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식의 영어 이름은 누가 정하나…표준 번역과 지역 고유명이 갈리는 구조
전통음식의 영어 이름은 한 기관이 일괄적으로 확정해 끝내는 방식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외국어 메뉴판과 공공표기를 위해 기준안을 만들지만, 지역은 그 음식이 지명과 결합한 고유명인지, 관광 브랜드인지, 상표나 지리적 표시의 대상인지에 따라 다른 이름 전략을 쓴다. 같은 음식이라도 일반 메뉴판에서는 설명형 번역이, 지역 대표 음식 소개에서는 원어에 가까운 표기가 살아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주요 한식명 200가지의 로마자 표기와 영어·중국어 번역 표준 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종결판이라기보다 출발점에 가까웠다. 2016년 관계 부처와 국립국어원, 한국관광공사, 한식재단이 한식 메뉴판 오류를 바로잡겠다며 다시 내놓은 설명을 보면, 당시에도 표준화가 완료된 메뉴명은 200개 수준이었고 표준화되지는 않았지만 번역 오류가 없는 메뉴는 약 3700개라고 구분돼 있었다. 표준안과 현장 수요가 따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국립국어원도 이를 단순한 맞춤법 문제가 아니라 번역 전략의 문제로 다뤘다. 2017년 연구보고서에서는 한식명 480개의 영·중·일 표기와 번역 지침을 검토하고, 100개 표준 번역안을 대상으로 3개 언어권 원어민 900명을 상대로 수용성 조사를 진행했다. 음역, 직역, 의미역을 어떻게 섞을지에 따라 이해도와 수용성이 달라진다는 점을 별도로 본 것이다. 결국 전통음식의 영어 이름은 규범 기관의 표기 원칙, 관광·외식 현장의 이해 가능성, 지역 브랜드의 보존 필요가 함께 개입하는 협상 결과에 가깝다.
표준안은 ‘설명 가능한 메뉴명’을 만든다
중앙 기준안의 기본 목적은 외국인이 메뉴를 보고 음식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한식진흥원이 현재도 소개하는 외국어 표기 예시를 보면 ‘Yukgaejang·Spicy Beef Soup’, ‘Galbijjim·Braised Short Ribs’, ‘Jeonbokjuk·Abalone Porridge’, ‘Dakgalbi·Spicy Stir-fried Chicken’처럼 원어 표기와 설명형 영어를 병기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한국어 이름을 완전히 영어 단어로 갈아끼우기보다, 발음을 남기면서 이해를 돕는 풀이를 덧붙이는 구조다.
이 방식은 식당 메뉴판처럼 즉시 이해가 필요한 공간에서는 유용하다. 낯선 음식명을 영어 사용자에게 그대로 제시하면 정보가 부족하고, 반대로 뜻만 번역하면 한국 음식 고유명이 사라진다. 그래서 중앙 표준은 대체로 음역과 의미 설명의 절충형으로 움직여 왔다. 다만 이 기준은 어디까지나 ‘메뉴명 표준화’에 강점이 있을 뿐, 지역 음식의 고유한 역사성과 소유 구조까지 모두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 한계는 국립국어원의 최근 온라인 답변에서도 드러난다. 국립국어원은 ‘김치’의 로마자 표기로 과거부터 널리 써 온 ‘kimchi’와 규범에 따른 ‘gimchi’를 함께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규칙만 따지면 하나로 정리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습적 사용과 국제적 인지도가 함께 작동한다는 뜻이다. 전통음식 영어 이름을 둘러싼 논의가 늘 표기 규정만으로 끝나지 않는 배경이다.
지역에선 음식명이 곧 지명이고 브랜드가 된다
충돌이 본격화되는 지점은 음식 이름 앞에 지명이 붙을 때다. 전주의 공식 관광 영문 페이지는 ‘Jeonju Bibimbap’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bibimbap’을 단순히 mixed rice 같은 일반명으로 바꾸지 않고, 지명과 결합한 이름 전체를 하나의 고유명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전주시는 예산서에 ‘전주비빔밥 상표사용료’ 항목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이름이 단순한 설명어가 아니라 행정적으로 관리되는 지역 브랜드라는 뜻이다.
