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건 몇 편뿐… 납본 이전의 뉴스영화가 한국 영화사에 남긴 공백
오늘의 영상 환경은 과잉에 가깝다. 플랫폼은 매일 새 파일을 쏟아내고, 이용자는 언제든 다시 보기와 공유를 반복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사의 초창기 뉴스영화는 정반대의 조건에 놓여 있었다. 남아 있는 자료가 너무 적어, 무엇이 상영됐는지조차 계통적으로 복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래된 뉴스영화의 부재는 단순한 소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를 움직이는 장면들이 어떤 경로로 기록되고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아카이브의 문제다.
한 시기의 뉴스영화를 한 편으로 대표해야 하는 사정
식민지 시기 뉴스영화의 공백은 특히 선명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2021년 공개한 일제강점기 기록영상 10편 가운데 뉴스영화로 직접 거론된 작품은 1943년작 <조선시보 제11보>였다. 같은 기관이 소개한 프로그램 설명에서도 이 작품은 대한뉴스의 전신으로 불리지만, 실물로 확인되는 계열은 극히 제한적이다. 관련 연구 역시 현재 발굴·보존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제작 뉴스영화로 <조선시보> 제11호를 지목한다.
문제는 한 작품의 존재가 한 시기의 충실한 재현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기 발행을 전제로 하는 뉴스영화는 원래 연속성과 누적성이 핵심인 장르다. 어느 달, 어느 사건, 어느 도시가 어떤 어휘와 화면으로 편집됐는지를 비교해야 비로소 매체의 정치성과 미학이 드러난다. 그런데 실물이 몇 편만 남으면 연구자는 한 시기의 보도 관행 전체를 보기보다, 우연히 살아남은 한두 개의 편집본을 통해 전체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해방기의 뉴스필름도 풍경은 생생하지만 연속성은 얇다
해방 직후라고 사정이 크게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21년 광복절 기획전에서 1946년을 담은 뉴스영화 8편을 처음 VOD로 공개했다. 여기에는 미 공보부가 제작한 <시보> 4편과 조선영화인들이 만든 <해방 뉴-쓰> 4편이 포함됐다. 이 자료들에는 미소공동위원회, 8·15 1주년 기념식, 특산품 전람회 같은 장면이 담겨 있어 해방 공간의 분위기와 정치적 긴장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그 숫자가 한계를 말해준다. 해방기의 사회는 급변했고 기록해야 할 사건은 폭증했는데, 오늘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뉴스필름의 묶음은 여전히 소수다. 최근까지도 한국영상자료원은 광복 80주년 특별전에서 <해방 뉴-쓰>, <대한민국 독립의 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고 백범 김구 선생 국민장> 같은 자료를 다시 호출하며 해방기의 풍경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는 자료가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몇 안 되는 생존본에 반복적으로 기대어 한 시대를 읽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왜 비어 있나, 보존 기술보다 먼저 없었던 제도
이 공백은 오래된 필름이 약해서만 생긴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 수집이 늦었다는 데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자사 연혁 자료에서 1990년대까지 한국이 국제영상자료원연맹 회원국 가운데도 실질적 납본 제도가 부재한 소수 국가 중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지금과 같은 의무 제출 제도는 1996년에야 시행됐다. 다시 말해 그 이전의 뉴스영화와 기록영상은 제도적으로 빠짐없이 모으는 체계가 약했고, 남은 자료 상당수는 기증, 구입, 복사, 해외 발굴 같은 우회 경로를 통해 뒤늦게 수집된 셈이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수집 정책도 그 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료원은 극영화뿐 아니라 뉴스릴과 기록물을 수집 대상으로 두고, 국내외에 흩어진 자료를 기증·구입·복사 방식으로 확보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 고베영화자료관에서 1948년작 <해연>을 복사 수집한 사례를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납본 이전 시대의 자료가 여전히 ‘국내 보존고’가 아니라 개인 소장품, 해외 아카이브, 다른 기관의 묶음 속에서 돌아온다는 뜻이다.
남은 필름도 곧바로 역사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
설령 필름이 발견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디지털 복원 과정에서 원본 필름의 유실, 훼손 상태, 다양한 이력 때문에 편집과 보정의 선택이 뒤따른다고 설명한다. 이는 연구자가 보는 이미지가 언제나 원본의 투명한 복사본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래된 뉴스영화는 대개 검열본, 상영본, 부분본, 불완전판, 후대 복사본 같은 서로 다른 계통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무엇을 원형으로 간주할 것인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아카이브에 없는 뉴스영화의 문제는 단순히 “옛날 필름이 없어 아쉽다”는 차원의 손실이 아니다. 어떤 장면은 살아남고 어떤 장면은 사라졌는지, 누가 기록 주체였는지, 어떤 언어와 편집 문법이 살아남았는지까지 포함해 역사 인식의 조건 자체를 바꾼다. 한국의 오래된 뉴스영화 연구는 풍부한 연속 자료를 읽는 작업이라기보다, 군데군데 남은 화면 조각을 이어붙여 당시의 시야를 역산하는 작업에 가깝다.
디지털 매체 시대에 영상은 넘쳐나지만, 바로 그 과잉은 역설적으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무엇이 기록되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수집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사에서 오래된 뉴스영화의 공백은 과거의 실패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 생산되는 영상물을 어떤 기준과 책임으로 남길 것인지 묻는 현재의 질문이기도 하다.
자료: 한국영상자료원, 「수집」(확인 2026-10-23);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 복원」(확인 2026-10-23); 한국영상자료원, 「아카이브 50년, 우리가 간직할 순간들」(2024); 한국영상자료원, 「[보도자료] 온라인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기록영상 10편」(2021-10-25); 한국영상자료원, 「[보도자료] 8.15 광복절 기념 해방기 뉴스영화 8편 VOD 첫 공개」(2021-08-12); 한국영상자료원, 「광복 80주년 특별전: 스크린으로 인화된 해방의 빛」(2025);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4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영화에서의 언어 상황의 변화 양상과 특수성(1940~1941)」(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