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문화정책

영상산업 상생협약, 현장 계약서는 달라질까

영진위·배우노조·스태프노조, 인재 정보 공유와 고용 확대 협력

영화진흥위원회와 배우·스태프 노동조합이 영상산업의 고용 확대를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제작 현장과 인력을 연결하고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협약의 골자다.

그러나 이번 협약만으로 배우와 스태프의 계약서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공개된 협약 내용에는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와 임금 기준, 노동시간, 체불 방지 절차가 포함되지 않았다. 상생협약의 성과는 인재 정보 공유가 실제 출연·고용으로 연결되는지, 정책 협력이 계약조건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지난 8월 27일 영상산업 상생 협력을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한상준 영진위원장과 송창곤 방송연기자노조 사무총장,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 등이 협약식에 참석했다.


제작 수요와 배우·스태프 인재풀 연결


세 기관이 합의한 협력 분야는 네 가지다. 영상 제작과 캐스팅 지원을 위한 조합원 정보 공유, 배우·스태프의 안정적인 고용환경 조성, 영상문화 발전을 위한 공동사업과 홍보, 기타 상호 협력이 필요한 사업이다.

협약의 직접적인 목표는 제작사가 필요로 하는 인력과 배우·스태프를 연결하는 데 있다. 각 노동조합이 보유한 조합원 정보와 인재풀을 활용해 캐스팅과 전문 인력 매칭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 배우와 스태프가 겪는 첫 번째 문제는 일자리 단절이다. 한 작품이 끝난 뒤 다음 계약까지 공백이 길어지고, 경력과 기술을 갖춰도 새로운 제작진과 연결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정보 부족과 폐쇄적인 인력 충원 구조도 구직 기회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영진위가 공공기관의 정보망을 제공하고 두 노동조합이 조합원 정보를 연계하면 구인·구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제작사는 필요한 인력을 보다 넓게 찾을 수 있고, 배우와 스태프는 일부 인맥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개인정보를 공유하려면 당사자 동의와 이용 범위가 명확해야 한다. 제작사에 제공하는 정보의 항목과 보유 기간, 제3자 재제공 여부, 정보 삭제 절차도 정해야 한다. 인재풀이 공개된 구인시장으로 기능하려면 캐스팅과 채용 결과를 조합원이 확인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영화진흥위원회가 8월 28일 공개한 영상산업 상생협약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협약 체결만으로 임금과 노동시간은 바뀌지 않아


이번 협약은 배우와 스태프의 고용 기회를 확대하는 협력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개별 제작 현장에서 적용되는 계약조건을 직접 변경하는 규정은 아니다.

공개된 협약 내용에는 표준근로계약서 적용률과 최저 보수, 촬영시간 상한, 연장근로수당, 임금 지급일에 관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 제작 중단이나 일정 연기로 계약기간이 바뀌었을 때 보수를 어떻게 정산할지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배우와 스태프는 계약 관계에서도 차이가 있다. 영화 스태프 가운데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인력은 근로계약과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는다. 배우는 출연계약의 내용과 업무 형태에 따라 법적 지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하나의 협약으로 두 집단의 계약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배우에게는 출연료와 촬영일수, 추가 촬영 보수, 초상·실연 이용 범위가 중요한 계약조건이다. 스태프에게는 임금과 노동시간, 휴게시간, 계약기간, 4대 보험 적용 여부가 핵심이다. 공동협약이 현장 노동환경을 바꾸려면 직군별 계약구조를 구분한 후속 기준이 필요하다.

세 기관이 밝힌 ‘안정적인 고용환경’도 측정 가능한 항목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재풀 등록 인원과 채용 연계 건수만 집계하면 단기 고용 확대는 확인할 수 있지만, 일자리의 질은 판단하기 어렵다. 계약기간과 보수, 체불 여부, 표준계약서 사용률까지 함께 공개해야 협약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


이미 마련된 표준보수지침, 현장 적용이 과제


영화산업에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이미 마련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은 노사정 협의를 거쳐 2025년 10월 영화근로자 표준보수지침을 공표했다.

이 지침은 영화근로자의 경력과 직무, 근무기간, 작업시간, 급여 수준 등을 검토해 합리적인 보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관련 연구는 급여와 작업시간, 세금 징수, 4대 보험 가입, 국내외 보수제도를 함께 분석했다(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표준보수지침은 영화 현장에서 임금을 결정할 때 참고할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나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실제 계약에 적용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작비가 부족하거나 촬영 일정이 불안정하면 계약 단계에서 정한 보수와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상생협약이 기존 제도와 연결된다면 인재 매칭 단계부터 표준계약서와 표준보수지침을 안내할 수 있다. 영진위가 지원하는 제작사업에는 계약서 제출과 보수지침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계약 전 상담과 분쟁 발생 시 대응 창구를 제공할 수 있다.

배우 계약에 대해서도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 캐스팅 기회 확대만 강조하면 낮은 출연료나 불명확한 권리 귀속을 감수하는 계약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출연계약서에 촬영 횟수와 추가 촬영 조건, 홍보활동 범위, 영상의 2차 이용 기준을 명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잇단 협약, 하나의 실행체계로 묶어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16일 제작사·매니지먼트사와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정부와 제작사, 매니지먼트사가 제작 위축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에 나선 데 이어 영진위와 배우·스태프 노동조합까지 논의에 참여한 것이다.

두 협약은 참여 주체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 7월 협약은 영화 제작을 늘리기 위한 산업 측 협력에 무게를 뒀다. 8월 협약은 제작 수요와 인력을 연결하고 고용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작 활성화와 노동환경 개선은 분리하기 어렵다. 제작 편수가 늘어도 불안정 계약과 임금 체불이 반복되면 숙련 인력이 현장을 떠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조건만 높이고 제작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제작사와 노동자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정부와 영진위는 두 협약을 하나의 실행계획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 배우와 스태프 노동조합이 함께 참여하는 점검기구를 구성하면 제작 확대와 고용의 질을 동시에 살필 수 있다.

평가 기준도 구체화해야 한다. 신규 제작 편수와 구인 등록 건수, 실제 채용 인원, 표준계약서 사용률, 보수지침 준수율, 임금 체불과 노동시간 분쟁 건수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면 협약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협약에는 법적 강제력이 따르지 않는다. 참여 기관이 공동사업을 만들고 예산과 담당 조직을 배치하지 않으면 선언에 머물 수 있다. 영진위가 밝힌 정책적 지원도 사업명과 대상, 시행 시기, 재원 규모가 공개돼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

영상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작품 수와 흥행 실적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배우와 스태프가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기간을 견딜 수 있고, 계약한 보수와 노동시간을 보장받아야 숙련된 인력이 산업에 남는다.

이번 협약은 제작 현장과 인력을 공공 체계 안에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음 단계는 연결된 일자리가 적정한 계약과 보수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인재풀의 규모보다 그 안에서 체결된 계약의 질이 상생협약의 성과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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