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이병철 「유형의 땅 2」가 기록한 전쟁의 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다리와 청력을 잃은 가상 참전자의 다섯 개 독백
군화·보청기·곰팡이 핀 빵으로 포착한 전쟁…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시의 책임

래피드 트라이던트는 평화유지와 안정화 작전에 중점을 둔 미 육군 유럽사령부 주도의 장기 다국적 협력훈련이다. 이번 훈련에는 18개국에서 1,800명 이상의 병력이 참가했다.
사진=미 육군 제13공보파견대 알렉산더 스크립니추크 병장 제공
“어머니, 포탄이 쏟아지는 키이우의 밤은 지옥이었고.”
이병철 시인의 첫 시집 『어둠 속으로 기어가는 모르스 부호』에 수록된 「유형(流刑)의 땅 2」는 어머니를 부르는 한 참전자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화자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한쪽 다리와 청력을 잃었다. 병실과 전장을 오가는 기억 속에서 죽은 동료와 파괴된 도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차례로 꺼낸다.
작품에는 화자의 이름과 정확한 신원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는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나의 조국은 어떤가요”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싸우면서 한국을 귀환할 곳으로 인식하는 가상의 참전자로 읽을 수 있다. 작품만으로 국적이나 참전 경위를 더 구체적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제목의 ‘유형’은 죄인을 고향에서 떼어내 먼 곳으로 보내는 형벌을 뜻한다. 작품 속 화자는 법률에 따라 추방된 사람이 아니다. 전쟁으로 고향과 일상, 이전의 신체에서 밀려난 사람이다. 살아남았어도 과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가 선 전장은 또 하나의 유형지가 된다.
시는 1번부터 5번까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각 부분은 전황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키이우의 포격과 병실의 현재, 동료의 죽음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부상자의 기억을 따라 불규칙하게 이어진다.
첫 장면에는 포격으로 깨진 아파트 유리창이 등장한다. 사람이 떠난 창문은 거미줄이 점령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공격으로 도시의 생활은 멈췄지만, 거미는 폐허에 줄을 치며 인간이 비운 공간을 차지한다.
바닥에는 군화가 널려 있다. 시인은 시신을 직접 길게 묘사하는 대신 주인을 잃은 군화를 보여준다. 짝을 잃은 군화는 돌아오지 못한 병사와 절단된 다리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전쟁으로 사라진 사람의 자리가 하나의 사물 안에 남는다.
시체는 추운 날씨 탓에 부패하지 못한 채 놓여 있다. 살아남은 병사들도 귀와 팔, 다리를 잃었다. 전쟁의 결과는 국경선이나 점령지의 변화보다 훼손된 몸을 통해 전달된다.
화자 역시 전쟁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왼발을 잃었고 보청기를 껴야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포격은 멈춘 뒤에도 신체 내부에 흔적을 남긴다. 전장은 사라지지 않고 화자의 걷기와 듣기 속에서 지속된다.
작품에서 “내 몸도 이제는 예순이 되어가고”라는 문장은 전쟁이 사람의 시간을 얼마나 빠르게 소모하는지 보여준다. 화자의 실제 나이를 뜻할 수도 있고, 부상과 공포로 급격히 쇠약해진 몸을 나타낼 수도 있다. 작품은 어느 한쪽으로 의미를 고정하지 않는다.
전쟁은 3년을 지나고 있지만 평화는 멀리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 달력의 시간은 흐르지만 그의 몸은 전쟁이 시작된 순간에 붙잡혀 있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는 서술은 전쟁 기억의 지속성을 드러낸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전쟁의 규모가 작은 생존 물품으로 축소된다. 물은 썩어 마실 수 없고, 병사는 곰팡이가 핀 빵으로 하루를 버틴다. 화려한 무기 체계나 전략 대신 마실 물과 먹을 빵이 전장의 현실을 설명한다.
자폭 드론도 등장한다. 화자는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드론을 두려워하지만, 전쟁의 끝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무서워한다. 폭발은 순간적으로 몸을 파괴하지만 끝나지 않는 기다림은 사람의 시간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동료들은 전쟁 기계에 목숨을 잃고 화자의 곁에 시체로 쌓인다. 작품은 이들을 영웅으로 장식하지 않는다. 누구의 명령과 어떤 목적 아래 죽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가 죽음의 부조리를 키운다.
세 번째 부분에는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가 등장한다. 작품 속 설명에 따르면 그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중 의협심으로 참전했고 왼쪽 다리를 잃었다. 화자는 제임스가 미국을 세계의 경찰로, 우크라이나를 지켜야 할 우방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제임스가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는지는 작품에 제시되지 않는다. 기사에서는 그를 실존 참전자로 단정하기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다뤄야 한다. 그의 존재는 신념을 따라 전쟁에 들어간 젊은이도 국가의 명분과 무관하게 같은 신체적 상실을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화자는 21세기의 전쟁을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건으로 인식한다. 전쟁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누구의 명령으로 지속되는지 질문하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다. 국제정치의 논리보다 병사가 체감하는 혼란이 앞선다.
네 번째 부분에서 화자는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더라도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한국은 작품 속 화자에게 전쟁이 끝나는 장소이자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귀환지다.
