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울변방연극제, 전쟁과 노동·식민 역사 담은 작품으로 무대 선보인다

전쟁과 노동, 식민의 기억을 동시대 공연의 언어로 호출하는 서울변방연극제가 9월 2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24회를 맞은 올해 축제는 서울을 넘어 경남 밀양, 충남 홍성, 경기 용인으로 무대를 확장해 총 12개 작업을 선보인다. 한 축제 안에 과거와 현재, 산업과 생태, 인간과 비인간의 서사가 교차하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올해 슬로건은 ‘흩어져, 모든 것이 엉키는 가운데’. ‘변방’을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시간이 충돌하며 새로운 관계가 태어나는 지점으로 재정의한다. 1999년 출범 이후 실험적 형식과 사회적 의제를 결합해온 축제의 기조가 이어지며, 2026년 공식 축제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포털에도 등록돼 있다.

프로그램은 ‘주제전’과 ‘필드(field)-워크(work)’로 나뉜다. 주제전은 국민국가의 경계 너머에 놓인 전쟁과 개발, 노동과 자본, 퀴어 공동체, 비인간 존재, 토착성과 식민의 역사 등을 공연·퍼포먼스·리서치로 다룬다. 완결된 장르 구분보다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묶어 갈등과 공존의 상상을 시험한다.

무대는 고정된 극장을 벗어난다. 경남 밀양 고정마을, 충남 홍성의 지역 거점 등이 실제 현장으로 연결되며 작품의 맥락을 키운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반도챗 episode 1 : 뭔 얘기를 하다 만담’은 밀양·홍성·용인을 잇는 이동 속에서 반도체 산업을 떠받치는 전력, 물, 토지, 노동,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추적한다. 기술 내부가 아닌 환경과 조건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시도다.

노네임프레스의 ‘낯선 은신처’는 재개발을 앞둔 도시 공간을 기록한다. 사라질 건물과 골목, 그곳에 남은 말해지지 않은 존재의 흔적을 무대로 불러내며 개발 과정에서 지워지는 삶을 증언한다. 허성욱의 ‘없어지고, 있는 것들, 아주 느리게, 부딛히기’는 ‘없는 몸’과의 만남을 춤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부재를 신체의 감각으로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해외 초청작으로는 일본 공연단체 올타(OLTA)의 ‘영원한 노동(Eternal Labor)’이 소개된다.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서 오늘의 분단 체제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맥락 속 노동과 착취의 구조를 되짚으며, 식민의 과거와 현재의 노동 현실을 하나의 연속된 시간으로 읽어낸다.

‘필드-워크’는 결과물보다 과정에 주목한다. 예술가의 조사와 탐색, 현장 만남이 관객에게 공유되는 형식이다. 이혜원이 참여하는 ‘분해의 연극: 쉬고, 디디고, 더듬으며’는 숲과 동네에서 균류와 지의류를 관찰하며 인간 중심의 시선을 비켜선 관계 맺기를 탐색한다. 이지연의 ‘순록-지의-순록치기의 길’은 순록의 먹이인 지의류를 단서로 한국과 핀란드를 가로지르는 이동의 상상을 펼치고, 유목과 국경, 토착성과 기억의 문제를 ‘렉처 퍼포먼스’로 확장한다.

관객의 위치도 달라진다. 객석에 앉아 완성된 결과만 보는 대신, 작품이 제기한 질문과 현장적 관계 속으로 들어가 동행하는 참여자로 호출된다. 축제가 서울의 경계를 넘어 밀양·홍성·용인을 촘촘히 연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대를 분산함으로써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익숙한 문화 지형에 균열을 내고, 다른 시간과 장소를 한 자리에서 엮어보겠다는 의지다.

전쟁과 식민, 노동과 개발, 인간과 비인간의 주제가 얽히는 이번 라인업은 개별 사건을 병렬하지 않고, 역사·지역·산업·생태의 연쇄를 따라 현재를 바라보려는 축제의 방향을 드러낸다. 9월 2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질 서울변방연극제는 거대한 서사 대신 흩어진 목소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변방’의 지도를 다시 그리겠다고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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