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는 왜 살던 집을 미술관에 옮겼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인전, 실제 집의 이축이 아니라 천·종이·문지르기 방식으로 옮긴 공간의 기억
문, 복도, 계단, 스위치처럼 몸이 먼저 기억하는 건축 요소가 서도호 집 작업의 출발점
이사와 이주의 경험은 거대한 서사보다 만져본 표면과 지나간 동선의 감각으로 드러난다
서도호의 집 작업은 건물을 통째로 떼어 와 전시장에 세우는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이 보여주듯, 서도호는 자신이 살았거나 지나온 공간을 반투명 천으로 다시 뜨고, 한지를 표면에 밀착해 문지르며, 문손잡이와 스위치 같은 세부를 겹쳐 놓는 방식으로 집을 옮긴다. 이사와 이주의 기억은 여기서 추상적인 정체성 담론보다 먼저, 몸이 익힌 크기와 촉감, 통과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초기작부터 최근작,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함께 묶었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면 서도호 집 작업의 핵심은 ‘내가 어디 출신인가’라는 선언보다 ‘어떤 문을 열고 어떤 복도를 지나왔는가’에 더 가깝게 읽힌다.
집을 복제하는 대신 통과한 구조를 남긴다
전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둥지/들’(2024)은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여러 도시의 거주 공간을 바탕으로 만든 대형 설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작품 정보에 따르면 폴리에스터 천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됐고 길이는 22미터에 이른다. 서로 다른 집의 구조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실제로 존재한 적 없는 통로가 생기는데, 이때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한 채의 원형 집’이 아니라 여러 거주의 흔적이 포개진 동선이다.
이 점에서 서도호 집은 실물 건축의 이축과 다르다. 벽돌과 목재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가볍고 접히는 천으로 문틀과 천장, 계단의 윤곽만 남긴다. 무게를 덜어낸 구조는 오히려 이동 가능성을 키운다. 집이 고정된 부동산이 아니라 접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기억의 형식처럼 보이는 이유다.
문지르기와 만지기의 시간
4전시실의 ‘러빙/러빙’ 연작은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성북동 한옥 등 자신이 떠나왔거나 곧 사라질 장소에 한지를 밀착시키고, 흑연과 색연필로 표면을 문질러 흔적을 기록했다. ‘러빙/러빙: 서울 집’은 개인과 가족의 기억을, ‘러빙/러빙: 광주극장 사택’은 더 넓은 공동체의 시간을 다룬다고 미술관은 설명한다.
여기서 집은 멀리서 한눈에 보는 외관이 아니라 손으로 더듬어야 드러나는 표면이다. 문턱의 높이, 벽의 굴곡, 몰딩의 튀어나온 선처럼 평소에는 지나치기 쉬운 요소가 종이에 옮겨지면서, 이사와 이주는 주소 변경이 아니라 몸의 습관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으로 읽힌다.
복도와 계단이 말하는 이동의 기억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명은 ‘작은 문, 서울 성북구 성북동 260-10’, ‘러빙/러빙: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2호, NY 10011’,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이다. 제목 자체가 방대한 상징 대신 구체적인 주소와 공간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서도호 작품 해석의 출발점도 거기 두라는 뜻에 가깝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완벽한 집’(2024)을 두고 여러 집의 문손잡이, 콘센트, 스위치 같은 건축 요소를 한 공간에 중첩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완벽한 집은 이상적인 단독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거주지의 일부가 충돌 없이 공존하는 상태에 가깝다. 한 사람이 살며 지나온 방과 복도, 출입의 방식이 겹쳐지면서 집은 완성형 설계도가 아니라 축적된 사용 기록이 된다.
전시 후반에 별도 공개되는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2012)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2026년 12월 18일부터 2027년 3월 28일까지 서울박스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목에서부터 방 전체보다 복도와 계단을 강조하는 것은, 서도호에게 집이 머무는 방만이 아니라 오르내리고 통과하는 사이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서도호가 집을 미술관에 옮기는 이유는 과거의 집을 박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라진 공간을 다시 걷고 만질 수 있는 구조로 번역하기 위해서에 가깝다. 이사와 이주의 기억은 거창한 선언문보다 문 하나의 폭, 복도의 길이, 계단의 방향 같은 세부에서 더 선명하게 남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그 감각의 축적이 서도호 작업에서 어떻게 천과 종이, 주소와 구조로 바뀌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