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같은 ‘춘향가’인데 소리꾼마다 다른 대목을 부르는 까닭

같은 판소리에서 사설과 가락이 조금씩 달라도 같은 작품으로 볼 수 있을까. 판소리에서는 대체로 그렇다. ‘춘향가’라는 큰 서사와 인물, 핵심 장면을 공유한 채 스승에게서 배운 소리가 세대를 거치며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 차이는 아무렇게나 생긴 변형이 아니라, 유파와 바디, 더늠이라는 전승의 단위를 따라 설명된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은 유파를 판소리 전승 계보의 큰 갈래로, 바디를 같은 유파 안에서도 명창마다 달라진 음악적 구성과 내용의 구분으로 설명한다. 더늠은 기존 소리에 새로 다듬어 넣은 가락, 창법, 사설, 대목을 가리킨다. 같은 ‘춘향가’라도 소리꾼마다 부르는 대목과 짜임이 다른 까닭은 이 세 층위가 겹쳐 작동하기 때문이다.


동편제·서편제는 지역 이름이면서, 지금은 계보 이름에 가깝다


판소리를 설명할 때 흔히 동편제와 서편제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를 단순한 지역 구분으로만 보면 현재의 전승을 놓치기 쉽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의 동편제·서편제 항목은 두 유파가 처음에는 전라도 동북부와 서남부를 기반으로 형성됐지만, 20세기 들어 서울 중심의 공연 문화가 커지면서 지역 경계보다 소리의 계보와 음악적 특성이 더 중요해졌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오늘 전승되는 ‘춘향가’는 정정렬바디, 송만갑바디, 김세종바디, 동초제, 만정판처럼 같은 작품 안에서도 여러 계통으로 불린다. 이때 유파는 큰 혈통이고, 그 안에서 어느 명창이 어떤 식으로 짜고 다듬었는지가 바디를 나눈다.


바디는 “누구에게 배웠나”를 넘어 “어떻게 짰나”의 문제다


바디는 흔히 ‘판본’에 가깝다고 설명할 수 있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에 따르면 같은 동편제라도 송만갑바디와 김세종바디처럼 음악적 구성과 내용이 다르면 별도로 부른다. 단지 스승의 이름표만 붙는 것이 아니라, 장단의 흐름, 사설의 길이, 어떤 대목을 앞에 두고 뒤에 둘지까지 포함한 하나의 짜임이라는 뜻이다.

‘춘향가’의 대표 대목인 ‘쑥대머리’만 봐도 그렇다. 국악사전의 관련 항목은 이 대목이 여러 명창에게 전승되며 사설과 붙임새에서 차이를 보이고, 바디에 따라 앞뒤에 놓이는 장면의 순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같은 ‘쑥대머리’를 불러도 어떤 소리꾼은 앞 장면의 설득 대목 뒤에 놓고, 다른 계통은 다른 흐름 속에 배치하는 식이다. 대목 하나가 같아도 작품 전체의 호흡은 달라질 수 있다.


더늠은 명창의 창작이 작품 속에 남는 방식이다


더늠은 바디보다 더 작은 단위에서 차이를 만든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은 더늠을 기존 악곡에 새롭게 다듬거나 만들어 넣은 음악 요소 또는 대목으로 정의한다. 명창이 유난히 잘한 장기 대목, 새로 손본 가락, 다른 창법을 입힌 장면이 후대에 이름을 얻으면 더늠이 된다.

‘춘향가’의 ‘네 그른 내력’이 대표적이다. 국악사전은 이 대목이 염계달의 더늠에서 비롯된 ‘추천목’으로 전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추천목은 그네 뛰는 장면의 경쾌한 움직임을 소리로 살린 형식이다. 다시 말해 ‘춘향가’라는 큰 작품 안에, 특정 명창이 빚어 넣은 소리의 발명품이 살아남아 후대 창자들의 선택지가 된 셈이다.


같은 작품인가, 다른 작품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사설과 가락이 달라도 전승 계보 안에서 같은 서사와 핵심 대목을 공유하면 여전히 같은 ‘춘향가’다. 판소리는 악보를 고정해 복제하는 장르가 아니라, 구전심수로 이어지며 명창의 해석과 기량이 축적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는 훼손이 아니라 전승의 방식이 된다.

물론 모든 차이가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더늠은 한 대목의 차이이고, 바디는 작품 전체의 짜임 차이이며, 유파는 그보다 큰 계보의 차이다. 이 구분을 섞어 쓰면 판소리의 변형이 모두 즉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스승에게서 온 것이고 무엇이 명창의 창작인지 비교적 또렷한 층위가 있다. 같은 ‘춘향가’가 소리꾼마다 다르게 들리는 까닭은 바로 그 층위를 따라 전승과 창작이 함께 쌓여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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