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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는가…2026년 다시 읽는 부조리문학

알베르 카뮈를 모티프로 제작한 AI 일러스트. 인간이 의미를 요구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는 ‘부조리’의 문제를 탐구한 카뮈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통해 20세기 문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남겼다. 이미지=파르트

-카프카의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카뮈의 ‘부조리’, 베케트의 기다림까지…답하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2026년, 다시 무대에 오른 ‘기다림’


두 남자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길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가 언제 오는지, 정말 오기는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70년이 넘었지만 이 이상한 기다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2026년은 베케트가 태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해 소설과 희곡의 새로운 형식을 개척한 공로로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베케트의 문학이 현대인의 궁핍과 결핍 속에서 새로운 소설과 희곡의 형식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탄생 120주년을 맞은 올해 『고도를 기다리며』는 다시 세계의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거스리 극장은 9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이 작품을 공연한다. 이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다시 공연되는 것은 50여 년 만이다. 극장 측은 작품을 “왜 우리는 여기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현대 연극의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21세기에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것일까. 그 질문을 따라가면 20세기 문학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부조리문학’과 만나게 된다.


부조리는 단순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니다


일상에서 부조리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불합리한 상황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에서 말하는 부조리는 조금 다르다. 특히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는 세상이 본래 이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이유와 질서를 찾으려 한다.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노력하면 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돌아와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세계는 언제나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카뮈에게 부조리는 바로 이 간극에서 생겨난다. 의미와 질서를 요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요구에 침묵하는 세계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상태가 부조리다.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카뮈의 부조리를 인간이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세계에서는 그것을 확정적으로 발견할 수 없는 데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긴장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부조리문학은 단순히 이상한 사건을 다루는 문학이 아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마주했을 때 어떤 상태에 놓이는지를 탐색하는 문학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리고 카뮈가 이 문제를 철학적으로 명명하기 전에 문학은 이미 그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카프카,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세계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부조리한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어느 날 아침 은행원 요제프 K는 갑자기 체포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한다. 체포됐다고 해서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니다. 평소처럼 직장에 다니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재판 절차에 끌려 들어간다.

『소송』은 1914~1915년 집필됐으며 카프카가 사망한 뒤인 1925년 친구 막스 브로트가 원고를 정리해 출간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이 작품을 유럽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동시에 매우 복합적인 철학적 해석을 낳은 작품으로 평가한다.

이 소설의 공포는 폭력 그 자체보다 ‘이유를 알 수 없음’에서 나온다. 요제프 K는 자신을 판단하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체계가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는지는 알지 못한다. 법정은 존재하지만 법의 전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절차는 계속되지만 결론에 도달하는 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20세기 이후 현대인이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 상황이 압축돼 있다. 거대한 조직과 제도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판단을 받지만 판단의 전체 기준은 보이지 않고, 절차에 참여하지만 절차를 통제할 권한은 거의 없다.

오늘날 ‘카프카적’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문학적 수사를 넘어 복잡하고 불투명한 관료체계를 묘사할 때까지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프카는 부조리를 철학적 개념으로 정의하지 않았지만, 인간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문학 속에 먼저 만들어 놓았다.


카뮈, 인간은 의미를 찾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카프카가 부조리한 세계를 보여줬다면 카뮈는 그 세계와 인간 사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다 명확한 언어로 설명했다.

카뮈는 1942년 소설 『이방인』과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출간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하지만 같은 질문을 공유한다. 인간은 의미가 보장되지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과 행동의 규범에서 비껴나 있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이후 벌어진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도 범죄 행위뿐 아니라 그의 태도와 감정이 함께 심판받는다. 재판은 한 사람의 범죄를 판단하는 자리를 넘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모습과 거기에서 벗어난 개인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시지프 신화』에서는 문제가 더욱 직접적이다. 인간은 삶에 의미를 요구하지만 세계는 그 요구에 답하지 않는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인간이나 세계 가운데 한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인간에게 의미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없다면 부조리도 없고, 세계가 명확한 답을 준다면 역시 부조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부조리문학을 허무주의와 동일시하는 해석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출발점으로 던진 질문은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인간은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삶을 포기하자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의미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한 채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찾는다.

