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지키면 한국영화가 살아날까…‘홀드백’ 처방의 역설
영화 한 편이 극장에서 상영된 뒤 넷플릭스나 IPTV 같은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한동안 영화계 내부의 유통 관행 정도로 여겨졌던 이 질문이 한국영화 산업정책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의 극장 개봉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다른 플랫폼에 공개하기까지 일정 기간을 두는 이른바 ‘홀드백’ 운영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극장 상영 종료 후 최대 6개월 동안 다른 플랫폼 공급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하지만 제작·배급사와 영화인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법률로 획일적인 기간을 정하기보다 업계 자율협약을 통해 절충점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문체부는 8월 중 운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홀드백을 둘러싼 논쟁은 얼핏 극장과 OTT의 유통 순서를 정하는 기술적인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를 무엇으로 진단할 것이냐는 훨씬 큰 질문이 들어 있다. 극장업계가 보는 위기의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코로나19 이후 OTT 이용이 일상화되고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관객이 굳이 비싼 티켓을 사서 극장을 찾을 이유가 줄었다는 것이다. 극장의 독점 상영기간이 일정 수준 보장돼야 관객이 극장으로 움직이고, 극장 매출이 배급과 투자로 이어져 다시 영화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유지된다는 논리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극장산업의 장기 침체가 있다. 팬데믹 기간 관객이 급감한 뒤 극장은 좀처럼 과거의 규모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OTT는 그 사이 콘텐츠 소비의 핵심 창구로 자리 잡았다. 한 작품을 극장에서 놓쳐도 얼마 뒤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 상황에서 극장업계가 최소한의 ‘시간 장벽’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홀드백을 단순히 극장 사업자의 이익 보호 장치가 아니라 극장 매출을 투자·제작으로 환류시키는 산업 생태계 보호 장치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해 극장가의 숫자는 이 진단을 조금 복잡하게 만든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2026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상반기 전체 극장 매출액은 5790억원, 관객 수는 5705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1.9%, 34.2% 증가했다. 특히 한국영화 매출액은 3702억원, 관객 수는 3737만명으로 각각 81.7%, 74.9% 뛰었다. 한국영화 매출은 코로나19 이전인 2017~2019년 상반기 평균의 94.2% 수준까지 회복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비롯한 한국영화 흥행작들이 시장을 이끈 결과다.
이 수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은 정말 OTT 때문에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인가. 올해처럼 보고 싶은 영화가 등장하면 관객은 다시 극장으로 움직였다. 과거 영진위의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서도 극장 관람 감소 이유로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24.8%, ‘티켓 가격이 비싸서’가 24.2%로 높았다. ‘조금 기다리면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있어서’라는 응답은 16.6%였다. 조사 시점과 현재 시장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극장 침체를 OTT의 빠른 공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홀드백 정책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대작에는 일정 기간 극장 중심의 유통 질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객이 집중되는 개봉 초기 극장 매출을 최대화하고, 이후 IPTV와 OTT 등으로 이동하며 추가 수익을 얻는 전통적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같은 조건에 놓여 있지는 않다. 작은 규모의 영화나 독립·예술영화, 개봉 직후 충분한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한 작품은 극장에서 수익을 내지 못했을 때 IPTV와 OTT가 사실상 두 번째 생존 창구가 된다.
