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산 22.6% 늘었는데…예술인과 지역 창작자에게 돌아갈 몫은
-예술인 사회안전망 15억→311억원으로 대폭 확대
-공연·전시·유통 지원 980억→1128억원, 증가율은 약 15%
-지역예술 활성화 215억원 신규 편성…‘지역에서 만드는 문화’가 관건
-역대 최대 예산보다 창작 지속성·선정기회·지역 정착 효과를 봐야
2027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이 9조6345억원으로 편성되면서 문화재정이 처음으로 9조원대에 들어선다. 올해보다 1조7790억원, 22.6% 늘어난 규모이며 문화·예술 분야만 보면 3조8545억원으로 전년 대비 44.6% 증가한다. 숫자만 보면 예술계에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문화예산 증가율과 개별 창작자가 실제로 이용하는 지원사업의 증가폭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번 예산안을 창작현장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예술인의 국민연금·산재보험과 생활안정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크게 확대되고, 공연·전시·유통에 직접 투입되는 기초예술 지원도 늘어난다. 여기에 지역 예술인이 지역에서 작품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도록 215억원 규모의 지역예술 활성화 사업이 새롭게 편성됐다. 정부의 문화지원 방식이 작품 제작비만 지원하던 구조에서 창작자의 생활기반과 지역 생태계까지 넓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예술인이 버틸 수 있어야 작품도 계속 나온다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예술인 사회안전망이다. 문체부는 2027년 예술인의 기초생활과 사회보험 등을 지원하는 관련 예산을 올해 15억원에서 311억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을 강화하고 건강검진 지원을 새롭게 도입하며, 생활안정자금 융자 규모도 늘린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창작지원금과 성격이 다르다. 작품 한 편이나 공연 한 차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제작비가 아니라, 작품이 없는 기간에도 예술가가 직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기반을 보완하는 재정이다.
예술인의 소득구조를 보면 이런 정책 변화가 왜 필요한지 드러난다. 문체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예술인의 예술창작활동 개인소득은 연평균 1054만7000원이었고, 예술활동 소득이 전혀 없다고 답한 비율도 31.0%였다. 전업 예술인은 전체의 52.5%였으며 이 가운데 61.7%가 자유계약자, 즉 프리랜서였다.
예술인이 작품을 계속 만들기 어려운 이유가 제작비 부족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정한 월급과 고용관계가 없는 예술인이 건강 문제나 주거비, 사회보험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면 창작경력 자체가 끊길 수 있다.
15억원에서 311억원…증가율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 범위
15억원이 311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은 비율로 보면 매우 큰 증가다. 그러나 이 수치만으로 예술인의 생활불안 문제가 해결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예술인 실태조사는 예술창작활동 소득의 편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평균 소득이 상승했더라도 상당수 예술인은 여전히 창작을 통해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가구 전체 소득과 예술활동 소득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2023년 기준 예술인 가구의 연평균 총소득은 4590만원이었지만, 개인이 직접 예술창작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따라서 사회안전망 예산의 성과는 예산 증가율보다 실제로 몇 명이 보험료 지원과 건강검진, 생활안정자금을 이용했는지에서 판단해야 한다. 지원대상이 지나치게 좁거나 신청절차가 복잡하면 큰 폭의 증액도 현장 체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초예술 직접지원은 44.6%만큼 늘지 않는다
2027년 문화·예술 분야 전체 예산은 44.6% 증가하지만, 공연·전시·유통에 직접 연결되는 지원은 그보다 완만하게 늘어난다. 정부가 제시한 관련 예산은 올해 980억원에서 내년 1128억원으로 약 148억원 증가하며 증가율은 약 15%다.
이 차이가 이번 예산안을 읽는 중요한 지점이다. 문화·예술 예산이 44.6% 늘었다고 해서 예술단체가 신청할 수 있는 창작지원이나 공연·전시 지원도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 예산에는 청년문화향유 지원과 문화시설, 국립기관 사업 등 다양한 항목이 포함돼 있다. 때문에 예술인이 체감하는 지원 규모를 파악하려면 문화·예술 분야 전체 예산보다 개별 공모사업과 제작·유통 지원액을 따로 봐야 한다.
