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예술 통계는 왜 관람과 참여를 따로 셀까…지표 밖에 남는 창작의 순간들

문화예술 통계에서 ‘관람’과 ‘참여’가 다르게 집계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 다른 행동을 재려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현장에선 이 구분이 깔끔하지 않다. 전시를 보고 곧바로 작업을 만들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제작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통계는 문화예술의 한 단면을 또렷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생활 속 창작의 일부를 놓치기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 관련 국가승인통계를 보면 이 구조가 분명해진다. 2018년까지 이어진 ‘문화향수실태조사’는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을 핵심 지표로 다뤘고, 이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는 직접 관람률뿐 아니라 참여율, 교육 경험률을 별도 지표로 제시했다. 2023년 조사 결과는 직접 관람률 58.6%, 참여율 4.8%, 교육 경험률 8.5%였고, 2024년 결과에선 직접 관람률 63.0%, 참여율 5.8%, 교육 경험률 8.6%로 각각 발표됐다. 같은 사람의 문화 활동이라도 통계에서는 감상, 창작·행사 참여, 교육 경험이 서로 다른 질문과 기준으로 나뉘는 셈이다.


관람은 ‘보는 행위’, 참여는 ‘직접 개입하는 행위’로 설계된다


문체부가 발표한 최근 조사 설명을 보면 관람은 공연·전시·영화 같은 문화예술행사를 직접 본 경험을 가리키고, 참여는 전시회 및 창작활동에 직접 참여한 경우로 잡힌다. 여기에 문화예술교육 경험률은 다시 별도로 분리된다. 통계가 묻는 질문의 출발점부터 다른 것이다.

이 구분은 정책 목적과도 연결된다. 관람률은 문화 접근성과 향유 기회를 보는 데 유리하다. 반면 참여율은 수동적 소비를 넘어 얼마나 직접 몸을 움직였는지, 창작과 표현의 단계로 들어갔는지를 측정하는 데 적합하다. 교육 경험률은 다시 문화예술을 배우는 기회가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주어졌는지 파악하는 데 쓰인다. 한 지표가 다른 지표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시민의 실제 경험이 이보다 더 복합적이라는 데 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워크숍에 참여해 결과물을 만들고, 그 결과물이 다시 전시 일부가 되는 순간에는 관람자와 참여자, 학습자의 경계가 한 번에 겹친다. 통계는 비교를 위해 경계를 세우지만, 현장은 그 경계를 계속 넘나든다.


같은 미술관 방문도 관람과 교육이 따로 잡히는 이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어린이미술관의 2023년 교육 프로그램 ‘예술가의 지구별연구소’는 이런 겹침을 잘 보여준다. 프로그램 안내에는 나현 작가의 작품 ‘카나리아’를 감상한 뒤 천연점토로 카나리아 새를 표현하고, 그 결과물을 ‘관람객 참여형 작품 <카나리아> 나무배’에 전시하도록 구성돼 있다. 보는 행위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만드는 행위와 전시 참여로 이어지는 구조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안내문에는 또 다른 단서가 있다. 교육 참여 전후 어린이미술관 단체 관람을 원하면 별도로 단체 관람 신청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행정상으로는 교육 신청과 관람 신청이 분리돼 있다는 뜻이다.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활동이라도 기관 운영과 통계 집계에서는 ‘관람객’과 ‘교육 참여자’가 다른 경로로 관리될 수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서류 절차가 아니다. 미술관이 전시 관람객 수를 셀 때 필요한 단위와 교육 프로그램 참여자를 셀 때 필요한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입장과 관람을 기준으로 하고, 후자는 신청 인원, 회차, 운영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잡는다. 참여형 전시나 워크숍이 늘어날수록 한 사람이 여러 범주에 걸치거나, 반대로 어느 한 범주에만 기록되는 일이 생긴다.


공연예술에서도 감상자와 창작자가 한 프로그램 안에서 섞인다


국립극장의 예술교육 프로그램 ‘아마추어 관현악단’도 비슷한 사례다. 국립극장은 이 프로그램을 국악기를 다룰 수 있는 비전공자가 참여하는 대표 예술교육으로 소개하면서, 연주와 합주를 거쳐 국립극장 무대에서 관객을 대상으로 수료공연까지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수강생은 교육 참가자이면서 동시에 무대에 오르는 실연자다.

통계상으로 보면 이들의 활동은 대체로 교육 참여로 잡히기 쉽다. 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교육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반년 가까운 수업과 개인 연습 끝에 무대에 서는 순간, 이들은 단순한 수강생이 아니라 창작과 실연의 주체가 된다. 교육 통계에는 포착되더라도, 시민의 자발적 예술 실천이라는 층위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국립극장이 2024년부터 운영해 온 ‘우리학교 국립극장’도 관람 지표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 사업은 공연장 직접 방문이 어려운 초·중·고 학생들이 교실에서 공연 영상을 감상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으로, 2026년 4월 기준 29개교 3천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소개됐다. 학생들은 분명 공연을 감상하지만, 이 경험은 극장 객석의 관객 수가 아니라 교육 현장의 프로그램 참여로 기록된다.

같은 기관 안에서도 무엇을 세느냐에 따라 숫자의 이름이 달라지는 셈이다. 극장 좌석 점유를 보려면 현장 관객 수가 중요하고, 공공기관의 문화 접근성 확대를 보려면 학교 상영 참여 인원이 중요하다. 둘 다 필요하지만 서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통계가 놓치는 것은 ‘적은 활동’이 아니라 ‘경계에 있는 활동’이다


숫자만 보면 관람률은 높고 참여율은 낮아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사람들은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기는 어렵다. 현재의 지표 체계는 비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관람, 행사 참여, 교육, 동호회 활동을 분리해 측정한다. 그 덕분에 접근성 문제와 참여 장벽, 교육 격차를 각각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여러 층위가 겹친 생활 속 예술 활동은 쪼개져 보이게 된다.

특히 공식 기관 프로그램 밖에서 이뤄지는 창작은 더 잘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휴대전화로 짧은 영상을 편집하고, 온라인에 낭독이나 커버 영상을 올리는 활동은 분명 문화예술 실천이지만, 매년 발표되는 대표 지표의 정의 안에서는 일관되게 포착되기 어렵다. 이는 현재 통계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측정 단위가 제도권 프로그램과 확인 가능한 활동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관람과 참여를 따로 세는 일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이 구분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놓치는지 함께 읽는 일이다. 관람률은 문화 접근의 폭을, 참여율은 직접 개입의 정도를, 교육 경험률은 배움의 기회를 보여준다. 다만 창작이 관람과 교육 사이에서 일어나는 오늘의 문화예술 현장까지 이해하려면, 그 사이의 회색지대를 설명하는 사례와 보조지표가 함께 따라와야 한다.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 발표(2019.02.11);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 등 발표(2023.12.26); 문화체육관광부, 일상에서 풍요롭게 누린 2024년 문화·여가 활동(2024.12.27);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체부 보도자료] 2020년 국민 문화예술교육 참여율 27.3%, 지속 참여 의향 81%(2021.03.30); 국립현대미술관, 어린이미술관 전시·상시 교육프로그램 안내자료 《예술가의 지구별연구소》(2023); 국립극장, 계간 국립극장 ‘함께해서 더 아름다운 무대, 아마추어 관현악단’(2024); 국립극장, 공연영상화 ‘우리동네 국립극장’ ‘우리학교 국립극장’ 2026 참여기관 모집(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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