개선에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시리즈는 플랫폼 사업모델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다.
글로벌 스트리머의 유럽 투자도 빠르게 늘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는 실제 제작비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유럽시청각관측소에 따르면 글로벌 스트리머가 유럽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8%에서 2024년 24%까지 높아졌다.
플랫폼이 단순히 미국 콘텐츠를 유럽에 유통하는 사업자에서 유럽 현지 콘텐츠를 직접 발주하고 투자하는 주요 제작주체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관련 통계는 집계 기준에 따라 비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별도의 2024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분석에서는 유럽 전체 오리지널 콘텐츠 지출 251억유로 가운데 약 3분의 1을 글로벌 스트리머가 담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통계는 적용 국가와 콘텐츠 범위가 별도로 설정돼 있어 24% 수치와 단순 비교할 때는 집계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흐름은 글로벌 플랫폼이 유럽 콘텐츠 제작비 조달에서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가 늘어도 모든 국가에 고르게 가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스트리머가 유럽 콘텐츠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모든 국가의 제작사가 같은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럽시청각관측소는 글로벌 스트리머의 유럽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가 일부 국가에 상당히 집중돼 있다고 분석했다. 2024년 기준 영국과 스페인이 글로벌 스트리머의 유럽 오리지널 콘텐츠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언어권과 제작 인프라, 세제혜택, 국제적인 배급 가능성 등에 따라 콘텐츠 투자가 특정 시장으로 몰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전체의 스트리밍 투자가 늘더라도 소규모 언어권이나 제작기반이 약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시리즈 편중은 영화 투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플랫폼에서 시리즈가 더 많은 시청시간을 확보하면 신규 콘텐츠 투자에서도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은 이용자의 시청시간과 완주율, 신규 가입자 유입, 구독 유지율 등을 분석해 다음 작품의 투자규모와 장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이용자를 오래 붙잡는다는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면 플랫폼은 유사한 형식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할 유인이 생긴다.
과거 유럽시청각관측소 분석에서도 글로벌 스트리머의 극본 콘텐츠 투자에서 시리즈 비중이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바 있다. 2023년 자료에서는 글로벌 스트리머의 극본 콘텐츠 투자 가운데 시리즈가 약 90%, 영화가 약 10%를 차지했다.
다만 투자액의 형식별 비중과 이용자 시청시간 비중은 서로 다른 지표이므로 직접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구독 유지’보다 한 번의 강한 사건을 만든다
영화는 스트리밍 시리즈와 다른 방식으로 산업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극장 개봉과 영화제 출품, 시상식, 감독과 배우의 브랜드 가치처럼 짧은 기간에 높은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다.
한 편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면 해당 작품뿐 아니라 제작사와 감독, 배우, 국가 영화산업 전체의 인지도를 높일 수도 있다.
시리즈가 장기간 이용자를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콘텐츠라면 영화는 제한된 시간 안에 강한 문화적 사건을 만드는 콘텐츠에 더 가까운 경우가 있다.
따라서 플랫폼의 구독 유지율만으로 영화의 가치를 평가하면 영화가 만들어내는 극장수익과 문화적 파급력, 장기적인 IP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유럽 영화의 과제는 스트리밍 밖에서도 돈을 버는 것
시리즈 중심의 스트리밍 환경이 강해질수록 영화는 여러 유통창구를 연결하는 전략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극장에서 일정한 매출을 확보하고 영화제와 해외 배급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뒤, 유료 VOD와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면서 작품의 수익기간을 길게 만드는 방식이다.
모든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유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리밍 한 곳에 제작비 회수를 의존할 경우 플랫폼과의 협상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독립 제작사라면 국가별 배급권을 분리하거나 극장과 VOD, 방송, SVOD의 권리를 각각 판매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에서 여러 수익원을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해질 수 있다.
시리즈도 성공작 몇 편에 시청이 몰린다
시리즈가 전체적으로 강하다고 해서 모든 시리즈가 많은 시청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아니다.
유럽시청각관측소의 SVOD 이용 분석에서는 전체 카탈로그에 수많은 작품이 존재하지만 실제 시청은 소수 콘텐츠에 강하게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작품 가운데 0.1%에도 미치지 않는 극소수 콘텐츠가 전체 시청시간의 약 14%를 차지했다. 영화와 시리즈 모두 비슷한 집중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플랫폼 시장이 시리즈에 유리하면서도 동시에 승자독식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시리즈가 제작돼도 실제 이용자 선택을 받는 작품은 일부에 그칠 수 있고, 인기작 확보 경쟁이 심해질수록 배우와 작가, 제작비에 대한 경쟁도 커질 수 있다.
