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만 팔아서는 안 된다…네이버·카카오가 ‘IP 제국’으로 가는 이유
웹툰 한 편이 성공하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남을까.
과거라면 유료 회차 판매와 광고, 해외 번역 매출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다르다. 인기 웹툰 한 편은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되며,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작품은 더 이상 화면 속에서 소비되는 콘텐츠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산업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식재산권(IP)의 출발점이 된다.
최근 국내 양대 웹툰 사업자의 움직임은 이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8월 12일 이사회를 열고 웹툰·웹소설 콘텐츠제공사업자(CP) 자회사인 삼양씨앤씨, 인타임, 필연매니지먼트 3사의 합병을 의결했다. 세 회사를 하나로 묶어 스토리 IP 기획·제작 역량과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합병 절차는 연내 마무리할 예정이다.
네이버웹툰의 모회사 웹툰 엔터테인먼트도 같은 달 움직였다. 8월 10일 미국 게임사 알아이게임즈홀딩스에 전략적 투자를 결정했고 계약이 마무리되면 지분 60%를 확보한다. 목적은 분명하다. 글로벌 팬덤을 이미 확보한 웹툰 원작을 게임으로 개발해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두 회사의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웹툰 한 편을 더 많이 파는 것보다, 성공한 웹툰 하나를 얼마나 많은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것은 K웹툰 산업이 성장 이후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웹툰 플랫폼의 경쟁이 ‘조회수’에서 ‘IP 보유량’으로 옮겨간다
웹툰 산업의 첫 번째 성장 공식은 이용자였다.
무료 회차를 통해 독자를 모으고 유료 결제로 전환시키며,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플랫폼은 다시 작품을 늘리고 이용자를 확보했다.
그러나 플랫폼이 일정 규모까지 성장하면 다음 문제가 시작된다.
웹툰 이용자가 두 배로 늘지 않는다면 매출도 계속 두 배씩 증가하기 어렵다. 작품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용자의 시간과 지갑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때 플랫폼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IP 확장이다.
10억원을 벌던 웹툰을 20억원어치 더 판매하는 대신, 그 웹툰을 드라마와 영화, 게임으로 확장해 전혀 다른 시장에서 수익을 만드는 방식이다.
웹툰 산업에서 ‘원작 IP’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콘텐츠 IP는 하나의 작품에서 여러 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작품 판매가 끝나도 영상화 판권과 게임 라이선스, 캐릭터 상품, 해외 리메이크와 출판 등 새로운 거래가 이어질 수 있다.
정부도 이 흐름에 맞춰 웹툰, 방송, 게임, 캐릭터 등 콘텐츠 전 장르를 연결하는 IP 사업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12월 개최하는 ‘콘텐츠 IP 마켓’ 역시 영상화와 상품화, 해외 진출 등 IP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웹툰은 이제 완성품이면서 동시에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원재료가 되고 있다.
카카오는 왜 웹툰·웹소설 회사를 다시 합치는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이번 자회사 합병은 웹툰 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삼양씨앤씨와 인타임, 필연매니지먼트는 웹툰과 웹소설을 기획·제작하는 CP 회사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세 회사를 통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노블코믹스를 비롯한 스토리 IP 기획·제작 역량을 결합하겠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보면 계열사 정리다.
그러나 산업적인 의미는 더 크다.
웹툰 플랫폼이 콘텐츠를 외부에서 받아 유통하는 역할을 넘어,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어떤 작품을 확보할 것인지까지 더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드는 ‘노블코믹스’는 IP 산업에서 효율성이 높은 구조다.
웹소설 시장에서 이미 독자의 반응이 검증된 작품을 웹툰으로 제작하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에 투자하는 것보다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웹툰에서도 성공하면 다시 영상과 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웹소설에서 웹툰으로, 다시 영상과 게임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IP 사다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카카오엔터가 CP 자회사의 제작 역량을 하나로 묶는 이유도 이 사다리에서 더 많은 성공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이 이용자 수만이 아니라 ‘다음 대작이 될 IP를 얼마나 빨리 확보하고 키울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는 웹툰을 게임으로 가져간다
네이버웹툰은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알아이게임즈홀딩스 지분 60% 확보에 나선 것은 게임을 웹툰 IP의 주요 확장 시장으로 보겠다는 의미다. 회사는 글로벌 팬덤을 가진 웹툰 원작을 활용해 게임을 개발하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게임은 IP 사업에서 매력적인 시장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한 작품이 흥행하더라도 소비기간이 비교적 짧다. 게임은 성공할 경우 이용자가 수년 동안 머물 수 있고 추가 콘텐츠와 아이템을 통해 지속적인 매출을 만들 수 있다.
이미 팬덤이 형성된 웹툰을 게임으로 만들면 신작 게임을 처음부터 알리는 데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험 관리다.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 성공할지 미리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든 게임이든 수십억원을 투자했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웹툰 플랫폼에는 이미 수많은 이용자 행동 데이터가 쌓여 있다.
어떤 작품을 몇 명이 보고, 어느 국가에서 인기가 있으며, 어떤 캐릭터에 팬덤이 붙는지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흥행 가능성을 시장에서 먼저 시험한 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작품만 영상이나 게임으로 확장할 수 있다.
