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8년 만의 신작, 넷플릭스 영화로 오스카 간다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8월 25일 이 작품을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확정했다. ‘버닝’ 이후 이창동 감독이 처음 선보이는 장편이자 첫 넷플릭스 영화라는 점에서 이번 선정은 작품 자체뿐 아니라 달라진 영화산업의 경계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주목된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전도연과 설경구, 조여정, 조인성이 출연하며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과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도 초청됐다. 국내에서는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이 일정만 놓고 봐도 흥미로운 변화가 보인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지만 극장에서 먼저 관객을 만나고, 이후 글로벌 스트리밍으로 이동한다. 동시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내보낼 한국 대표작으로 선택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 영화도 영화인가”라는 질문은 영화계에서 꽤 격렬한 논쟁거리였다. 극장 개봉을 영화의 중요한 조건으로 보는 입장과, 제작과 유통 방식이 달라졌을 뿐 영화라는 예술형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 맞섰다.
하지만 ‘가능한 사랑’을 둘러싼 현재의 풍경은 그 논쟁이 이미 다른 단계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제 극장과 OTT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지 않는다. 극장에서 먼저 상영한 뒤 스트리밍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뒤 플랫폼을 통해 세계 관객을 만나는 경우도 늘었다. 제작사는 글로벌 플랫폼이지만 감독과 배우, 언어와 제작문화는 특정 국가의 영화적 전통과 연결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 편의 영화를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제작비를 댄 회사인가, 처음 공개되는 장소인가, 관객이 보는 화면의 크기인가, 아니면 감독과 창작진이 만들어낸 작품 자체인가.
‘가능한 사랑’은 이 질문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글로벌 플랫폼 영화지만 한국 감독과 배우가 만들고 한국어로 제작된 작품이며,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를 한국을 대표할 국제장편영화 출품작으로 선택했다.
이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한국영화의 외부에 있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한국영화 제작 생태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OTT가 처음 영화시장에 진입했을 때 영화계의 우려는 분명했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영화를 곧바로 온라인으로 공개하면 극장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글로벌 영화제에서도 플랫폼 영화의 경쟁부문 진출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이어졌고, 극장 개봉 기간을 둘러싼 갈등도 반복됐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관객의 영화 소비 방식은 빠르게 바뀌었다.
집에서 신작 영화를 보는 일이 일상화됐고, 극장과 OTT를 경쟁 관계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같은 관객이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다른 작품은 집에서 선택하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그 과정에서 극장이 맡는 역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극장은 더 이상 모든 영화를 소비하는 유일한 장소가 아니라, 특정 작품을 가장 먼저 또는 가장 몰입감 있게 경험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반면 OTT는 개봉 이후 작품의 수명을 늘리고 국가와 지역의 장벽을 넘어 더 많은 관객에게 전달하는 유통망 역할을 한다.
‘가능한 사랑’이 극장 개봉을 먼저 선택한 뒤 넷플릭스 공개로 이어지는 방식은 이런 변화에 잘 맞아떨어진다.
극장에서 먼저 작품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에게는 선택지를 제공하면서도, 이후에는 세계 각국의 넷플릭스 이용자에게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 예술영화 성격이 강한 감독의 작품이 과거보다 훨씬 넓은 관객층을 만날 가능성도 생긴다.
이창동 감독의 경우 이 변화가 더욱 상징적이다.
그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을 통해 한국영화의 작가주의를 대표해 온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상업적 흥행보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인물의 내면과 윤리적 질문으로 국제 영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 글로벌 OTT 플랫폼과 손잡았다는 사실은 예술영화와 플랫폼 사이의 관계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때 OTT는 대중적인 시리즈물이나 상업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계적인 감독의 신작과 영화제 경쟁작, 대형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까지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제작비와 글로벌 유통이라는 장점이 있다.
특히 국내 극장시장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작품의 경우 전 세계 가입자를 가진 플랫폼은 새로운 제작 기반이 될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상업성이 제한적인 작품이라도 여러 나라의 관객을 동시에 확보하면 다른 방식의 경제성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플랫폼 중심 제작이 커질수록 새로운 고민도 생긴다.
어떤 작품이 얼마나 많은 관객에게 도달했는지, 플랫폼의 데이터가 충분히 공개되는지, 감독과 제작사가 장기적으로 어떤 권리를 갖는지 같은 문제다. 극장 흥행에서는 관객 수와 매출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지표가 있지만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플랫폼이 정보를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성공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관객 100만명이나 500만명이라는 숫자가 영화 흥행의 상징처럼 사용되던 시대와 달리, OTT에서는 시청시간과 국가별 순위, 완주율 등 전혀 다른 지표가 등장한다.
영화산업의 언어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출품작 선정 역시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매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요청에 따라 한국을 대표할 작품 한 편을 선정한다. 올해 ‘가능한 사랑’이 선택됐다는 것은 플랫폼 제작 여부보다 작품의 영화적 완성도와 국제 경쟁력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심사위원단은 감독의 메시지와 미장센, 인물 관계의 밀도 등을 주요 선정 이유로 평가했다.
물론 한국 출품작이 됐다고 곧바로 아카데미 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국이 제출한 작품 가운데 예비후보를 거쳐 최종 후보가 결정되며, ‘가능한 사랑’ 역시 올해 말 예비후보 진입 여부를 먼저 지켜봐야 한다. 제9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2027년 3월 열릴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정이 갖는 의미는 수상 가능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영화의 대표작이라는 개념 자체가 더 이상 국내 극장 배급망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작품은 베네치아에서 세계 관객과 먼저 만나고, 한국 극장에서 개봉한 뒤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세계로 확산된다. 영화제와 극장, 글로벌 OTT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순차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영화의 정의는 이미 크게 달라졌다.
누군가는 극장의 큰 화면과 어두운 공간에서 두 시간 동안 작품에 집중하는 경험을 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관객에게는 집에서 원하는 시간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람 방식일 수 있다.
두 경험은 서로 다르지만 반드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영화산업은 어떤 작품을 어느 공간에서 먼저 보여주고, 이후 어떤 플랫폼으로 확장할 것인지 설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극장은 작품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 되고, OTT는 작품의 관객과 수명을 확장하는 유통망이 될 수 있다.
‘가능한 사랑’이 그 모델의 성공 사례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9월 극장 개봉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베네치아와 토론토에서 평가는 어떨지, 11월 넷플릭스 공개 이후 세계 관객이 얼마나 관심을 보일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변화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넷플릭스 영화가 영화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낡은 질문이 되고 있다.
대신 앞으로는 어떤 영화가 극장에서 더 큰 가치를 가지는지, 어떤 작품이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지, 그리고 두 유통방식이 창작자와 관객에게 어떤 선택지를 만들어주는지를 묻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아카데미 한국 출품작으로 선택됐다는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영화제와 극장, OTT를 넘나들며 동시에 ‘한국영화’로 불리는 시대.
‘가능한 사랑’은 아직 공개되기도 전에 영화의 경계가 이미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