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밖으로 나온 123점의 조각…서울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될 수 있을까

서울의 공원과 광장이 거대한 야외 전시장으로 바뀐다.
서울시는 8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열린송현녹지광장과 뚝섬한강공원, 서울숲, 서울어린이대공원, 풍납토성 동성벽 일대 등 5곳에서 제3회 서울조각페스티벌을 연다. 올해 주제는 ‘예술의 도시, 산들바람 타고’로, 서울조각상 입선작과 초청작 등을 포함해 총 123점의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주요 축제 프로그램은 9월 4일까지 진행되지만 야외 조각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행사의 중심은 열린송현녹지광장이다. 이곳에서는 제3회 서울조각상 입선작 15점과 아트디렉터 초청작 21점 등 36점을 만날 수 있다. 서울조각상에는 모두 110점이 출품됐고, 최종 선정된 작가들에게는 각각 2,500만원의 작품 제작비가 지원됐다. 고정수, 김영원, 배형경, 정현 등 원로 조각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하지만 이번 축제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작품의 숫자보다 전시가 놓이는 장소다.
조각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출근길과 산책길, 한강공원과 도심 광장에서 우연히 작품을 만난다. 전시장을 찾아간 관람객이 아니라 도시를 이용하는 시민 전체가 잠재적인 관객이 되는 셈이다.
서울시가 이번 행사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축제 기간에는 조각 전시뿐 아니라 조각놀이터와 체험 프로그램, 거리공연, 야외영화 등도 함께 운영된다. 전시는 상시 관람할 수 있고, 주요 프로그램은 저녁 시간까지 이어진다.
미술관 밖의 예술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공원과 광장, 지하철역, 건물 앞에서 조각을 만나는 일은 이미 익숙하다. 공공건축물 주변에 설치된 미술작품이나 도시재생 사업과 결합한 벽화, 광장에 설치되는 대형 조형물도 넓은 의미에서는 공공미술의 영역에 들어간다.
그런데 최근 공공미술은 한 단계 다른 질문을 받고 있다.
작품이 공공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공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도시 곳곳에 조각을 설치하는 일은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미술관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특정 시간에 맞춰 전시장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다. 평소 현대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도 산책을 하다가 작품을 마주칠 수 있다.
이런 우연한 만남은 미술관과는 다른 관람 경험을 만든다.
전시실 안에서는 작품이 중심이지만 야외에서는 작품과 도시가 동시에 보인다. 건물과 나무, 보행자, 자동차, 날씨와 빛이 작품의 일부처럼 작용한다. 같은 조각이라도 광장 한가운데 놓였을 때와 숲속에 놓였을 때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 조각은 야외 공간과 궁합이 좋은 장르다.
회화처럼 벽을 필요로 하지 않고, 관람객이 앞과 뒤, 옆을 돌며 볼 수 있다. 작품의 크기와 재료에 따라 주변 공간의 분위기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이번 서울조각페스티벌이 열린송현녹지광장과 한강공원, 서울숲 등 성격이 다른 장소를 활용하는 것도 이런 특성과 연결된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은 경복궁과 인사동, 북촌 사이에 위치한 도심의 넓은 열린 공간이고, 뚝섬한강공원은 시민의 여가와 운동이 중심이 되는 장소다. 서울숲과 어린이대공원은 자연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으며, 풍납토성 일대는 역사적 장소성을 갖고 있다.
같은 ‘야외 전시’라고 해도 작품과 공간이 맺는 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을 얼마나 많이 설치했느냐보다 ‘왜 이 작품이 이 자리에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지다.
도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른바 ‘조형물 공해’라는 비판도 있었다. 건축물 앞이나 공공공간에 작품을 설치했지만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거나 시민에게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면서 장식물처럼 남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이 실패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장소와 자동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크고 화려한 조형물을 설치한다고 해서 시민이 예술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좋은 공공미술은 그 장소를 다시 보게 만든다.
