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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으면 정말 더 똑똑해질까…‘집단지성’이 작동하는 조건

교육부의 2026년 학술연구 지원사업 종합계획 안내 이미지. 인문사회 분야 집단연구 확대를 포함해 총 1조712억원 규모의 연구 지원이 추진된다. / 자료=교육부

복잡한 사회문제를 한 사람의 전문가가 해결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도 기후위기, 인구 감소, 지역소멸, 노동 변화처럼 여러 분야가 얽힌 문제는 하나의 전공이나 한 사람의 판단만으로 답을 찾기 어렵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인문사회 분야의 ‘집단연구’를 확대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26일 2026년 인문사회 분야 학술지원 집단연구군 신규과제 94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10개 늘어난 규모로, 올해 신규과제에는 총 195억원이 지원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여러 분야의 지식을 결합해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개념이 ‘집단지성’이다.

집단지성이란 여러 사람이 가진 서로 다른 지식과 판단을 모았을 때 개인 한 명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터넷 백과사전부터 시민참여형 연구,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예측시장까지 집단지성이 활용되는 사례는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언제나 더 현명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실수를 하고, 강한 목소리를 가진 몇 사람이 전체 판단을 끌고 가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면서 오히려 편견이 강화되기도 한다.

집단지성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모순에 있다.

여럿이 모이면 한 사람보다 똑똑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 사람보다 훨씬 크게 틀릴 수도 있다.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는 20세기 초 영국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의 관찰이다. 한 가축 품평회에서 사람들이 소의 무게를 추정하도록 했는데, 참가자 개개인의 답에는 상당한 오차가 있었지만 여러 답을 모아 평균을 내자 실제 무게와 매우 가까운 값이 나왔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사람들이 모두 뛰어난 전문가였다는 데 있지 않다.

각자가 조금씩 다른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판단했고, 여러 사람의 오류가 서로 상쇄되면서 집단 전체의 판단이 정확해졌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집단지성이 잘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다양성’이다.

모두가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정보를 보며 비슷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사람의 숫자가 늘어도 새로운 판단이 나오기 어렵다. 반대로 서로 다른 전공과 지역, 세대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를 바라보면 한 사람이 놓친 부분을 다른 사람이 발견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위기를 예로 들면 과학자만으로 문제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 데이터를 분석하는 자연과학자뿐 아니라 산업 변화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정책을 설계하는 행정학자, 지역 주민의 삶을 살펴보는 사회학자와 문화적 변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자의 시각이 함께 필요하다.

여러 분야의 연구자가 함께 문제를 다루는 집단연구가 강조되는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교육부가 올해 선정한 94개 신규과제 역시 ‘인문한국 3.0 지원’, ‘인문사회연구소 지원’, ‘글로벌인문사회융합연구 지원’, ‘사회과학연구 지원’ 등 4개 사업을 통해 대학과 연구소의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구조다. 한 명의 연구자에게 모든 답을 요구하기보다 여러 연구자가 축적한 지식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다양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독립성’도 필요하다.

회의에서 첫 번째 사람이 강한 의견을 제시하면 뒤에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조직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 먼저 결론을 말하면 다른 구성원이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워진다.

이때 여러 사람이 회의에 참석했다고 해서 실제로 여러 개의 생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집단의 결정이지만 사실상 한 사람의 판단을 나머지가 따라가는 상황이 된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집단사고’다.

구성원들이 갈등을 피하고 합의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잘못된 판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조직의 결속력이 강할수록 오히려 반대 의견이 사라지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집단지성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회의 전에 각자 의견을 따로 작성하거나, 익명으로 판단을 제출하거나, 일부 구성원에게 의도적으로 반대 논리를 검토하게 하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집단의 의견을 어떻게 모으는지도 중요하다.

100명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마지막에 한 사람만 결정을 내린다면 집단의 지식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다수결만으로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항상 좋은 방법은 아니다.

복잡한 정책이나 과학 문제에서는 다수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지성을 활용할 때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의견을 평균할 것인지, 전문가의 판단에 더 높은 가중치를 줄 것인지, 토론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과 SNS는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크게 확대했다.

과거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문제에 참여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문서를 만들고 수정하는 위키 방식이나 전 세계 개발자가 함께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같은 기술이 집단지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SNS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결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만 계속 접하면서 자신의 판단이 사회 전체의 생각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라도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신뢰할 만한 정보처럼 보이는 현상도 생긴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을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집단지성과 ‘군중심리’의 차이가 드러난다.

집단지성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판단이 모일 때 강해진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집단의 판단은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AI라는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

사람들은 검색을 하기 전에 생성형 AI에게 질문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도 AI의 도움을 받는다. 연구자나 기업, 학생들이 같은 AI 모델을 사용하면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 자체가 비슷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집단지성에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여러 사람이 각자 판단한다고 해도 모두 같은 AI에게 먼저 답을 얻었다면 과연 그 판단을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AI가 잘못된 전제를 제시했을 때 여러 사람이 그 답을 참고하면 동일한 오류가 동시에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AI는 집단지성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의견을 빠르게 정리하고 서로 다른 주장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놓친 연구자료나 관점을 제시하면서 토론의 폭을 넓히는 역할도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의 서로 다른 판단을 연결하는 도구로 사용되느냐다.

AI 시대의 집단지성은 그래서 단순히 ‘사람이 많으면 더 좋은 답이 나온다’는 오래된 개념에서 한 단계 더 복잡해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뿐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AI의 계산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문사회 집단연구를 확대하는 것도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올해 신규과제는 지난해 84개에서 94개로 11.9% 늘었고, 선정된 연구는 9월 1일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대학 부설연구소와 대학의 연구 역량을 높이고 인문사회 분야의 우수한 연구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다만 연구자가 많이 모인다고 자동으로 새로운 해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학문 분야가 이름만 함께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연구 과정에서 관점과 방법론을 교환할 수 있는지, 젊은 연구자와 다른 의견을 가진 연구자가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 연구 결과가 다시 사회와 정책에 연결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집단지성의 가장 중요한 교훈도 여기에 있다.

현명한 집단은 가장 뛰어난 사람만 모아놓은 집단과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며, 다른 의견을 안전하게 제시하고, 그 판단을 제대로 모을 수 있을 때 집단은 개인보다 더 현명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모두가 같은 정보를 보고 같은 목소리를 따라간다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생각은 하나뿐일 수 있다.

AI가 몇 초 만에 답을 만드는 시대에도 복잡한 사회문제에 하나의 정답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 중요한 능력은 혼자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가진 지식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일지도 모른다.

집단지성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순간 생기는 능력이 아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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