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개발과 매장유산 보호, 충돌은 어디서 생기나…지연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도시 재개발과 매장유산 보호의 충돌은 대개 공사 도중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사업지가 이미 매장유산 유존지역에 포함돼 있거나, 지표조사와 시굴·정밀발굴 단계에서 유적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설계와 일정, 비용 구조가 함께 바뀐다. 법은 조사와 발굴의 직접 비용을 원칙적으로 사업시행자에게 맡기고, 보존조치가 필요해지면 공사 범위와 건축계획까지 다시 조정하도록 짜여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발굴비 자체보다 금융비용, 설계 변경, 공정 지연 같은 간접비가 더 크게 불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부분은 여전히 사업 내부에서 흡수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구조를 단순화하면 세 단계다. 먼저 사업자는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비용을 부담한다. 다음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현지보존, 이전보존, 기록보존 가운데 어떤 보존조치를 할지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보존 때문에 사업이 늦어지거나 설계가 바뀌면 그에 따른 추가 사업비가 조합 회계와 분담 구조로 넘어간다. 최근 법 개정으로 현지보존·이전보존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는 생겼지만, 재개발 현장에서 가장 민감한 자금조달 비용과 일정 지연 손실까지 자동으로 보전하는 제도는 아니다.
충돌은 발굴 단계보다 그 이전의 협의 단계에서 시작된다
매장유산 제도에서 첫 관문은 땅을 파기 전 조사다. 법상 건설공사 시행자는 필요한 경우 지표조사를 해야 하고, 발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등록 조사기관을 통해 표본조사·시굴조사·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 비용은 기본적으로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낸다.
헌법재판소도 이 구조를 오래전부터 합헌으로 봤다. 2010년 결정에서 헌재는 발굴조사비 부담이 예측 불가능한 국가의 임의 조치가 아니라 사업승인과 발굴허가 과정에서 미리 계획되고 준비될 수 있는 위험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개발로 매장유산 훼손 위험을 만든 주체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 자체는 정당하다는 뜻이다.
다만 현실의 마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발굴비는 견적을 낼 수 있어도, 유적의 가치가 높게 평가돼 현지보존이나 이전보존이 지시되면 공사 동선과 지하층 계획, 구조 설계, 분양 일정이 연쇄적으로 바뀔 수 있다. 제도상 직접 조사비와 보존조치 비용은 규정하기 쉬운 반면, 지연에 따른 이자나 사업기간 연장 비용은 별도 항목으로 구제되기 어렵다.
누가 돈을 내나…직접비는 시행자, 지연비는 대개 사업비로 흡수
비용 부담 구조를 나누면 조금 선명해진다.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같은 직접비는 사업시행자가 부담한다. 보존조치가 내려졌을 때 드는 현지보존·이전보존 비용은 2025년 이후 법 개정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범위에서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또 보존조치 때문에 개발사업 전부를 시행하거나 완료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토지를 매입할 수 있는 장치도 있다.
하지만 재개발 현장에서 더 민감한 비용은 따로 있다. 공사 중단이나 설계 변경으로 생기는 금융비용, 조합 운영비, 분양 일정 지연에 따른 손실은 매장유산법이 직접 메워주는 항목이 아니다. 결국 이 비용은 정비사업의 총사업비로 편입되고, 조합 사업이라면 관리처분과 청산 과정에서 조합원 분담금이나 추가부담금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대법원 판례도 정비사업비는 원칙적으로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되, 조합 방식의 재개발에서는 총회 의결과 정관, 청산 절차를 통해 조합원에게 분담시킬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부담 근거와 범위는 추상적으로 적어서는 안 되고, 정관이나 결의에서 구체적으로 정해져야 한다. 발굴로 늘어난 비용이 자동으로 모두 조합원 몫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 내부 규정과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공평동 사례…보존 비용은 공공이 일부 떠안고, 사업 손실은 설계 인센티브로 상쇄
서울 공평동 1·2·4지구는 이 충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2014~2015년 도심정비사업 발굴조사에서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건물지 108동, 중로와 골목길, 생활유물 1000여 점이 확인됐다. 서울시는 문화재청, 사업시행자와 협의를 거쳐 유구와 유물을 원 위치에 전면 보존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결과 2018년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이 사례의 핵심은 비용을 한쪽이 단순 부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이른바 ‘공평동 룰’을 적용해 매장유산을 최대한 원 위치 보존하는 대신, 보존 면적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해 민간 시행자의 손실을 일부 상쇄했다. 전시관 조성 가이드라인은 공공이 제시하고, 조성된 전시관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구조였다. 직접적인 발굴과 설계 변경 부담은 민간 사업 현장에서 감당하되, 보존에 따른 손실 일부는 도시계획 인센티브와 공공 운영으로 나눠 가진 셈이다.
