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기념품이 지역 작가의 작품이 되려면…공공조달보다 먼저 풀어야 할 디자인 권리
외국인이 한국에서 무엇을 사고 돌아가느냐는 단순한 소비 문제가 아니다. 지역이 자기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상품화하는지, 그 과정에서 창작자에게 어떤 권리를 남겨두는지와 연결된다. 다만 기념품이 재방문율을 곧바로 끌어올린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의 외래관광객 조사는 재방문율과 만족도, 지출 등을 따로 집계하지만, 특정 상품군 하나가 재방문을 좌우한다고 보여주지는 않는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더 분명한 질문은 따로 있다. 여행지 기념품을 지역 작가의 작품으로 만들려면 공공기관은 무엇을 사야 하고, 무엇은 사지 못하는가라는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공부문이 기념품을 발주하거나 공모할 때 풀어야 할 일은 두 갈래다. 하나는 권리, 다른 하나는 조달과 유통이다. 기념품의 외형과 그래픽, 서사, 캐릭터, 포장까지 창작의 핵심은 대부분 저작권이나 디자인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공공기관이 물건을 샀다고 해서 그 권리까지 자동으로 넘어오지는 않는다. 반대로 권리만 확보해도 생산과 판매 구조가 없으면 지역 작가의 작업은 전시용 시안으로 남기 쉽다.
공모전은 작품을 뽑지만, 권리 이전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모전 지침은 출품작의 저작권이 원칙적으로 응모자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전제로 삼는다. 주최 측은 요강에 미리 밝힌 범위 안에서 수상작 이용 허락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포괄적인 권리 양도와 같지는 않다. 이 원칙은 지역 기념품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공공기관이 공모전을 열어 우수한 디자인을 선정하더라도, 그 결과는 대개 ‘활용 가능한 수상작’이지 곧바로 기관 소유의 브랜드 자산은 아니다.
서울시가 2023년에 연 제11회 서울상징관광기념품 공모전은 이 차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시는 총 6900만원 규모의 시상에 더해 제작 지원금과 수상작 매입금을 따로 제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금만이 아니라 ‘매입’ 항목이다. 공공이 실제 상품화와 지속 유통까지 염두에 둔다면, 단순 수상 체계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권리 확보 비용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물을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 쓰려면 처음부터 공모, 보상, 이용 허락, 필요하면 매입까지 단계가 나뉘어야 한다.
서울시의 더 이른 공모전 운영에서도 같은 원칙이 반복된다. 서울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 안내에는 수상작 저작권이 출품자에게 있다고 명시돼 왔다. 이는 공공이 창작자를 발굴하는 일과 창작물의 권리를 취득하는 일이 별개의 계약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지역 기념품 사업이 작가를 소모품처럼 다루지 않으려면 바로 이 구분에서 출발해야 한다.
권리를 사지 않고도 지역 상품을 키우는 방식도 있다
모든 공공사업이 창작물의 권리를 기관으로 이전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가 2026년에 진행한 서울 브랜드 굿즈 공모는 다른 모델을 택했다. 이 사업은 서울마이소울과 서울 상징물이라는 공공의 브랜드 자산을 민간에 열어주고, 선정 기업 210곳에 1년간 무료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구조다. 선정 기업은 그 권한 안에서 상품을 자율 제작·판매하고, 상위 기업에는 DDP디자인스토어 팝업이나 공식 굿즈숍 입점 지원이 따라붙는다.
이 방식의 핵심은 공공이 민간 창작물의 권리를 모두 가져가는 대신, 공공이 가진 도시 브랜드 IP를 개방해 지역 사업자와 디자이너의 상품화 비용을 낮춘다는 데 있다. 2025년 12월에 공고된 첫 모집 공고와 2026년 8월 서울시 발표를 보면, 서울시는 브랜드 사용권과 유통 창구, 정책자금·컨설팅을 결합해 상품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 했다. 작가나 소상공인이 자기 상품의 권리를 유지한 채 도시 브랜드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이 직접 ‘작품을 소유’하지 않아도 지역 기념품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는 사례다.
이 모델은 특히 생활소품, 문구, 패션잡화처럼 제품 회전이 빠른 분야에 유리하다. 공공이 모든 디자인을 직접 발주하고 매입하는 방식보다 행정 부담이 적고, 실패 위험도 분산된다. 대신 공공은 브랜드 가이드와 품질 심사, 유통 관리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부산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선정’ 다음의 판매 구조다
부산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기념품을 지역 관광산업의 별도 사업으로 다루고 있다.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부산 대표 관광기념품 10선’은 공모를 통해 상품을 선정한 뒤 판매점과 지원사업을 연결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2026년 제4기 10선은 214건 신청 가운데 10개 업체가 선정됐고, 부산시는 부산역 동백상회, 광안리 여가거가, 해운대 선물가게 등 판매 거점을 함께 안내하고 있다. 같은 해 예산 공개 자료에는 이 사업이 2030년까지 이어지는 지원사업으로 잡혀 있고, 시행 주체도 부산광역시와 부산관광공사로 명시돼 있다.
