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존댓말을 번역하면 인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한국문학 번역에서 존댓말 번역은 단순한 어미 바꾸기가 아니다. 영어처럼 높임말 체계가 한국어만큼 세분화되지 않은 언어에서는 말끝 하나를 옮기는 대신, 누가 누구를 어떻게 부르는지, 명령이 얼마나 직접적인지, 문장이 얼마나 방어적이거나 단정적인지로 관계를 다시 짜야 한다. 그래서 같은 뜻의 문장이라도 번역 뒤에는 인물의 위계와 친밀감이 달라져 보일 수 있다.
이 차이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난다. 창비가 2007년 펴낸 한국어판과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긴 『The Vegetarian』의 가족 식사 장면을 보면, 아버지는 영혜에게 “애비 말 듣고 먹어”라고 몰아붙이고, 영혜는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라고 답한다. 영어판에서는 각각 “Eat it! Listen to what your father’s telling you and eat.”, “Father, I don’t eat meat”로 제시된다.
반말의 폭력, 존댓말의 저항
한국어 원문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관계다. 아버지의 말은 짧은 명령형이고, 스스로를 ‘나’가 아니라 ‘애비’라고 부르며 가부장적 위치를 앞세운다. 반면 영혜는 갈등 한복판에서도 ‘아버지’라는 호칭과 ‘저는… 안 먹어요’라는 존댓말을 유지한다. 순종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은 채 선을 긋는 방식이다.
영어판은 이 높낮이를 어미로는 살릴 수 없다. 대신 “Father”라는 호칭을 남기고, 아버지 쪽에는 반복 명령과 직접 화법을 집중해 압박을 만든다. 영혜의 문장은 짧고 평평하다. 한국어의 존댓말이 주는 미묘한 거리감, 곧 “맞서지만 무너뜨리지는 않는” 태도는 일부 옅어지지만, 장면 전체의 힘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번역은 말끝을 잃는 대신 주변 장치를 늘린다
이때 번역가는 보통 세 가지를 쓴다. 첫째, 호칭을 남긴다. 아버지, 형, 선배, 어머님 같은 말은 친족관계와 서열을 한 번에 보여준다. 둘째, 문체를 조절한다. 축약형을 줄이거나 완곡한 표현을 넣어 공손함을 만들고, 반대로 짧은 명령문으로 위압을 만든다. 셋째, 서술을 보강한다. 누가 “쏘아붙였는지”, “분명하게 말했는지”, “타일렀는지”를 덧붙여 한국어 어미가 하던 일을 주변 문장에 나눠 맡긴다.
다만 이것은 언제나 등가교환이 아니다. 영어에서는 높임의 층위가 줄어드는 대신 독자가 인물의 태도를 더 넓은 문맥에서 읽게 된다. 일본어나 스페인어처럼 상대 높임이나 경어 자원이 더 많은 언어는 한국어의 차이를 더 세밀하게 옮길 여지가 있지만, 그 경우에도 가족 호칭, 지역성, 세대감까지 완전히 겹치지는 않는다.
정확한 번역은 단어보다 관계를 보존하는 일
존댓말 번역을 두고 “빠졌다, 살아남았다”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어의 ‘-요’와 ‘-다’를 다른 언어의 한 요소와 일대일로 맞바꾸기는 어렵다. 대신 번역이 원문의 관계망, 곧 나이·권위·친밀감·두려움·저항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시 조직했는지를 봐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2008년 시작한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한국문학 디지털도서관에서 52개 이상 언어의 번역서지와 전자책, 작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번역아카데미는 2022년 말 기준 1300명 이상 수료생을 배출했고, 디지털도서관 안내 페이지에는 2025년 12월 31일 기준 번역서지정보 7832건이 제시돼 있다. 한국문학 번역이 늘어날수록 존댓말 번역의 질문도 더 자주 돌아온다. 결국 독자가 읽어야 할 것은 단어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그 문장이 옮겨진 뒤에도 인물 사이의 권력과 거리가 여전히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