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건축의 날’이 새 건물보다 재생을 택했다…고쳐 쓰는 건축의 문화적 가치
프랑스 문화부, 10월 15~18일 제11회 ‘건축의 날’ 개최 예정
올해 주제는 ‘재생, 미래를 짓다’…탄소와 재료, 기억과 용도를 함께 묻는다
예술가 작업실 보존부터 의료시설의 주거 전환까지, 공식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재생의 범위
프랑스 문화부는 2026년 10월 6일, 제11회 ‘주르네 나시오날 드 라르시텍튀르’를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연다고 발표했다. 올해 주제는 ‘Réhabiliter : bâtir l’avenir’, 한국어로 옮기면 ‘재생, 미래를 짓다’에 가깝다. 공개 예정 프로그램도 신축의 조형미보다 기존 건물을 어떻게 다시 쓰고, 고치고, 남길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선택은 건축을 환경정책이면서 문화정책으로 바꾼다. 헐고 새로 짓는 대신 남아 있는 구조와 재료, 장소의 기억, 지역의 생활사를 함께 다루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공사현장과 건축사무소 공개, 전시, 워크숍, 강연, 도시 산책과 함께 10월 15~16일 학생 대상 프로그램 ‘르베 레 지외’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축을 보는 법을 가르치는 행사이자, 생활환경을 읽는 공공 교육으로 묶어낸 셈이다.
‘재생’은 보수나 복원과 어떻게 다른가
프랑스 문화부의 용어 해설과 보존 관련 어휘집을 보면, 재생은 기존 건물의 기능을 되살리거나 다른 용도에 맞게 바꾸고, 오늘의 안전·접근성·쾌적성 기준에 맞추는 개입을 뜻한다. 반면 보수는 손상된 부분의 기능이나 외관을 되돌리는 비교적 제한된 작업에 가깝고, 복원은 건물의 재료와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이해와 사용을 회복하는 데 무게가 실린다. 용도전환은 공장, 병원, 종교시설처럼 원래 목적이 끝난 건물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재생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이 차이는 정책의 우선순위와도 연결된다. 재생은 단열을 보강하고 설비를 바꾸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어디까지 바꿀지 판단하는 문화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2026년 7월 행사 소개 자료에서 재생을 “건축 행위 그 자체”로 규정했고, 9월 공개한 자료에서는 기후 적응 역시 건물의 방향, 재료, 사용 방식, 지역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탄소를 줄이는 일과 장소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 겹치는 지점
올해 프랑스 ‘건축의 날’이 재생을 전면에 세운 배경에는 환경 부담이 있다. 문화부 행사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프랑스에서 건물·건설 부문은 온실가스 배출의 23%를 차지했다. 또 같은 행사 자료는 프랑스 환경전환청 자료를 인용해, 같은 면적의 기존 건물을 고치는 방식은 신축 주거 건물보다 훨씬 적은 재료를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 수치가 모든 재생이 언제나 신축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효과는 기존 구조를 얼마나 유지하는지, 성능 개선 폭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재료를 새로 투입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문화부가 최근 내놓은 유산 건축물 에너지 재생 가이드도 건물의 건축적 특성과 역사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성능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예술가 작업실과 옛 의료시설, 재생의 목표는 서로 다르다
공식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사례는 파리 몽파르나스의 ‘아틀리에 11’ 공개 행사다. 운영 단체 라에르 아츠는 10월 16~17일 이 공간을 열고, 150년 가까이 이어진 예술가 작업실의 역사와 현재의 재생 계획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이중 높이 공간, 목구조 트러스, 파사드 구성 같은 원래의 건축 요소를 살리면서, 단열과 난방 시스템을 보강해 국제 레지던시가 가능한 작업 공간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둔다. 여기서 재생은 문화유산 보존과 창작 인프라 갱신이 한 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10월 17일 공개 예정인 파리 15구의 옛 혈액투석센터 재생 공사는 훨씬 사회 인프라 성격이 강하다. 1973년 건축가 알랭 사르파티가 설계한 이 건물은 대규모 재생과 목재·금속 구조의 수직 증축을 거쳐 청년 활동가용 주택 80호, 장애아동을 위한 30석 규모 보육시설, 보건 인력 공간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같은 ‘재생’이라도 한쪽은 예술가의 작업 기억을 지키는 일이고, 다른 한쪽은 낡은 의료시설을 주거와 돌봄의 기반으로 다시 짜는 일이다.
행사보다 더 큰 질문, 누가 어떤 건물을 남길 것인가
프랑스 문화부는 이미 2025~2029 국가 건축 전략과 재생 우수사례 사업을 통해 기존 건축의 전환을 건축정책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번 ‘건축의 날’은 그 방향을 대중 행사 언어로 번역한 장면에 가깝다. 건축을 새 랜드마크 경쟁이 아니라, 이미 있는 건물의 수명과 쓰임을 다시 설계하는 공공 문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행사는 아직 열리기 전이다. 따라서 실제 현장 공개 범위와 공사 진행 상태, 보존과 성능 개선의 균형이 어떻게 드러날지는 10월 15일 이후 프로그램 운영과 후속 자료를 더 확인해야 한다. 다만 올해 프랑스 ‘건축의 날’이 분명히 보여주는 변화는 있다. 건물을 고쳐 쓰는 일은 탄소를 줄이는 기술이면서, 장소의 기억과 지역의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지 묻는 문화정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