현장에서 중요한 숫자는 ‘선정률’이다
예술단체가 체감하는 재정은 예산 총액보다 공모에서 실제로 선정될 가능성과 더 밀접하다. 지원사업 예산이 늘어도 신청자가 더 빠르게 늘어나면 선정률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 진행한 공연예술대관료지원 일반공모 1차의 경우 454개 단체와 개인이 신청했고 298건이 선정됐다. 신청금액은 약 19억3100만원이었지만 실제 지원결정액은 약 9억8050만원이었다. 하나의 사업 사례이기 때문에 전체 기초예술 지원환경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예산 총액과 개별 예술인의 접근 가능성이 서로 다른 지표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2027년 기초예술 지원이 현장에서 실제로 확대됐다고 평가하려면 지원총액만큼 신규 공모 건수와 평균 지원금, 신청자 대비 선정률을 함께 공개할 필요가 있다.
작품 한 편을 만드는 돈과 직업을 유지하는 돈은 다르다
2027년 예산안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직접 창작지원의 증가폭보다 사회안전망 확대폭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는 문화정책이 작품 중심 지원에서 예술가의 직업 지속성까지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술인이 한 차례 공모에 선정돼 제작비를 받더라도 다음 프로젝트까지 소득이 끊기면 직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특히 프리랜서 비중이 높은 공연과 미술, 문학 등에서는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이 곧 소득 공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창작지원과 복지를 서로 대체재로 볼 수 없다. 작품을 만드는 비용과 창작자가 계속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비용이 함께 필요하다.
지역예술 활성화 215억원도 새로 편성
정부는 2027년 지역문화 부문에서 215억원 규모의 ‘지역예술 활성화 사업’을 새롭게 추진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지역의 창작과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역문화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산이 어느 지역에서 사용됐느냐보다 그 돈으로 누가 작품을 만들었느냐다. 수도권에서 제작된 유명 공연을 지역 공연장에 유치하는 것도 문화향유 확대에는 도움이 되지만, 지역 예술인과 기획자·제작자가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정책이다.
지역문화 정책이 장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공연 횟수와 관람객 수뿐 아니라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의 비율과 지역 예술인의 참여 정도, 지원 종료 이후 창작활동이 유지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지역에 공연이 많아졌다’와 ‘지역 예술이 성장했다’는 다르다
문화정책에서는 공급 확대와 생산기반 확대가 쉽게 혼용된다. 수도권의 국립기관이나 유명 예술단체가 지역을 순회하면 지역 주민의 문화 접근성은 좋아지지만, 공연이 끝난 뒤 해당 지역에 제작인력과 일자리가 남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지역 예술단체와 기획자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다른 지역으로 유통할 수 있다면 재정지원이 지역의 문화산업 기반으로 축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215억원 규모의 신규 사업을 평가할 때는 지원사업 개최지역보다 제작주체를 볼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 주민이 서울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더 자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도 작품을 만들고 예술가가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지역 창작자의 문제도 결국 생활기반과 연결된다
지역예술 활성화와 예술인 사회안전망은 별개의 사업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서로 연결돼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안정적인 수입과 작업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원사업이 종료된 이후 수도권으로 이동하거나 예술활동 자체를 중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시가 과거 예술인 실태조사를 분석해 작성한 예술인 복지자료에서도 서울과 다른 지역 사이에 창작공간과 소득, 활동환경의 차이가 나타났다. 이는 지역마다 예술인이 겪는 어려움의 형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전국에 동일한 사업을 나눠주는 방식만으로는 지역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다. 지역별 장르 구조와 창작공간, 공연장, 관객시장, 예술인 규모를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문화예산이 커졌다고 창작자 지원이 같은 비율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이번 예산안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해석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문체부 전체 예산은 22.6% 증가하고 문화·예술 부문은 44.6% 늘지만, 이 숫자를 곧바로 ‘예술인 지원 44.6% 증가’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 재정에는 예술인 지원뿐 아니라 국민의 문화향유 확대와 시설, 기관운영 등 다양한 지출이 포함된다. 반대로 15억원에서 311억원으로 늘어난 예술인 사회안전망처럼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작아도 특정 집단에는 체감효과가 큰 사업도 있다.
따라서 문화예산을 평가할 때는 예산 증가율과 수혜자, 지원방식을 함께 봐야 한다. 같은 100억원이라도 공공시설을 건립하는 예산과 수천 명의 예술인에게 사회보험을 지원하는 예산은 현장에 전달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기초예술에서는 ‘한 번 지원’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공모 중심의 기초예술 지원은 단기간에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지만, 매년 새로운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불안정성도 갖고 있다. 지원에서 탈락하면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구조에서는 예술단체가 장기적인 창작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특히 연극과 무용, 클래식음악처럼 티켓판매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장르에서는 지속적인 공공지원이 창작생태계 유지와 직접 연결된다.
