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시 간판 규제가 바꾼 거리의 표정…정비사업 전후가 보여준 효과와 한계

간판을 규제하면 거리가 곧바로 아름다워진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국내 간판 정비사업 사례를 보면, 무질서하게 겹친 간판 수를 줄이고 크기·재료·조명을 함께 손보는 방식은 거리의 인상을 실제로 바꿔 왔다. 반대로 그 변화가 오래 유지되는지는 사후관리, 상인 참여, 지역 맥락에 맞는 설계가 뒤따르느냐에 달려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2012년부터 간판개선사업을 추진해 왔고, 최근에도 매년 대상 지자체를 선정해 사업 구간과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 사업의 기본 목표는 단순히 보기 싫은 간판을 철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불법·노후 광고물을 줄이고, 건물 입면과 조명, 보행 환경까지 함께 정리해 거리 경관과 안전을 동시에 개선하는 데 무게가 실린다.


간판 규제는 ‘금지’보다 거리의 기준을 다시 짜는 일에 가깝다


옥외광고물 제도는 원칙적으로 간판의 종류와 설치 방식을 제한하는 규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일률적인 금지보다 구역별 기준을 정하고, 어떤 간판을 남기고 어떤 간판을 줄일지 조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같은 법 체계 안에서도 일반 상업가로에는 난립한 돌출간판과 대형 간판을 정비하고, 관광 거점에는 별도 기준을 두는 식이다.

이 점은 최근 제도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행정안전부는 2016년 시행령 개정으로 디지털광고물과 자유표시구역 제도를 도입했고, 부산시는 2024년 1월 1일부터 해운대 구남로와 해수욕장 해변로 일대 990m를 자유표시구역으로 운영하고 있다. 즉 도시미관을 만드는 방식이 항상 ‘더 강한 제한’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생활형 상권에서는 정비와 축소가, 상징성이 큰 관광지에서는 규제 완화와 별도 관리기준이 각각 쓰이고 있다.


정비사업 전후,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수량과 높이, 그리고 밤의 인상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우수사례를 보면 변화는 꽤 구체적이다. 2019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역 일원 500m 구간에서는 건물 44동, 업소 166개를 대상으로 정비가 이뤄졌고, 노후 위험간판 779개를 343개로 바꿨다. 정부는 이 사업을 보도 정비와 전선 지중화 공사와 함께 추진해 거리 미관을 개선했다고 설명한다. 간판 숫자를 크게 줄이면서 보행자가 보는 시야를 먼저 정리한 사례다.

비슷한 방향은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경남 함양군은 관문도로 주변 상가 밀집지역 1450m 구간에서 건물 64동, 업소 177개, 간판 202개를 정비했고, 노후간판과 무연고 간판, 돌출간판 정비에 더해 건물 입면 개선을 병행했다. 충북 괴산군은 98개 점포 일대에 자연소재 간판과 간접조명을 적용해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경관 이미지를 강조했다. 같은 간판 정비사업이라도 어떤 곳은 위험·과밀을 줄이는 데, 어떤 곳은 재료와 조명으로 장소의 인상을 바꾸는 데 초점이 있었던 셈이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거리의 첫인상은 개별 점포의 간판 디자인보다도, 전체 구간에서 간판의 수량·크기·방향·빛이 얼마나 정리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다. 덕지덕지 붙은 간판을 정리해 달라는 시민의 불만은 대체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예쁜 간판’이 곧 좋은 거리라는 뜻은 아니다


정비사업의 한계도 적지 않다. 정부 스스로 간판개선사업 완료 지역에 대해 2년간 사후평가와 현장 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힌 것은, 한 번 교체했다고 경관 수준이 자동으로 유지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업은 주민협의체 참여를 전제로 진행되며, 완료 뒤에도 지자체와 주민 측의 관리가 이어져야 한다.

실제 지방의회 감사 문서에는 다른 문제도 드러난다. 서울 영등포구의 2021년도 행정사무감사 결과보고서는 간판개선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공·디자인 참여업체가 특정 협회 회원사 위주로 운영돼 관내 다른 업체의 불만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은 간판 정비가 단지 미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상권과 업계 참여 구조를 함께 건드리는 사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학계의 소비자 인식 연구도 비슷한 시사점을 준다. 2023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개선된 간판이 정보성과 오락성을 높게 인식될수록 점포·지역 브랜딩 효과와 사업 수용 의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방해성은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보기만 단정한 간판보다, 업소를 알아보기 쉽고 거리 경험을 해치지 않는 간판이 더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획일적으로 비슷한 간판을 늘어놓는 방식만으로는 거리의 개성을 만들기 어렵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아름다움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거리와 업종에 맞는 설계에서 나온다


결국 질문은 ‘규제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단순화되기 어렵다. 일상적인 생활 상권이나 노후 상가 밀집 지역에서는 간판 수를 줄이고 돌출·무연고 간판을 정리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반면 관광 거점이나 대형 미디어 경관을 목표로 하는 곳은 해운대 구남로 사례처럼 별도 기준 아래 디지털 광고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다른 미관을 만들고 있다.

정비사업 전후 사례가 보여준 변화는 분명하다. 간판 규제는 거리를 더 정돈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돈이 곧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려면, 업소 식별성은 살리되 과잉 경쟁은 줄이고, 건물 입면과 조명, 보행 동선, 사후관리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거리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간판을 똑같이 만드는 때가 아니라, 간판이 거리의 질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장소의 성격을 드러낼 때에 더 가깝다.

자료: 행정안전부, 간판개선사업 현황;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간판개선사업 사후관리 강화 및 불법광고물 계도·정비 적극 추진; 행정안전부, 디지털광고 활성화…새로운 옥외광고시장 기대(2016.07.04.); 부산광역시, 2025년 주요업무계획;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의회, 2021년도 행정사무감사 결과보고서(2021.12.); 김예솔란·이세진, 간판 개선이 점포 및 지역 브랜딩과 수용 의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정보성, 오락성, 방해성을 중심으로(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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