유럽 콘텐츠라고 모두 같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시청시간을 콘텐츠의 출신 지역별로 보면 또 다른 차이가 나타난다.
2024년 유럽 SVOD 이용에서 유럽 콘텐츠가 차지한 비중은 약 25%였으며, 이 가운데 EU 콘텐츠는 16% 수준이었다. 특히 EU 영화는 전체 영화 시청시간 가운데 22%를 차지한 반면 EU 시리즈는 시리즈 시청시간의 14%를 차지해, 유럽 작품 안에서는 오히려 영화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비중을 보였다.
전체 시장에서는 시리즈가 압도적이지만 로컬 콘텐츠 경쟁력만 놓고 보면 영화가 반드시 더 약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차이는 스트리밍 시장을 ‘영화 대 시리즈’라는 한 가지 구도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규제가 플랫폼의 투자 방향에도 영향을 준다
유럽에서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 현지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서 영향력을 키우면서 지역 콘텐츠 투자와 편성에 관한 규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시청각관측소도 글로벌 스트리머의 유럽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가 늘어난 배경 가운데 하나로 규제적 인센티브를 지목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 스트리밍 서비스에 현지 콘텐츠 투자 의무를 부과하거나 카탈로그에서 유럽 작품 비중을 확보하도록 요구하는 정책이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유럽 제작사에 새로운 투자재원을 제공하는 한편 플랫폼 입장에서는 어떤 국가와 형식의 콘텐츠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비용요인으로 작용한다.
1420억유로 시장에서도 플랫폼의 힘은 계속 커진다
2024년 유럽 시청각시장의 전체 매출은 약 1420억유로로 추산됐다. 여기에는 스트리밍 구독료뿐 아니라 유료방송과 영화관 티켓, 홈비디오 등 다양한 영역이 포함돼 있으며 소비자 지출은 약 720억유로로 전체 시장의 절반을 넘었다.
즉 유럽 시청각산업은 스트리밍 하나로만 구성된 시장이 아니다. 극장과 전통 방송, 유료방송, 다양한 VOD가 함께 존재하는 복합시장이다.
그럼에도 이용자의 시청시간과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에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제작되는 작품의 길이와 형식, 장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자본을 제공하는 주체가 어떤 콘텐츠를 선호하느냐가 실제 제작현장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 78대22를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유럽에서 시리즈가 SVOD 시청시간의 78%를 차지했다는 결과를 한국 스트리밍 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국가마다 OTT 가입자 구성과 콘텐츠 선호, 극장 이용률, 방송시장 구조, 로컬 플랫폼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은 여러 언어권과 국가별 영화지원제도, 공영방송 체계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영화 제작과 극장 유통을 지원하는 제도도 국가별로 크게 다르다.
한국 역시 극장산업과 방송사, 국내 OTT, 글로벌 플랫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비율을 국내 시장 전망치처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스트리밍 플랫폼이 시리즈를 통해 구독시간을 늘리고, 성공한 IP를 여러 시즌에 걸쳐 확장하려는 구조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살펴볼 가치가 있는 산업적 흐름이다.
영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 달라진다
유럽 SVOD 시청시간에서 영화가 22%에 머문다는 수치는 영화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2024년 유럽에서는 장편영화 2523편이 제작돼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영화는 여전히 극장과 영화제, VOD, 방송을 연결하는 독자적인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스트리밍에서 시리즈가 78%의 시청시간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형식이 됐다는 사실은 제작비의 흐름과 플랫폼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시리즈는 여러 에피소드와 시즌을 통해 이용자를 장기간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데 유리하고, 성공작은 후속 시즌과 스핀오프로 확장하기 쉽다. 반면 영화는 제한된 상영시간 안에서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극장과 해외 배급, 영화제, 거래형 VOD, 스트리밍을 연결하는 보다 다양한 회수전략이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 시리즈와 영화의 경쟁은 어느 형식이 살아남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경제모델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유지되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스트리밍이 시청의 중심으로 이동할수록 시리즈는 플랫폼의 구독경제와 더 강하게 결합하고, 영화는 스트리밍 밖에 존재하는 극장과 영화제, 판권시장의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리즈가 스트리밍의 시간을 장악했다면, 영화의 과제는 한 편의 작품을 여러 유통창구와 수익원으로 연결해 그 시간을 경제적 가치로 바꾸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