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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다음 수출품은 ‘경험’일까…정부가 K극장 기술에 2,200억 투자한 이유

한국 콘텐츠 산업의 수출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처럼 완성된 콘텐츠를 해외에 판매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콘텐츠를 보고 듣고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수출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부가 CJ포디플렉스의 글로벌 기술특별관 확대에 2,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는 지난 8월 27일 CJ포디플렉스의 글로벌 기술특별관 인프라 확장 사업에 2,200억원을 지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 방산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자금을 공급해 온 국민성장펀드가 콘텐츠 분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가 투자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가 아니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콘텐츠를 경험하는 방식을 만드는 기술기업이다.

CJ포디플렉스는 영화 장면에 따라 좌석이 움직이고 바람과 물, 진동 등 환경 효과가 더해지는 4DX와 정면 스크린뿐 아니라 좌우 벽면까지 영상을 확장하는 다면 상영기술 SCREENX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CJ포디플렉스는 현재 75개국에서 1,244개의 기술특별관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특별관 시장에서는 캐나다 IMAX에 이어 세계 2위 사업자로 평가받는다.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회사는 글로벌 특별관을 약 2,000개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 사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4DX와 SCREENX를 단순한 영화관 설비가 아니라 ‘콘텐츠테크’로 규정하고 있다.

콘텐츠테크는 콘텐츠와 첨단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관람 경험과 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을 뜻한다. 영화 화면을 확대하거나 좌석을 움직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CG와 시각특수효과, 모션 기술, 음향, 센서, 인공지능 등 여러 기술을 결합해 기존 콘텐츠를 새로운 형태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산업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극장산업의 위기가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영화를 보기 위해 반드시 극장에 가야 할 필요는 줄었다. 대형 화면과 음향이라는 전통적인 극장의 장점도 대형 TV와 가정용 영상기기의 발전으로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극장 입장에서는 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4DX와 SCREENX 같은 기술특별관은 바로 이 틈을 공략한다. 관객에게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산업적으로는 더 중요한 변화도 있다. 일반 상영관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특별관은 같은 관객 수에서도 더 높은 객단가를 확보할 수 있고, 하나의 영화를 특별관 형식에 맞게 변환하는 과정에서도 추가 시장이 만들어진다. 영상 재구성, CG, 시각효과, 모션 프로그래밍 등 새로운 제작 수요가 발생하면서 극장 장비뿐 아니라 관련 콘텐츠 기술기업에도 시장이 열린다.

K콘텐츠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한국이 콘텐츠를 잘 만드는 나라를 넘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술’을 파는 나라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K콘텐츠의 세계화는 주로 작품 중심으로 이뤄졌다. K팝 음원이 해외 차트에 진입하고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세계 시청자를 만났다. 한국 영화가 해외 영화제와 극장에서 주목받았고 웹툰과 게임 역시 해외 이용자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유통 플랫폼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도 이를 전달하는 플랫폼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해외 기업인 경우가 많았다. 음악 역시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가 높다.

콘텐츠가 성공할수록 한국 콘텐츠 기업은 성장했지만, 콘텐츠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망까지 한국 기업이 장악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4DX와 SCREENX가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특별관이 세계 주요 도시로 확대되면 한국 기업이 직접 보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프라인 콘텐츠 유통망도 함께 넓어진다.

이번 투자에는 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조건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새로 구축되는 해외 4DX·SCREENX 특별관에서 한국 콘텐츠를 연간 14일 이상 상영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단순한 영화관 장비 수출과는 성격이 달라지는 대목이다.

특별관 자체가 한국 영화나 K팝 공연 콘텐츠 등을 해외 관객에게 선보이는 플랫폼 역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가 해외 일반 극장에 진출하려면 현지 배급사와 상영관 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기술특별관 네트워크가 충분히 커지면 해당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콘텐츠의 해외 상영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K팝도 마찬가지다.