2027년 공연·전시·유통 지원이 1128억원으로 늘어난다면 총액 증가뿐 아니라 다년지원과 신규 예술인 진입기회, 장르별 배분이 어떻게 설계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지원사업의 질은 예산만큼 지원기간과 예측 가능성에서도 결정된다.
예술인 복지를 ‘창작과 무관한 돈’으로 볼 수 없는 이유
예술인 복지 확대를 두고 창작예산이 복지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술활동 소득이 없는 예술인이 31%에 이르고 전업 예술인의 상당수가 프리랜서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생활기반은 창작조건과 분리하기 어렵다.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주거비, 질병 등으로 창작활동을 중단한다면 작품 제작지원만 확대해도 실제 공급 기반은 약해질 수 있다.
다만 사회안전망 확대가 직접 창작지원 축소의 명분이 돼서도 안 된다. 창작자의 생활과 작품 제작은 서로 대체할 수 없는 두 축이기 때문에 양쪽 재정이 균형 있게 확대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역문화 예산도 ‘매칭 부담’을 살펴봐야
지역사업은 국비뿐 아니라 지방비가 함께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재정여력이 좋은 지방자치단체와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에 실제 사업 수행능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국비 사업이 신설돼도 지방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은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신청을 포기할 수 있다. 반대로 재정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역은 더 많은 사업을 확보하면서 문화격차가 다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역예술 활성화 사업의 세부 공모가 공개되면 국비·지방비 부담비율과 지역별 배분방식,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원기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27년 예산안은 아직 확정된 돈이 아니다
현재 발표된 9조6345억원은 정부가 편성한 2027년도 예산안이다. 국회의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최종 예산으로 확정된다. 세부 사업의 금액이나 신규사업 규모가 심의 과정에서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신규 지역사업과 대폭 증액된 예술인 사회안전망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사업대상과 집행방식, 기존 지원제도와의 중복 여부가 검토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는 ‘예술인 지원이 311억원으로 확정됐다’고 표현하기보다 정부 예산안에 311억원이 편성됐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역대 최대 문화예산, 현장은 세 가지 숫자를 봐야 한다
2027년 문화예산을 평가하는 기준을 9조6345억원 하나로 잡으면 실제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창작현장에서는 오히려 예술인 사회안전망 311억원, 공연·전시·유통 지원 1128억원, 지역예술 활성화 신규사업 215억원이 더 직접적인 숫자다.
세 사업은 각각 다른 문제를 겨냥한다. 311억원은 예술인이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생활기반을, 1128억원은 실제 작품의 제작과 유통을, 215억원은 수도권 밖에서도 창작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지역기반을 지원한다.
이 세 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문화재정 확대는 단순한 예산 증가를 넘어 창작구조 자체를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사회보험 가입자 수가 늘지 않고 기초예술 공모 경쟁률은 그대로이며 지역사업이 일회성 행사에 그친다면 역대 최대 예산이라는 숫자와 현장 체감 사이의 차이는 계속 남을 수 있다.
문화예산의 성패는 ‘얼마나 썼나’보다 ‘누가 계속 남았나’
문화정책에서 재정투입의 최종 성과는 한 해 동안 몇 건의 공연과 전시가 열렸는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지원을 받은 예술인이 다음 해에도 창작활동을 지속하는지, 지원받은 단체가 다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지, 지역에서 양성된 기획자와 창작자가 해당 지역에 남는지가 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인의 창작소득이 과거 조사보다 개선됐음에도 연간 예술창작활동 소득이 없는 사람이 여전히 31%였다는 사실은 문화예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7년 문화예산안의 변화는 이런 문제에 작품 제작비만이 아니라 사회안전망과 지역기반을 함께 투입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성과는 내년 집행 이후 사회보험 수혜자와 공모 선정률, 지역 예술인의 참여율 같은 구체적인 지표로 확인해야 한다.
문화예산 9조원 시대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얼마를 편성했느냐보다 그 돈으로 예술가가 얼마나 오래 창작할 수 있었는지,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공공지원이 끝난 뒤에도 문화생태계가 살아남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때 비로소 22.6%라는 예산 증가율이 문화현장의 실제 변화로 이어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