이 방식은 매장유산이 대규모로 확인됐을 때 무조건 공사를 멈추거나, 반대로 유적을 전부 이전해 치우는 두 극단 사이에 제3의 해법을 만들었다. 다만 이는 서울 도심의 높은 개발이익과 용적률 조정 여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델이기도 하다. 동일한 방식이 모든 재개발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최근 인사동 사례…같은 도심 재개발이라도 보존 판단은 다시 이뤄진다
비슷한 구조는 공평구역 제15·16지구 재개발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20~2021년 이 구역 발굴조사에서 16세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공동우물, 배수로, 주거지와 함께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 일성정시의와 자격루 부품인 주전 등이 확인됐다고 설명한다. 전문가 검토와 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층을 원 위치 보존하기로 결정했고, 이 유적은 2026년 인사도시유적전시관으로 이어졌다.
여기서도 충돌 지점은 같았다. 재개발을 추진하던 민간 사업 부지에서 대규모 유적이 확인되자, 단순 발굴 완료가 아니라 어떤 층위를 어느 범위까지 남길지 결정해야 했다. 결국 설계는 유적 보존을 전제로 다시 짜였고, 결과적으로 새 건물 내부에 유적 전시 공간이 들어갔다. 공평동 룰이 한 차례의 예외가 아니라, 서울 도심 재개발에서 반복 가능한 보존 모델로 확장된 것이다.
다만 이 모델 역시 ‘비용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발굴과 보존으로 늘어난 시간, 건축계획 조정, 전시 공간 확보는 사업비를 키운다. 차이는 그 부담을 전부 현금 보상으로 처리하지 않고, 도시계획 인센티브와 공공 운영 참여로 나눠 가졌다는 데 있다.
청진지구가 보여준 다른 장면…한 번의 발굴이 주변 사업 절차 자체를 바꾼다
청진지구 사례는 충돌이 한 필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청진지구 개발 과정의 발굴조사에서 종로 일대 시전 행랑 유구가 처음 확인됐고, 이 성과가 이후 청진1지구, 청진2~3지구, 청진12~16지구, 청진5지구, 청진8지구 등 주변 개발공사에서 발굴조사를 먼저 실시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곧 한 번의 발굴 성과가 인접 구역의 사업 일정과 사전 조사 비용까지 바꾼다는 뜻이다. 어떤 구역에서는 아직 유적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주변에서 유구가 확인된 순간 그 일대 전체의 예측 비용과 일정이 다시 계산된다. 도시 재개발과 매장유산 보호의 충돌이 단지 ‘발견된 곳 대 보호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단위의 계획 위험으로 번지는 이유다.
제도는 보완됐지만, 가장 큰 공백은 ‘지연의 가격’이다
최근 제도는 사업자의 부담을 일부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국가유산청은 2024년과 2025년 주요업무 계획에서 생활밀접형 건설공사 진단조사 지원 확대, 소규모 발굴조사 국가지원 한도 상향, 보존조치 비용 지원 근거 마련을 제시했다. 법 개정으로 현지보존·이전보존 비용 지원 조항도 들어왔다.
그렇다고 충돌의 핵심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공공 지원은 주로 조사비나 보존조치비 같은 직접비에 집중돼 있다. 반면 대규모 재개발 조합이 체감하는 위험은 대출 이자, 공사비 상승, 분양 일정 변경, 조합 운영기간 장기화처럼 시간에 비례해 커지는 비용이다. 이 영역은 여전히 사업시행자와 조합 내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도시 재개발과 매장유산 보호의 진짜 충돌은 ‘보존하느냐 개발하느냐’의 이분법보다, 보존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계산서에 반영하느냐에 가깝다. 공평동과 인사동 사례는 공공이 운영과 인센티브를 맡고 민간이 설계를 조정하는 절충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모든 현장이 서울 도심처럼 높은 개발이익으로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쟁점은 발굴비 지원을 넘어서, 일정 지연과 설계 변경으로 생기는 간접비를 어떤 기준으로 공공과 사업 주체가 나눌지에 모일 가능성이 크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2026년 현행); 국가법령정보센터,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6년 현행); 국가법령정보센터, 구 문화재보호법 제44조 제7항 위헌소원 결정;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업비부담금 판례; 서울역사박물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소개; 서울역사박물관, 인사도시유적전시관 소개; 서울역사박물관, 소식지 「발굴, 그리고 기록」(2021); 국가유산청, 2024 국가유산청 주요업무 추진계획; 국가유산청, 2025년 국가유산청 주요업무 추진계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