콘서트를 촬영한 실황 콘텐츠나 팬덤형 공연 영상은 일반 영화와 다른 몰입감을 요구한다. 다면 스크린이나 움직이는 좌석, 공간 효과 기술과 결합하면 기존 공연 영상과 다른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결국 한국 콘텐츠와 한국 상영기술이 함께 해외로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수출 모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CJ포디플렉스의 사업구조도 이미 국내 극장산업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변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회사 매출의 약 9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영화관 체인 가운데 하나인 AMC와 미국·유럽 65개 극장에 4DX와 SCREENX를 설치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한국에서 개발한 극장 기술을 CJ 계열 극장만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 해외 경쟁 극장 사업자들이 구매하는 독립적인 기술상품으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이번 투자 규모가 2,200억원에 달하는 이유도 글로벌 확장과 관련돼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투자를 통해 기술특별관 수를 현재 1,244개에서 약 2,000개로 확대하고 CG와 시각효과, 모션체어 등 콘텐츠테크 산업의 경쟁력을 함께 높인다는 계획이다.

관련 산업으로 파급될 가능성도 있다.

4DX 특별관을 늘리려면 움직이는 좌석과 환경효과 장치가 필요하다. SCREENX를 확대하려면 다면 영상 구현 기술과 콘텐츠 변환 작업이 따라온다. CG·VFX 기업과 장비·부품 업체, 콘텐츠 제작기업의 참여 영역도 넓어질 수 있다.

정부가 이번 투자를 한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만이 아니라 콘텐츠테크 생태계 투자로 설명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책금융이 투입되는 만큼 따져봐야 할 문제도 있다.

우선 특정 대기업 계열사의 해외 사업 확장을 정부 자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개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목적은 단순한 기업 성장 지원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어야 한다. 따라서 향후에는 CJ포디플렉스의 해외 특별관 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만으로 정책 성과를 평가해서는 부족하다.

국내 콘텐츠기업과 기술기업에 실제로 얼마나 새로운 기회가 생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 특별관 확대가 한국 CG·VFX 업체와 모션 기술기업, 장비업체의 수출 증가로 연결되는지, 한국 영화와 공연 콘텐츠의 해외 상영 기회가 실질적으로 늘어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연 14일 이상 K콘텐츠 상영’이라는 조건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도 중요하다.

형식적으로 의무 상영 일수만 채우는 방식이라면 K콘텐츠 유통망 확대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어떤 작품을 어떤 시장에서 상영하는지, 현지 관객을 얼마나 확보하는지, 이후 다른 한국 콘텐츠의 진출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극장시장 자체의 불확실성도 변수다.

OTT 확산 이후 세계 영화관 산업이 코로나19 이전의 성장 구조로 완전히 돌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빈도 자체가 감소한다면 특별관 확대 역시 일정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다만 이 위험이 오히려 기술특별관의 성장 기회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관객이 영화관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극장은 평범한 관람 대신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관이 줄어들더라도 특별관의 비중과 중요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2,200억원 투자는 한 극장 기술기업의 성장 계획을 넘어 K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좋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만드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글로벌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작품만큼 중요한 것이 유통망과 플랫폼, 그리고 새로운 소비 경험을 만드는 기술이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더라도 이를 전달하는 플랫폼과 기술을 해외 기업에 계속 의존한다면 산업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에는 한계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콘텐츠와 기술, 유통 플랫폼을 함께 보유한다면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산업적 가치도 달라진다.

4DX와 SCREENX의 해외 확대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00년대 한국 영화관에서 시작된 체험형 상영 기술이 이제 75개국으로 확산됐고 정부는 정책금융을 투입해 그 규모를 다시 2,000개 수준으로 키우려 하고 있다.

이 투자의 성패는 특별관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한국의 상영기술이 세계시장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그 기술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더 많은 해외 관객을 만나며, 국내 콘텐츠테크 기업과 제작사까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K콘텐츠의 수출 목록에는 영화와 드라마, K팝과 게임 외에 새로운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될 수 있다.

콘텐츠 그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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