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건강은 유전이 아니라 돈”… ‘건강 격차’ 현실로

[출처:픽사베이]

건강을 결정짓는 요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유전보다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더 중요한 요소로 보는 흐름이 나타났다. 건강을 개인의 몸 상태가 아니라 경제 조건의 결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26년 1월 공개한 ‘2025년 건강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수입 및 사회적 수준’을 꼽은 응답이 33.3%로 집계됐다. 2023년과 2024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유전 요인은 12.8%로 내려갔다. 건강을 설명하는 기준이 체질에서 경제로 이동한 결과다.

이 변화는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았다. 청년층과 중년층, 노년층 모두 동일하게 소득을 1순위로 선택했다. 세대별 차이보다 공통 인식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건강이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 인식은 실제 현실과 맞물려 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소득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보다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고혈압, 당뇨병, 비만 등 주요 질환에서 계층 간 차이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흡연율 역시 소득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건강 격차는 생활 방식이 아니라 접근성에서 발생한다. 운동시설 이용, 균형 잡힌 식단 구성, 예방적 의료 서비스 이용은 모두 비용이 필요한 영역이다. 같은 건강 목표를 두고도 출발 조건이 다르다. 건강이 개인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실제 지출에서도 이 간극이 드러난다.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비용은 월 평균 27만3000원이었지만 실제 지출은 13만9000원에 그쳤다. 전년도보다도 줄어든 수치다.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비용 부담이 행동을 제한하는 상황이다.

시간 역시 동일하다. 주당 적정 투자 시간은 8시간으로 인식됐지만 실제 투자 시간은 5.3시간에 머물렀다. 소득 수준에 따라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이 달라지는 구조가 건강 관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건강을 개인 의지 문제로 보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사에서는 건강 실천이 어려운 이유로 ‘의지 부족’이 35.8%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시간 부족과 비용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에서 개인 책임만 강조되는 해석이 유지되고 있다.

이 간극은 시장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맞춤형 식단, 개인 트레이닝, 건강 관리 서비스 등 고가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건강 관리가 소비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비용 지불 능력에 따라 서비스 접근성이 달라지는 구조가 강화됐다.

동시에 공공 영역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건강 투자 주체로 중앙정부를 꼽은 응답이 44.3%로 개인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건강을 개인 책임으로만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공공 체육시설, 지역 보건 서비스, 예방 중심 정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흐름이다.

이 변화는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 조사에서 건강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한 이유로 ‘인구 고령화’를 꼽은 응답이 56.4%로 가장 높았다. 의료비 증가와 만성질환 관리 부담이 동시에 커지면서 건강이 경제 문제로 인식되는 배경이 됐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질병 치료보다 예방과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건강을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관리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됐다.

반면 구조적 한계는 그대로다. 건강을 돈의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실제 지출은 줄고 있다. 비용과 시간 제약이 유지되는 한 건강 격차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인식 변화가 행동과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