이 경우 영어 이름을 누가 정하느냐는 질문의 답도 달라진다. 일반적인 ‘비빔밥’의 외국어 표기는 중앙 기준안이 다루지만, ‘전주비빔밥’이라는 이름은 지역이 축적해 온 상표, 관광, 축제, 도시 홍보의 층위가 덧붙는다. 지역 입장에서는 이를 ‘Jeonju-style mixed rice’처럼 풀어버릴 경우 고유명으로서의 식별력이 약해질 수 있다. 표준 번역의 논리와 지역 고유명의 논리가 처음부터 같지 않은 셈이다.
춘천 닭갈비도 비슷하다. 한식 외국어 표기 예시에서는 ‘Dakgalbi·Spicy Stir-fried Chicken’처럼 설명형 번역이 붙지만, 한국관광공사 영문 페이지는 ‘Chuncheon Dakgalbi’ 또는 ‘Chuncheon Myeongdong Dakgalbi Street’처럼 지명과 음식명을 그대로 살린다. 다만 본문에서는 다시 dakgalbi를 spicy stir-fried chicken이라고 풀어 설명한다. 이름 자체는 고유명으로 보존하고, 이해는 해설 문장으로 보완하는 이중 구조다.
이 두 사례는 같은 음식명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다르게 관리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메뉴판 제작이나 검색 편의가 우선인 표준안은 설명 가능성을 중시하고, 지역 관광과 산업은 이름의 고유성을 지키려 한다. 어느 쪽이 틀렸다고 보기보다, 서로 다른 목적이 같은 이름 위에 겹쳐져 있는 구조에 가깝다.
결국 이름을 정하는 것은 ‘하나의 권위’가 아니라 용도별 체계다
따라서 전통음식의 영어 이름을 둘러싼 혼선은 관리 실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는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공공표준이 필요하고, 지역 차원에서는 오랫동안 축적한 지명과 명성을 고유명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관광공사 같은 유통 기관은 검색성과 안내 효율을 고려하고, 식당과 축제 현장은 실제 소비자 반응을 반영한다. 이름은 하나인데, 그것을 쓰는 제도와 시장은 여럿인 셈이다.
이 구조를 인정하면 해법도 단순한 단일화보다 용도 구분 쪽에 가까워진다. 일반 메뉴명은 중앙 표준을 따르되, 지역성과 권리 관계가 강한 음식명은 원어 표기와 설명형 번역을 함께 두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이미 여러 공공기관이 실제로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전통음식의 영어 이름을 둘러싼 충돌은 표준이 없어서가 아니라, 표준만으로는 지명과 문화적 맥락을 다 담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글과 우리말을 더 나아지게 하려면 이 지점에서 언어를 규칙의 문제만이 아니라 쓰임의 문제로 함께 봐야 한다. 전통음식 이름은 사전 표제어이면서 메뉴판 문구이고, 도시 브랜드이면서 지역의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무엇을 번역하고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름을 공공재로 보고 어떤 이름을 고유명으로 지킬 것인지에 대한 문화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한식명 표준 번역 시안, 영어·중국어에 이어 일본어안 나와(2013-11-05); 문화체육관광부, 외국어로 잘못 표기된 한식 메뉴판 바로잡는다(2016-07-13); 국립국어원, 공공용어 번역(영·중·일) 수용성 연구 – 주요 한식명을 중심으로 -(2017); 한식진흥원, 한식 읽기 좋은 날 ‘올바른 한식메뉴 외국어 표기법’(2021-05-28); 전주시 관광안내, 전주비빔밥 영문 소개 페이지(확인일 2026-10-22); 전주시, 2024년도 본예산 세입예산사업명세서(2024);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Chuncheon Makguksu & Dakgalbi Festival(확인일 2026-10-22);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Chuncheon Myeongdong Dakgalbi Street(확인일 2026-10-22);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김치’의 로마자 표기 답변(2025-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