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유적지 안내판은 누가 쓰나…학술적 불확실성이 시민 설명으로 바뀌는 구조

유적지 안내판의 문장은 발굴 현장을 가장 가까이 설명하는 공공 텍스트지만, 그것을 쓰는 사람은 한 명의 고고학자가 아니다. 국가유산청의 2024년 안내판 정비 지침을 보면, 국가유산 안내판 정비 국고보조사업은 원칙적으로 시·도와 시·군·구가 발주하고, 문안 작성 과정에는 시민자문단이 참여하며, 최종 국문안은 국립국어원이나 국어문화원, 영문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감수를 거치도록 돼 있다. 집필진 역시 국가유산 담당 공무원에 한정되지 않고 문인, 향토사학자, 방송작가, 교사 등까지 열려 있다. 결국 안내판은 학술성과 행정, 시민 이해도, 언어 감수가 한 문장 안에서 만나는 합의물에 가깝다.

이 구조는 유적 설명의 핵심 난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발굴조사 보고서는 대개 층위, 유구, 출토 맥락, 비교 자료를 바탕으로 성격을 좁혀 가는 문서다. 반면 현장의 안내판은 몇 줄 안에 그 유적의 시대, 기능,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안내판의 문장은 학계의 확정된 결론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시민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유적지 안내판에 유독 ‘추정된다’, ‘알려져 있다’, ‘보인다’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가 쓰는가보다, 어떻게 걸러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국가유산청 지침은 이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시민자문단은 광역 또는 기초지자체 단위로 3명에서 10명 안팎으로 꾸릴 수 있고, 전문가뿐 아니라 교사, 학생, 문화유산해설사, 시민단체 등 지역주민도 참여할 수 있다. 자문단은 안내문안의 난이도, 흥미성, 전문용어 사용, 이미지의 이해도 등을 검토한다. 다시 말해 안내판 문안은 학술적 정답을 단순 요약하는 문장이 아니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지까지 점검받는 공공 커뮤니케이션 결과물이다.

이 제도는 고고학의 언어와 시민 설명의 언어가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발굴조사 보고서가 근거 제시와 해석의 범위를 세밀하게 남기는 문서라면, 안내판은 제한된 분량 안에서 방문객의 첫 이해를 돕는 매체다. 그래서 학술적으로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안도 안내판에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현재의 해석을 중심으로 정리하되, 결정적 증거가 부족한 대목은 ‘추정’이라는 형식으로 남긴다. 불확실성을 삭제하지 않으면서도 읽히는 문장으로 바꾸는 일이 안내판 작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사례 1: 김해 봉황동 유적, ‘왕궁지’가 아니라 ‘왕궁 추정지’라고 쓰는 이유


김해 봉황동 유적은 그 차이를 보여 주는 대표 사례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의 2019년 발굴조사보고서 1권은 이곳을 “금관가야 추정 왕궁지로 알려진” 유적이라고 설명한다. 보고서의 목적도 바로 그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다고 밝힌다. 이는 조사 주체가 봉황동을 중요한 정치 중심지 후보로 보면서도, 곧바로 ‘왕궁지’로 확정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국가유산포털의 안내판 문안도 이 신중함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포털에 공개된 봉황동 유적 안내 문안은 2015년부터 진행 중인 “왕궁 추정지 발굴 조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동시에 방문객에게는 이곳이 회현리 패총과 봉황대를 포괄하는 복합 유적으로서, 청동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의 흔적이 함께 확인된 장소라고 설명한다. 학술적 쟁점인 ‘왕궁 여부’는 추정으로 남기고, 시민에게 필요한 1차 정보인 유적의 범위와 시대성, 중요성은 보다 평이하게 정리한 셈이다.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안내판이 불확실성을 감추지 않는 방식이다. 학계가 아직 결론을 열어 둔 주제라면 안내판도 그 상태를 반영하되, 현장 관람객이 최소한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해석 단계인지는 구분할 수 있게 문장을 다듬는다. 연구의 언어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해석을 확정 사실처럼 밀어붙이는 것도 아닌 중간 지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사례 2: 공주 정지산 유적, 제의시설 설명이 ‘빈전 추정’으로 좁혀지는 과정