매일 지나던 광장을 잠시 멈춰 바라보게 하거나, 익숙한 공원의 풍경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고, 그 공간의 역사와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서울조각페스티벌의 성패도 단순한 관람객 숫자로만 판단하기 어렵다.
123점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노출됐는지보다 시민이 작품 앞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작품을 통해 주변 공간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는지, 축제가 끝난 뒤에도 조각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이번 행사에는 시민 참여형 요소도 강화됐다.
서울시는 조각놀이터와 체험 프로그램, 야외영화, 거리공연 등을 통해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전시에서 벗어나 시민이 머무르고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무료로 운영된다는 점도 접근성을 높이는 요소다.
다만 여기에도 고민할 지점은 있다.
공공미술이 축제와 결합할수록 작품보다 ‘즐길 거리’가 더 앞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이 사진을 찍기 좋은 배경이나 행사장의 장식으로 소비된다면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는 의미도 약해질 수 있다.
최근 도시축제와 전시에서 ‘포토존’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장치가 됐다. SNS에 사진이 공유되면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가 생기고, 작품에 관심이 없던 시민도 전시장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진 한 장을 찍고 지나가는 경험에서 끝날 것인지, 작품의 재료와 형태, 작가가 던진 질문까지 관심이 이어질 것인지가 중요하다.
공공미술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과 작품성을 낮추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공간에 놓이는 만큼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해설, 작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이번 축제에서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신진 작가와 원로 작가를 함께 보여주는 구조다.
서울조각상 입선작을 통해 새로운 작가의 작품 제작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한국 조각계에서 활동한 원로 작가의 작품도 초청한다. 젊은 작가의 실험과 기존 조각의 흐름을 한 공간에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은 단순한 야외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서도 야외 전시는 중요한 기회다.
조각은 회화보다 제작비와 보관비, 운송비 부담이 큰 장르다. 특히 대형 작품은 개인 작가가 전시 기회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공공기관이 제작비를 지원하고 넓은 야외 공간을 제공하면 작가는 평소 시도하기 어려웠던 규모와 재료를 실험할 수 있다.
이런 지원이 일회성 축제에서 끝나지 않고 작가의 다음 작업으로 연결되는지도 중요하다.
도시가 예술을 지원하는 방식은 작품을 구매하거나 전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시민이 그 작품을 반복해서 접할 수 있는 구조까지 만들어야 문화 생태계로 이어진다.
서울조각페스티벌은 올해 서울아트위크와도 시기가 맞물린다.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울 전역 130여 개 공·사립 미술관과 갤러리가 참여하는 서울아트위크가 열리고,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등 대형 미술행사도 이어진다. 서울이 같은 기간 국제적인 미술시장과 시민 중심 공공미술을 동시에 보여주는 셈이다.
여기서 서울이 지향하는 ‘예술도시’의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유치하고 해외 컬렉터가 몰리는 것도 도시의 문화 경쟁력을 보여주는 한 방식이다. 그러나 시민이 일상에서 예술을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비싼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시장과 무료로 즐기는 공공미술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도시의 문화생태계를 구성한다.
좋은 예술도시는 유명한 미술관 몇 곳을 가진 도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출근길 광장에서 작품을 만나고, 아이와 공원에서 조각을 보고,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우연히 작품 앞에 멈춰 설 수 있는 도시 역시 예술도시의 모습일 수 있다.
제3회 서울조각페스티벌은 그런 가능성을 시험한다.
123점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느냐다.
축제가 끝난 뒤 시민에게 남는 것이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 많았다”는 기억뿐이라면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표현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익숙한 공원과 광장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평소 미술관을 찾지 않던 시민에게 예술을 만나는 첫 경험을 제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술관 밖으로 나온 예술의 성공은 결국 작품이 얼마나 멀리 이동했는가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서울이 진정한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될 수 있을지도 그 지점에서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