그 상징이 시지프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는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정상에 다다르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는 다시 내려가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 목적이 완성되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카뮈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보다 시지프가 다시 산 아래로 걸어 내려오는 순간이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다시 바위를 향해 간다. 카뮈에게 부조리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체념이 아니라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삶을 계속하는 의식과 반항에 가까웠다.

부조리문학이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서 바뀐다.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의미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한다.


베케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인간은 기다린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 질문을 더욱 극단적인 형식으로 밀어붙인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소년이 와서 오늘은 오지 않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고 전한다. 다음 날이 되면 기다림은 다시 시작된다.

전통적인 연극이라면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이 커지면서 어떤 결말에 도달한다.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그러한 직선적인 진행이 무너진다. 등장인물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다투고 화해하고 떠나겠다고 말하지만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노벨위원회는 베케트의 작품을 설명하며 두 인물이 존재의 무의미함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계속해서 기다리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그 기다림 자체가 인간이 처한 근본적인 조건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단순히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이야기”로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고도의 정체보다 인간이 왜 기다림을 중단하지 못하는가에 있다.

기다림에는 희망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 무엇인가 도착하면 지금의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기다린다. 동시에 그 기다림을 포기하는 순간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베케트는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거창한 연설이 아니라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안으로 가져왔다. 신도, 역사의 진보도, 명확한 목적도 등장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사람과 사람, 시간과 기다림이다.


관료제에서 알고리즘까지, 부조리는 사라졌는가


카프카와 카뮈, 베케트가 묘사했던 세계는 20세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인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취업 지원자는 자신의 경력이 어떤 방식으로 평가됐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결과를 받는다. 플랫폼 이용자는 같은 콘텐츠가 어느 날에는 노출되고 다른 날에는 노출되지 않는 이유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금융, 보험, 행정, 교육, 인사 영역에서도 점수와 평가가 개인의 중요한 결정을 좌우하지만 그 계산 과정 전체가 개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불투명한 권력과 관료제가 존재했다. 다만 디지털 기술이 개인의 삶을 더 많은 평가와 분류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판단을 받는 경험’은 새로운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카프카의 요제프 K가 다시 떠오른다. 그는 법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에게 적용되는 법과 판단 과정 전체를 알지 못한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 그 법정의 자리에 알고리즘과 자동화된 평가 체계를 그대로 놓을 수는 없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시스템 앞에 선 인간이라는 구조에는 묘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베케트의 기다림 역시 낯설지 않다.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승인을 기다리고, 답장을 기다린다. 인간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현재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끊임없이 다음 결과를 기다린다.

그래서 부조리문학은 오래된 문학사적 유물로만 남지 않는다. 세계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질문이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형태가 달라질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조리문학은 절망의 문학인가


부조리문학을 읽고 나면 이상한 역설이 남는다. 작품 속 세계는 답을 주지 않는데, 독자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카프카의 요제프 K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판단받고, 카뮈의 시지프는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며, 베케트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어느 인물도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의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부조리문학의 힘이 생긴다.

세상이 인간에게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은 같은 말이 아니다. 카뮈가 보여준 것처럼 부조리를 인식하는 순간은 절망의 종착점이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해야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베케트 역시 인간의 빈곤과 고립을 묘사했지만 인간 자체를 무가치한 존재로 처리하지 않았다. 1969년 노벨문학상 시상 연설은 베케트 문학의 깊은 비관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엄이 발견된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2026년에 『고도를 기다리며』가 다시 무대에 오르는 현상은 단순한 고전의 재공연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거스리 극장이 이 작품을 설명하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인간”에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조리문학이 묻는 것은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가가 아니다. 세상이 충분한 답을 주지 않을 때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카프카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보여줬다. 카뮈는 그 세계와 인간 사이의 충돌을 부조리라고 불렀다. 베케트는 그 안에서 기다리는 인간을 무대 위에 세웠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질문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세계는 여전히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조리문학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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