웹툰이 거대한 ‘IP 테스트베드’가 되는 것이다.
모든 웹툰이 IP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보면 IP 확장은 웹툰 산업의 완벽한 성장 전략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수많은 웹툰 가운데 드라마와 영화, 게임으로 확장되는 작품은 일부에 그친다.
플랫폼에는 수백, 수천 편의 작품이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받아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작품은 제한적이다. 결국 IP 확장 전략이 강해질수록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인기작에 자본과 마케팅이 더 집중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중간 규모 작품과 신인 작가가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
과거 플랫폼이 필요로 했던 것은 이용자가 매주 볼 다양한 작품이었다. IP 중심의 산업에서는 이 가운데 ‘다음 드라마가 될 작품’, ‘게임으로 확장할 작품’, ‘해외에서 통할 작품’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웹툰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보다 영상화하기 쉬운 이야기,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기 좋은 작품, 게임으로 확장할 세계관이 있는 작품이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도 있다.
웹툰이 하나의 예술·콘텐츠 장르에서 거대한 IP 공급망으로 바뀔수록 생길 수 있는 역설이다.
IP 가치가 커질수록 작가의 계약서는 더 중요해진다
웹툰 산업이 IP 산업으로 이동하면 작가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자신의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 게임으로 성공하면 웹툰 연재료와 유료결제 수익을 넘어 훨씬 큰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IP가 확장될 때 발생하는 권리와 수익이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웹툰 계약에는 원작 이용권, 2차적저작물 작성권, 해외 판권, 영상화와 상품화 등 여러 권리가 얽힐 수 있다. 작가와 CP, 플랫폼이 각각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도 계약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웹툰 한 편의 가치가 연재 매출만으로 결정될 때와, 수백억원 규모의 드라마나 게임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을 때 계약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IP 산업에서 가장 큰 자산은 결국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만든 창작자가 IP 확장에서 충분한 몫을 갖지 못한다면 웹툰 산업의 성장과 작가 개인의 성장은 서로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특히 신인 작가는 계약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작품이 성공하기 전에는 자신의 IP가 어느 정도 가치가 될지 알기 어렵고 플랫폼이나 제작사 역시 실패 위험을 감수한다. 문제는 성공 이후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형 IP로 성장했을 때 추가적인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장치가 없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웹툰 산업정책이 작가 양성에만 머물지 않고 IP 계약과 수익배분 문제까지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웹툰을 더 만드는 정책보다 ‘IP가 누구에게 남는가’를 볼 때
정부 역시 웹툰 인력을 계속 키우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웹툰 PD와 지역·소수정예 작가 트랙을 통해 총 140명을 육성할 계획이다. 동시에 콘텐츠 IP의 사업화와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웹툰 산업이 성장하려면 새로운 작가와 PD가 필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IP도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산업이 IP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기에는 ‘몇 명의 작가를 키웠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그들이 만든 IP는 누구의 자산이 되는가.
한 작품이 웹툰으로 성공하고 드라마와 게임까지 확장됐을 때 창작자와 CP, 플랫폼 사이에 가치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이 IP 보유량으로 평가되는 시대라면 창작자가 자신의 IP에서 얻는 몫 역시 산업 경쟁력의 일부가 돼야 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계속 이 산업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IP 파이프라인 자체도 오래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K웹툰의 다음 경쟁자는 다른 웹툰이 아니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의 움직임을 함께 놓고 보면 웹툰 산업의 다음 단계가 보인다.
카카오는 웹툰과 웹소설을 만드는 CP 조직을 통합해 IP 생산 효율을 높이려 하고, 네이버웹툰은 인기 웹툰을 게임으로 확장하기 위해 직접 투자에 나섰다.
웹툰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이 웹툰 앱 안에만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 경쟁 상대는 넷플릭스일 수도 있고 디즈니일 수도 있으며 글로벌 게임사나 캐릭터 기업일 수도 있다. 누가 더 많은 이용자를 웹툰 플랫폼에 모으느냐보다 누가 더 강한 이야기를 확보하고 그것을 여러 산업으로 확장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웹툰이 K콘텐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콘텐츠 산업에 큰 기회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웹툰에서 이야기를 먼저 검증하고 성공한 IP를 영상과 게임, 캐릭터로 확대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효율적인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IP의 규모가 커질수록 질문도 커진다.
플랫폼이 강한 IP를 더 많이 보유하게 될수록 창작자와 중소 CP는 어떤 협상력을 갖게 될 것인가. 자본이 인기작에 집중될수록 새로운 이야기는 어디에서 등장할 것인가. 웹툰에서 벌어들인 가치가 영상과 게임으로 넘어간 뒤에도 원작자에게 충분히 돌아올 것인가.
K웹툰의 다음 성장을 판단할 기준은 작품 수가 아닐 수 있다.
웹툰 한 편이 얼마나 많은 산업으로 뻗어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커진 가치가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웹툰은 이제 ‘보는 콘텐츠’에서 ‘확장하는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K웹툰 산업의 다음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웹툰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좋은 이야기가 거대한 IP가 되었을 때 그 성공을 누가 함께 소유하는가.
네이버와 카카오가 IP 제국을 향해 움직이는 지금, 한국 웹툰 산업의 진짜 경쟁력은 바로 그 답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