그러나 귀환은 원래의 몸과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화자가 돌아가더라도 피 묻은 운동화와 보청기, 잘려나간 신체가 전쟁을 증언한다. 전장을 벗어나는 것과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같지 않다.
화자는 자신의 상처를 전쟁을 게임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탱크가 도로를 점령하고 군용 헬기가 도시로 들어오는 현실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화면 속 전쟁과 신체가 파괴되는 전쟁 사이의 거리를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는 시인의 반전 의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독재자와 협력자를 향한 분노도 숨기지 않는다.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직설적인 진술이 길어지면서 앞부분의 사물과 장면이 만든 시적 긴장이 다소 낮아지기도 한다.
「유형의 땅 2」의 표현이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은 전쟁을 설명하기보다 남겨진 사물을 보여줄 때다. 깨진 유리창에 내려앉은 거미줄, 주인을 잃은 군화, 썩은 물과 곰팡이 핀 빵, 피 묻은 운동화와 보청기가 이에 해당한다.
군화는 사라진 병사의 몸을 대신하고, 보청기는 포격이 남긴 침묵을 드러낸다. 곰팡이 핀 빵은 거대한 전쟁이 한 사람에게는 오늘을 버티기 위한 한 끼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물이 전쟁의 규모를 개인의 감각으로 바꾼다.
다섯 번째 부분에서 화자는 다시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가 자신의 불행을 모른 채 잠들기를 바라면서도 현재 자신이 전장에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도네츠크와 바흐무트를 거쳐 코스탄티니우카에서 싸우고 있다는 고백이다.
그는 무엇을 위해 기관총을 쏘고 누구를 위해 수류탄을 던지는지 묻는다. 작품은 이 질문에 정치적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전쟁의 대의와 명분이 희미해진 자리에는 살아서 아침을 맞고 싶다는 소망만 남는다.
어머니는 화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대상이다. 전장에서는 군복과 무기, 명령이 그를 병사로 규정한다.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 순간 그는 다시 누군가의 아들이 된다. 시는 전쟁이 지운 개인의 관계를 호명을 통해 복원한다.
형식적으로 「유형의 땅 2」는 서간체 산문시이자 극적 독백시로 볼 수 있다. 작품은 행갈이보다 문장과 문단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보이지 않는 청자인 어머니를 향해 한 화자가 계속 말한다는 점에서 편지와 독백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다섯 개 번호는 사건의 순서를 표시하는 장치라기보다 기억의 파편을 나누는 경계에 가깝다. 포격과 부상, 굶주림, 동료의 죽음, 귀환의 소망이 완전한 서사로 정리되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화자의 의식처럼 각 장면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이 형식은 독자를 전장 가까이 끌어들이지만 주의해서 읽어야 할 부분도 있다. 시인은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상의 참전자 목소리로 재현한다. 실제 지명과 무기, 전쟁 상황이 사용되면서 시적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좁아진다.
문학은 먼 곳의 고통을 상상하고 그 아픔에 응답할 수 있다. 반면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작업에는 사실성과 재현의 책임이 따른다. 작품 속 화자의 발화를 실제 참전자의 증언처럼 소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병철은 피해자를 관찰하는 외부 화자보다 부상당한 당사자의 1인칭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전쟁의 상처를 몸 가까이 전달하는 효과를 만든다. 동시에 시인이 타인의 전쟁 경험을 어디까지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남긴다.
작품은 그 질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 일부 정치적 진술은 전쟁의 복잡성을 압축하고, 화자의 목소리가 시인의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로 사용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훼손된 몸과 생활 사물을 통해 전쟁을 추상적인 국제정세에서 개인의 경험으로 옮긴 성과는 분명하다.
이병철은 강원 영월 출생으로 36년 동안 강원도 교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횡성 춘당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필명 ‘낭만바이크’로 활동하며 강원도의 자연과 도시 노동, 청년의 생계, 전쟁으로 파괴된 삶을 시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첫 시집 『어둠 속으로 기어가는 모르스 부호』에서 시인의 시선은 치악산과 경포호, 소돌해변을 지나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로 이동한다. 지역의 구체적인 장소에서 출발해 자신이 직접 만나지 못한 타인의 고통까지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시집 제목의 ‘모르스 부호’는 단절된 세계를 향해 보내는 짧은 신호를 상징한다. 「유형의 땅 2」에서 그 신호는 전장의 참전자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다섯 개의 독백이다. 상대에게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발화는 중단되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전쟁의 명분보다 귀환을 기다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다. 화자는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고 전우들도 함께 돌아오지 못한다. 그가 바라는 아침은 승전의 날보다 총을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는 날에 가깝다.
「유형의 땅 2」는 전쟁을 설명하는 시가 아니라 전쟁이 한 사람에게 무엇을 빼앗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형지는 지도 위의 낯선 땅에만 있지 않다. 잃어버린 다리와 사라진 청력, 끝나지 않는 기억 속에서도 사람은 자신이 살던 세계로부터 추방될 수 있다.
작품 정보: 이병철, 「유형(流刑)의 땅 2」, 『어둠 속으로 기어가는 모르스 부호』, 82~8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