이 구조는 ‘좋은 작품을 뽑는 일’과 ‘실제 팔리는 기념품을 만드는 일’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산의 경우 공모전 수상만으로 끝나지 않고 판매 채널을 별도로 갖추려 했다. 2024년에는 부산시와 올리브영이 부산 청년작가와 협업한 ‘부산 특화 기프트 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한 이 상품은 대량 조달 물품이라기보다, 지역 이미지와 청년 창작을 연결한 한정 상품에 가깝다. 이런 사례는 지역 작가의 시각이 들어간 상품이 반드시 박물관 숍이나 전통 공예품 형식일 필요는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다만 여기서도 남는 질문은 같다. 선정된 업체와 작가가 어떤 범위까지 권리를 보유하는지, 재생산과 2차 상품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 판매 종료 뒤 재고와 후속 제작 권한은 어떻게 정리되는지다. 공개된 보도자료만으로는 그 계약 세부까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역 기념품 사업의 성패는 화려한 공모 명칭보다 계약서 문구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다.
공공조달은 공장을 사는 제도가 아니라, 기획 능력도 보는 제도다
공공조달은 흔히 대량생산품을 가장 싸게 사는 절차로 이해되지만, 기념품 분야에서는 조금 다른 장치가 있다. 조달청의 제조물품 직접생산확인 기준은 독창적인 기념품처럼 창작과 기획의 결과가 제품 가치를 좌우하는 경우, 제조공장을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제품을 직접 기획 또는 설계하고 국내 제조업체에 의뢰해 생산·판매하는 방식을 일정 요건 아래 인정한다. 이는 지역 작가나 소규모 스튜디오가 공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시장 밖으로 밀려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자동으로 창작자 친화적인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이 한 업체에 기획·생산·납품을 한 번에 맡기면, 실제 디자인을 만든 지역 작가가 하도급 단계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디자인과 권리 계약을 먼저 체결하고, 생산은 별도 제조업체와 연결하면 창작자의 이름과 권리를 더 분명히 남길 수 있다. 결국 조달의 쟁점은 ‘누가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권리를 갖고 어떤 조건으로 다시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저작권과 디자인권을 함께 봐야 지역 작가가 남는다
기념품은 법적으로도 한 가지 권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작권법은 공예와 응용미술저작물을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있고, 판례는 물품의 기능과 분리되는 독자적 표현이 있는 경우 저작권 보호 가능성을 인정해 왔다. 동시에 디자인보호법은 신규성과 창작성 등을 갖춘 디자인의 등록 요건을 따로 둔다. 쉽게 말해 어떤 기념품은 등록디자인일 수 있고, 또 어떤 요소는 응용미술저작물로 다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 기념품 사업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은 ‘저작권은 모두 주최 측에 귀속된다’ 같은 포괄 조항이다. 실제로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 디자인 출원 여부, 상표 사용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제작 금형의 소유권까지 쟁점이 나뉜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름 표시와 변경 동의 범위가 중요하고, 지자체 입장에서는 후속 제작과 판매 지속성이 중요하다. 둘 다 지키려면 처음부터 권리를 통째로 가져오는 방식보다, 이용 범위와 기간을 세분화한 계약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지역 작가의 작품이 되려면 필요한 것은 ‘예쁜 굿즈’보다 계약 설계다
여행지 기념품이 지역 작가의 작품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첫째, 공모 단계에서 권리 귀속과 이용 범위를 분리해야 한다. 둘째, 상품화 단계에서 제작 지원금이나 매입금, 사용료 같은 보상 장치를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셋째, 선정 이후에는 판매점·온라인 유통·후속 제작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서울의 공모전이 권리와 보상을 나눠 보여줬다면, 서울 브랜드 굿즈 사업은 공공 IP 개방 모델을, 부산의 10선 사업은 선정 뒤 판매 구조를 보여준다.
이 세 요소가 빠지면 지역 기념품은 쉽게 두 가지 극단으로 흐른다. 하나는 권리를 과도하게 가져가는 공공 주도형, 다른 하나는 지역성만 빌리고 창작자는 익명 하청으로 남는 민간 OEM형이다. 반대로 권리와 조달, 유통을 분리해서 설계하면 지역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지자체는 지속 가능한 상품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다. 여행지의 기념품이 정말 지역의 작품이 되는 순간은 예산이 투입되는 때가 아니라, 그 예산이 누구의 권리와 어떤 판매 구조를 남기는지까지 설계될 때다.
자료: 한국관광데이터랩, 외래관광객 조사; 문화체육관광부,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 문화체육관광부, 창작물 공모전 지침; 문화체육관광부, 2022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 수상작 발표(2022.09.28.); 서울특별시, 제11회 서울상징관광기념품 공모전 공고(2023); 서울특별시, 서울브랜드굿즈 공모… ‘서울굿즈’ 중소상공인 210곳 키운다(2026.08.26.); 서울문화포털, 서울 브랜드 굿즈 상품화 공모 모집공고(2026.01.02.); 부산광역시, 2026년 제4기 부산 대표 관광기념품 10선 선정(2026.07.29.); 부산광역시, 부산 대표 관광기념품 10선 사업 소개; 부산광역시, 부산 대표 관광기념품 개발 지원 세부사업 내역(2026); 부산광역시, 부산시-올리브영 부산청년응원 프로젝트 영부산 추진(2024.10.25.); 국가법령정보센터, 저작권법; 국가법령정보센터, 디자인보호법; 국가법령정보센터, 조달청 제조물품 직접생산확인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