그런 작품까지 몇 달 동안 다른 플랫폼으로 갈 수 없게 한다면 홀드백은 보호막이 아니라 족쇄가 될 수 있다. 개봉 첫 주 흥행에 실패해 극장 상영이 사실상 끝난 영화가 장기간 온라인 유통도 하지 못한다면 제작·배급사는 투자금을 회수할 통로를 잃는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중소 제작사에게 몇 달의 현금 흐름 공백은 대형 투자·배급사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역시 일률적인 홀드백이 중소영화의 수익 기반을 약화하고 오히려 OTT 직행을 늘릴 가능성을 우려했다. 영화가 극장에 더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극장을 건너뛰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영화계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작지 않다. 지난 4월 영화단체연대회의 등 영화계 인사들은 6개월 홀드백 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감독과 배우 등 영화인 581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특정 영화에 스크린이 집중돼 다른 작품의 상영기간이 짧아지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 극장에서 밀려난 영화가 다른 플랫폼으로 가는 길까지 막는 것은 투자금 회수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홀드백보다 스크린 집중 문제와 제작 투자 위축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쟁점은 ‘6개월’이라는 숫자에도 있다. 임오경 의원 등이 지난해 9월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뒤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기간을 규율하려는 내용을 담았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상영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일부 극장에서 소규모 장기 상영이 계속되는 영화는 실제 홀드백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률적 규제가 OTT 사업자의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줄일 가능성을 우려했고, 문체부 역시 법적 강제보다는 제작·배급사의 영업 자율성을 고려한 협약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프랑스는 흔히 강력한 홀드백 정책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지만, 모든 플랫폼에 하나의 기간을 똑같이 적용하는 방식은 아니다. 콘텐츠 투자 수준과 플랫폼 성격 등에 따라 공개 시점을 달리하는 ‘미디어 연대기’를 운영한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국가의 제작 지원을 받은 영화 등에 법정 홀드백을 적용하고, 미국과 일본은 법률보다 계약과 시장 관행에 맡기는 방식이 중심이다. 미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극장 독점 상영기간 자체가 과거보다 크게 짧아졌다. 해외 사례를 근거로 국내에 홀드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기간뿐 아니라 각 나라의 제작지원, 유통시장, 극장 구조까지 함께 비교해야 하는 이유다.
소비자의 이해도 빼놓을 수 없다. 홀드백이 길어지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은 그만큼 기다려야 한다. 그 부담을 감수하도록 하려면 ‘극장을 살려야 영화산업 전체가 산다’는 정책적 효과가 충분히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높은 티켓 가격이나 상영작 편중, 지역별 극장 접근성 같은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온라인 공개만 늦추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권을 제한하는 규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를 보는 방식이 극장과 TV, 모바일로 다변화된 시대에 특정 유통 창구를 살리기 위해 다른 창구의 문을 닫는 것이 지속 가능한 문화정책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고 홀드백 자체를 무용한 제도로 단정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있느냐, 없느냐’보다 어떤 영화에 얼마 동안, 어떤 조건으로 적용하느냐다. 제작비와 작품 규모, 극장 상영 실적, 공적 지원 여부, 배급사의 선택 등을 고려한 차등형 모델을 설계할 수 있다. 최소 기간을 두되 제작·배급사가 조기 온라인 공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거나, 정부 지원을 받은 상업영화와 민간자본으로 제작된 영화에 서로 다른 원칙을 적용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극장이 산업에 기여하는 투자와 상영 다양성 확대를 조건으로 홀드백의 혜택을 연계하는 방안 역시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자율협약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OTT의 공개 시점을 늦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극장은 무엇을 양보하고, 제작·배급사는 무엇을 보장받으며, OTT는 한국영화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까지 포함한 새로운 거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홀드백만 도입하고 스크린 편중, 제작비 상승, 투자 위축, 티켓 가격, 중소영화의 유통난을 그대로 둔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극장가의 반등은 역설적으로 중요한 힌트를 준다. 관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움직일 이유를 찾고 있었다. 경쟁력 있는 영화가 등장하자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한국영화의 위기를 단순히 ‘OTT가 너무 빨리 영화를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규정하면 이 신호를 놓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극장과 OTT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정책이 아니라 좋은 영화가 제작되고, 관객과 만날 충분한 기회를 얻고, 여러 유통 창구에서 수익을 회수해 다시 제작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홀드백은 그 구조를 만드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영화 위기의 만능 처방일 수는 없다. 정부가 내놓을 답에서 정말 확인해야 할 것도 ‘몇 개월을 막을 것인가’라는 숫자가 아니다. 극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영화 자체를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작자와 플랫폼, 관객의 선택을 얼마나 함께 살릴 수 있는가다.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영화를 살리기 위해 세운 시간의 벽이 오히려 영화와 관객 사이를 가르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