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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운명 결정?”…차별 논리 된 ‘유전자 결정론’ 비판, 신간 ‘나쁜 유전자’

[사진:나쁜 유전자 표지. 제공:이른비]

유전자가 인간의 능력과 성향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가운데, 이를 과학적으로 반박하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분자생물학자 정우현이 쓴 ‘나쁜 유전자’(이른비)는 유전자 결정론이 과학적 사실처럼 소비되며 차별의 논리로 작동해온 과정을 짚는다.

책은 ‘지능 유전자’, ‘범죄 유전자’, ‘동성애 유전자’ 등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을 사례로 제시했다. 저자는 이 같은 개념이 복잡한 생물학적 현상을 단순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특정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이나 성격을 직접 결정한다는 통념은 과학적 근거보다 해석의 산물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실제 유전학 연구는 단일 유전자로 인간 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방향으로 축적되고 있다. 202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대규모 유전체 연구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유전자 변이가 상호작용하는 구조로 나타났다. 특정 유전자 하나로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과다.

국내 연구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확인된다. 2024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이 발표한 분석에서는 주요 질환과 행동 특성이 유전자뿐 아니라 환경 요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고 밝혔다. 유전적 요인은 가능성의 범위를 제시할 뿐 결과를 단정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환경 변수의 영향도 크다. 동일한 유전적 조건을 가진 경우에도 성장 환경, 교육 수준, 사회적 경험에 따라 발현 양상이 달라지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됐다. 유전 정보가 곧 개인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단선적 구조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문 학회 역시 유전자 결정론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2018년 미국유전학회(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는 성명을 통해 “복잡한 인간 특성을 단일 유전자로 설명하는 시도는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며 “이 같은 단순화는 사회적 오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책은 유전자 개념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사용됐는지도 함께 다뤘다.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확산된 우생학 정책은 ‘열등한 유전자’ 개념을 근거로 강제 불임과 이민 제한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 과학 개념이 정책과 결합할 경우 차별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례다.

최근에도 유전자 담론은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연예인 외모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우월한 유전자’라는 표현은 과학적 개념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형질을 유전자 우열로 설명하는 방식이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저자는 유전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 자체를 문제로 짚었다. ‘공격적’, ‘열등한’ 등 가치 판단이 결합된 표현이 인간 행동을 단순화하고 집단 간 차이를 본질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는 특정 결과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조건 속에서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결국 핵심은 해석 방식에 있다. 유전자를 결과의 원인으로 단정하는 순간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조건은 배제된다. 이 과정에서 차별과 낙인이 강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책은 유전자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사회적 해석 사이의 간극을 짚는다. 유전자 담론이 반복되는 현재, 과학 개념이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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