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백남준의 브라운관을 새 화면으로 바꿔도 같은 작품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 1003대 가운데 모든 브라운관을 새 화면으로 바꾸지 않았다. 2023년 발간한 보존·복원 백서에 따르면 손상된 모니터 737대는 중고 브라운관과 부품으로 수리·교체했고, 더 이상 사용이 어려운 상단 6인치·10인치 브라운관 266대만 외형을 유지한 채 평면 디스플레이로 바꿨다.

이 결정은 “무엇을 남겨야 같은 작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미술관의 실제 답이기도 하다. 개별 기기 전부를 원본으로 고정하기보다 화면의 집합 구조, 작품의 비례와 배치, 영상의 흐름, 작동 방식과 보존 가능성을 함께 묶어 작품의 동일성을 판단했다는 뜻이다.

2026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은 정밀 점검을 위해 하루 2시간 예정 상영을 일시 중지한다고 안내했다. 다만 기사 작성 시점의 실시간 가동 상태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브라운관 1003대가 만든 탑, 그러나 같은 부품은 더 이상 없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램프코어 공간에 맞춰 제작된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1003대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원추형 철골 구조를 따라 층층이 쌓이고, 관람객은 그 주위를 감아 오르는 경사로를 따라 서로 다른 높이와 각도에서 화면 덩어리를 마주한다. 이 작품에서 TV는 낱개의 재생 장치이면서 동시에 건축적 재료다.

문제는 그 재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19년 발표한 3개년 계획과 2022년 재가동 기록을 보면, 다다익선은 2003년에도 모니터를 전면 교체했지만 이후 15년 동안 반복 수리를 거쳐야 했다. 2018년에는 전기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가동이 중단됐다. 원본성의 논의가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실제로 더는 구할 수 없는 부품과 안전 문제에서 시작된 셈이다.


CRT와 LCD의 차이는 단순한 화질 차이가 아니다


브라운관, 즉 CRT는 유리관 안쪽 형광면에 전자빔을 쏘아 빛을 만든다. 화면이 앞쪽으로 불룩한 곡면이고, 빛이 번지는 방식과 검은색이 잠기는 느낌, 주사선 특유의 떨림이 있다. 반면 LCD는 평평한 패널 뒤의 광원을 통과해 이미지를 만든다. 선명도와 안정성은 높지만, 같은 영상을 틀어도 색감과 명암, 화면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연구 자료도 이 차이를 분명히 적는다. 2019년 시범 교체 연구와 2021년 색차 조정 연구에서는 LCD로 바꾸면 선명도와 명암비가 개선되지만, 그 개선이 곧 작품에 맞는 재현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지나치게 또렷한 화면은 오히려 당시 CRT가 내던 빛의 질감을 바꿔 시각적 왜곡이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복원은 “더 좋은 화면”을 넣는 일이 아니라 “원래 화면과 얼마나 비슷하게 보이게 할 것인가”를 따지는 일이 됐다.


남겨야 할 것은 기기 전체가 아니라 작품을 성립시키는 층위들


다다익선 복원에서 남겨야 할 요소는 적어도 네 층으로 나뉜다. 첫째는 설치 구조다. 모니터가 어느 크기로 어느 층에 놓이는지, 탑의 비례와 공간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둘째는 화면의 외형과 시각 효과다. 이번에 LCD로 바뀐 266대도 상단의 6인치·10인치 구역에 한정됐고, 미술관은 모니터 외형을 유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셋째는 영상이다. 미술관은 작품에 쓰인 8개 영상을 디지털로 변환·복원했다. 넷째는 운영 조건이다. 전원부와 냉각설비를 교체하고, 2022년에는 6개월 시험 운전으로 가동 시간에 따른 노후화를 점검했다.

반대로 모든 개별 브라운관 자체를 절대적으로 보존해야만 같은 작품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실제 기록이 보여주듯, 보존 판단의 기준은 “1988년에 거기 있던 물건을 끝까지 붙드는가”보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다다익선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관계들이 유지되는가”에 더 가까웠다. 다만 이 판단이 곧 다른 미디어아트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일반 원칙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특정 기종의 물성이 핵심일 수 있고, 어떤 작품은 소프트웨어나 상호작용 규칙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백남준 브라운관을 새 화면으로 바꿔도 같은 작품이냐는 질문의 답은 조건부다. 일부 화면 교체만으로 곧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 화면이나 넣어도 같은 작품인 것도 아니다. 다다익선 복원 사례가 보여준 것은, 미디어아트의 동일성이 부품 하나에만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기술을 마음대로 갱신해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보존가는 남길 것과 바꿀 것을 구분해야 하고, 그 경계는 기록과 구조, 영상, 물성, 그리고 앞으로도 작동시킬 수 있는 가능성 위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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