공주 정지산 유적의 안내 문안은 불확실성이 더 적극적으로 구조화된 경우다. 국가유산포털 안내 문안은 이곳을 웅진 도읍기 백제의 “국가 제의 시설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더 나아가 무령왕릉 지석 기록과 발굴 성과를 근거로 왕비의 시신을 안치했던 “빈전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한 유적 안에서도 설명의 층위가 두 단계로 나뉘는 셈이다. 넓게는 국가 제의시설, 더 좁게는 특정 장례 의례와 연결된 빈전이라는 식이다.

이 문장은 학술 문헌의 판단 방식을 요약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지산 유적 항목은 이 유적의 성격을 제사시설로 파악하면서도, 시조나 선왕 제사인지, 아니면 6세기 전반 왕이나 왕비의 사망과 관련된 의례 공간인지는 정밀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동시에 유적의 성격을 빈시설로 추정하고 있다고 정리한다. 안내판은 이런 학술적 논의의 층위를 모두 실을 수 없기 때문에, 방문객이 이해할 수 있는 최종 문장으로 압축하면서도 ‘추정’이라는 안전장치를 남긴다.

정지산 사례는 안내판이 해석의 다층성을 어떻게 축약하는지 보여 준다. 발굴 현장과 연구 발표에서는 대안 가설과 비교 논리가 길게 이어지지만, 현장 안내판은 방문객의 체류 시간 안에 의미가 전달돼야 한다. 그래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전면에 두되, 확정되지 않은 부분은 단어 하나로 표시한다. 안내판의 ‘추정’은 모호함의 표시가 아니라, 학술적 유보를 시민 설명 속에 남겨 두는 장치라고 봐야 한다.


현장 안내판은 짧지만, 배후에는 보고서·행정·감수가 겹쳐 있다


국가유산포털의 안내판 검색 서비스가 공개한 설명에 따르면, 현재 포털에 등록된 안내판 문안은 2019년부터 2023년, 그리고 2025년에 진행된 안내판 개선 사업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안내판 문안이 한 번 세워지고 끝나는 고정물이 아니라, 용어 변경과 연구 성과, 전달 방식 개선에 따라 계속 손질되는 공공 텍스트라는 뜻이다. 실제로 국가유산청 지침은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맞춰 안내판 속 ‘문화재’ 용어를 ‘국가유산’ 등으로 전면 변경하도록 하고, 2021년부터는 지정번호 삭제도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유적지 안내판은 단순한 현장 시설물이 아니라 제도와 학술, 언어정책이 교차하는 작은 편집물에 가깝다. 안내판 한 장에는 발굴조사 보고서의 해석, 지자체의 발주와 행정 절차, 시민자문단의 난이도 검토, 국어와 영문의 외부 감수, 그리고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읽히는 문장의 압축이 함께 들어간다. 시민이 유적 앞에서 만나는 몇 문장은 사실상 다층적인 검토 끝에 도착한 공적 서술인 셈이다.

그래서 “유적지 안내판은 누가 쓰나”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일 가능성이 크다. 초안은 연구 성과를 아는 사람과 현장을 관리하는 기관이 만들고, 그 문장은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지 다시 검토되며, 마지막에는 언어와 번역 감수를 거쳐 공공 설명으로 굳어진다. 학술적 불확실성이 시민 설명으로 바뀌는 과정은, 불확실성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공공의 문장 규칙 안에 배치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자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안내판 정비사업 세부지침(2024);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 안내판 검색 및 김해 봉황동 유적·공주 정지산 유적 안내 문안(2026년 10월 확인);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보고서Ⅰ(201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주 정지산 유적(2026년 10월 확인);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서비스 소개(2026년 10월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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