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아이돌 딥페이크 12명 실형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동안 딥페이크 범죄에는 묘한 축소의 언어가 따라붙었다. “합성일 뿐”, “진짜가 아닌 가짜”, “장난이 좀 심했다”는 식의 반응이 그것이다.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이유로, 피해는 현실보다 가볍게 취급되곤 했다. 그러나 법원이 내놓은 답은 전혀 달랐다. 아이돌 사진과 영상을 음란물에 합성해 퍼뜨린 피고인 12명에게 실형이 확정됐고, 일부는 수감됐으며 취업제한 명령까지 받았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범죄라도, 화면 속에서 소비된 폭력이라도, 그 끝은 실제 감옥일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 판결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처벌 수위가 높아서만이 아니다.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해 온 디지털 성범죄의 본질을 조금은 정확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딥페이크는 가짜 이미지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짜 형식을 빌려 피해자의 진짜 삶을 훼손하는 범죄다. 피해자는 자신이 찍지도 않은 장면으로 조롱당하고, 원치 않는 성적 대상이 되며, 끝없는 복제와 유포 속에서 통제력을 잃는다. 합성물이 “진짜가 아니니까” 덜 해롭다는 말은, 칼이 장난감처럼 보이면 상처도 장난이라는 주장만큼이나 허술하다.

특히 연예인을 겨냥한 딥페이크는 대중의 잘못된 거리감 위에서 더 쉽게 소비돼 왔다. 유명인은 얼굴이 알려져 있고 사진이 많으며 늘 평가받는 직업을 가졌으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왜곡된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이유가 인격 침해의 면허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얼굴과 이미지가 곧 직업적 자산인 사람들에게 합성 음란물은 더 치명적이다. 한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활동과 계약, 커리어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팬들이 보는 화면, 대중이 소비하는 이미지, 산업이 축적한 브랜드 가치가 한순간에 훼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페이크 가해자들 다수는 오랫동안 자신이 ‘진짜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앱 몇 번, 클릭 몇 번, 익명 계정 하나면 끝나는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해외 플랫폼 뒤에 숨으면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함도 있었을 것이다. 디지털 공간은 종종 사람들에게 책임 없는 행동의 환상을 준다. 눈앞에서 울고 있는 피해자를 보지 않아도 되고, 손으로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감각도 없으며, 계정만 지우면 흔적도 사라질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기술이 범죄를 쉽게 만든 만큼, 기술은 그 흔적도 남긴다. 익명은 자주 무책임의 가면이지만, 영원한 은신처는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실형뿐 아니라 취업제한 명령까지 내려졌다는 점이다. 법원은 이 범죄를 단순한 인터넷 일탈이나 비행으로 보지 않았다. 사회 안에서 다시 타인과 접촉하고 일할 때까지 고려해야 하는 중대한 폭력으로 본 것이다. 이 판단은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디지털 범죄에 대해 이상할 만큼 둔감했다. 불법 촬영, 유포, 합성, 조롱이 반복돼도 “온라인에서만 벌어진 일”이라는 말로 실제 피해를 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수치심과 공포, 인간관계의 파괴, 직업적 손실은 오프라인 범죄 못지않게 오래 남는다. 화면 속 범죄라고 해서 삶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실 딥페이크 문제의 더 큰 공포는 이것이 연예계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은 유명 아이돌이 표적이 되지만, 구조적으로는 누구의 얼굴이든 범죄 재료가 될 수 있다. 학생, 직장인, 지인, 전 연인, 아무 관계 없는 타인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은 민주화됐지만 윤리는 민주화되지 않았다.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된 도구가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통제 없는 기술은 가장 오래된 폭력, 즉 타인을 대상화하고 모욕하며 지배하려는 욕망을 더 저렴하고 빠르게 유통시킨다.

그래서 이번 12명 실형 확정은 한 기획사의 강경 대응을 넘어선다. 이것은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대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딥페이크는 ‘허위’이지만 피해는 허위가 아니고, ‘합성’이지만 고통은 합성이 아니다. 얼굴을 훔쳐 욕망의 도구로 만들고, 그것을 웃음과 놀이처럼 퍼뜨리는 순간, 기술은 창작이 아니라 폭력의 기계가 된다. 그리고 법은 이제 그 폭력을 조금도 가볍게 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아직도 이 범죄를 “장난”이라고 부를 것인가. 누군가의 얼굴을 빼앗고 존엄을 해체하는 일을 장난이라고 부르는 사회라면, 기술은 계속해서 범죄자 편에 설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명백한 폭력이라고 분명히 부르는 순간부터, 기술은 비로소 책임의 언어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 판결이 중요한 것은 12명을 감옥에 보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동안 너무 늦게 도착했던 상식이, 이제야 법의 문장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