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이 사라지는가, 이름이 바뀌는가…공예 전승 통계는 무엇을 세고 있나
‘우리나라에서 장인이 점점 사라진다’는 말은 현장의 위기를 짚는 표현으로는 익숙하지만, 통계의 언어로는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공식적으로 세는 대상은 대개 ‘장인’이 아니라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전승교육사, 이수자, 공예사업체, 종사자처럼 서로 다른 범주의 사람과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가 줄었다는 인상만으로 곧장 ‘장인이 사라진다’고 결론내리면, 실제로는 호칭 변경과 제도 개편, 조사 방식 변화가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
질문을 다시 바꾸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지금 사라지는 것은 전통기술 그 자체인지, 그 기술을 잇는 사람의 수인지, 아니면 한 사람에게 기술을 집중해 불러온 오래된 명칭과 통계 방식인지다. 최근 공식 자료들을 대조해 보면, 한국 공예 전승의 문제는 단순한 인원 감소라기보다 ‘누구를 전승자로 볼 것인가’라는 정의와 ‘어떤 경로로 기술을 잇게 할 것인가’라는 제도의 문제에 가깝다.
‘장인’은 익숙한 말이지만, 행정 분류는 아니다
국립국어원 온용어는 ‘장인’을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일상어로는 충분히 통용되는 말이지만, 법과 행정에서 이 단어는 그대로 통계 단위가 되지 않는다. 무형유산 제도 안에서는 보유자, 보유단체, 명예보유자, 전승교육사, 이수자처럼 전승 단계와 역할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는다.
이 차이는 2024년 5월 17일 더 분명해졌다.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으로 기존의 ‘무형문화재’는 ‘무형유산’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국가유산청도 같은 날부터 ‘국가무형문화재’ 대신 ‘국가무형유산’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몇 년 전 자료의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최근 자료의 ‘무형유산 보유자’를 단순 병치하면, 실제 인원 변화와 용어 개편 효과가 뒤섞일 수 있다.
대중이 흔히 쓰는 ‘인간문화재’라는 말도 공식 명칭과는 다르다. 현장의 체감은 한 사람의 기예에 집중되지만, 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 사람만이 아니라 교육자, 이수자, 공동체, 전수교육관, 전시와 활용 사업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넓어져 왔다. ‘장인이 줄었다’는 말이 자주 어긋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라지는 것은 사람 수만이 아니라 전승의 경로일 수 있다
그렇다고 위기가 착시라는 뜻은 아니다. 국가유산청의 최근 업무계획은 오히려 전승 단절 위험을 제도 문서에서 직접 인정한다.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보유자 장기 부재 종목’에 대해 대국민 공모로 예비전승자를 선발·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고, 전승교육사 자격 요건을 넓혀 다양한 전승자를 충원하겠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이 변화는 2026년 5월 17일 시행된 무형유산법 개정과도 이어진다. 법 개정 이유에는 전승교육사의 자격을 이수자로만 제한하던 규정을 정비해, 이수자가 없거나 적은 종목도 보호·육성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가 적시됐다. 다시 말해 문제의 핵심은 ‘장인이 없어졌다’는 한 문장보다, 특정 종목에서 보유자와 이수자만으로는 전승 사다리가 이어지지 않는 데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보유자 숫자 하나가 전체 생태계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보유자가 줄어도 이수자와 일반 전승자, 지역 공동체가 활발히 움직이는 종목이 있고, 반대로 보유자가 있어도 시장 수요와 후속 세대 유입이 약하면 전승은 취약해질 수 있다. 전승 위기는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교육, 소비, 일자리의 문제가 겹쳐 나타난다.
공예 통계는 ‘장인 수’보다 사업체와 종사 구조를 먼저 보여준다
공예 분야 통계도 같은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3년 발표한 ‘2022 공예산업 실태조사’는 국내 공예사업체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는데, 여기서 드러난 것은 장인 명부가 아니라 산업 구조였다. 조사 결과 사업체의 86.0%가 개인 사업체였고, 종사자 수는 대부분 5인 미만이었다. 대표자 연령도 50대 이상 중장년층 비중이 높았다.
이 수치는 왜 ‘장인이 사라진다’는 체감이 반복되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공예가 대체로 소규모 영세 사업 구조 안에 놓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후속 세대가 들어와도 안정적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면, 숙련의 전수는 개인의 의지보다 시장의 조건에서 먼저 막힌다.
더구나 같은 기관의 최근 조사 체계만 보더라도 시계열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2022 공예산업 실태조사는 이전 조사보다 모집단과 업종 범위를 넓히고 조사 설계를 보완해 과거 결과와 직접 비교가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2026년에 공개된 ‘2025 공예문화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역시 목차상 사업체 현황, 종사자, 재무, 교육, 지원제도 등을 중심에 두고 있다. 즉 공공 통계는 애초에 ‘장인이 몇 명 줄었는가’를 세기보다 산업과 생태계의 기반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두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것: 한 사람의 명인에서 공동체와 협업으로
최근 사례를 보면 전승의 주체가 이미 다층화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2025년 12월 경복궁관리소는 근정전 향로의 유실된 뚜껑 재현품을 상시 공개하면서, 제작에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원광식 보유자와 원천수 이수자가 함께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보유자 1인’의 기예만이 아니라, 보유자와 이수자가 함께 국가유산 복원 작업을 수행하는 전승 구조다.
2026년 6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연 완초공예 전시 ‘송둥이 짜시꺄’도 비슷한 신호를 준다. 이 전시는 강화도 석모리의 완초공예를 잇는 18인의 공동체 ‘석모리왕골단’을 전면에 세웠고, 전시 기간에는 국가무형유산 완초장 이수자 박순덕의 시연도 진행했다. 공예의 계승이 더 이상 한 명의 장인을 영웅화하는 방식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마을 단위의 공동체와 이수자,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이 두 사례는 같은 결론으로 모인다. 실제 현장에서는 보유자, 이수자, 공동체, 기관이 함께 작동하는데, 대중의 언어는 이를 여전히 ‘장인’ 한 단어로 묶어 부른다. 그래서 전승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바깥에서는 ‘예전 같은 장인이 안 보인다’는 감각이 커질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몇 명 남았나’보다 ‘어떻게 이어지나’의 질문이다
‘장인이 사라지느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이렇다.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호칭이 바뀐 부분도 있으며, 무엇보다 국가가 세는 단위 자체가 달라 단순한 인상 비교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보유자와 이수자, 공동체와 사업체를 구분하지 않은 채 하나의 숫자로 묶으면, 전승 위기의 성격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공예 전승의 현실을 보려면 보유자 숫자보다 더 아래의 층위를 함께 봐야 한다. 누가 교육을 맡는지, 이수자에게 실제 작업과 판매 기회가 있는지, 영세 사업 구조에서 청년 유입이 가능한지, 공동체 전승이 제도 안에서 어떻게 인정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장인이 사라지는가를 묻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지금의 통계와 제도가 누구를 전승자로 부르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자료: 국립국어원, 온용어 ‘장인’;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유산기본법(시행 2024-05-17);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시행 2026-05-17);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현황 안내; 국가유산청, 2025년 국가유산청 주요업무 추진계획(2025);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22 공예산업 실태조사〉 발표(2023-02-28);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25 공예문화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2026-06-25);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진원, 완초공예 전승 공동체 ‘석모리왕골단’ 전시 개최(2026-06-22);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 주철장 제작한 향로 뚜껑 얹어 ‘근정전 향로’ 상시 공개(2025-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