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태프는 작품 사이 공백기를 어떻게 버티나…고용보험과 노동계약의 실제 구조
영화 스태프가 작품과 작품 사이 공백기를 버티는 제도적 장치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작품 단위 노동을 서면으로 남기는 노동계약, 다른 하나는 그 계약을 바탕으로 피보험 기간을 쌓아 실업 상태에서 급여를 받는 고용보험이다. 다만 이 안전망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스태프가 근로자로 채용됐는지,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맺은 예술인으로 분류되는지, 서면 계약과 보험 신고가 실제로 이뤄졌는지에 따라 공백기의 무게가 크게 달라진다.
이 점은 오래전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2013년 공개한 2012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영화 스태프의 평균 작품 참여기간은 약 6개월로 제시됐다. 조사 결과는 월급만 떼어 보면 최저임금보다 반드시 낮다고 단정하기 어렵더라도, 작품이 끝날 때마다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는 구조 때문에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고 짚었다. 공백기를 견디는 문제는 개인의 생활관리보다 먼저, 프로젝트 산업의 고용 구조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계약서가 있어야 공백기가 제도 안으로 들어온다
영화 현장에서 공백기를 제도적으로 다루는 출발점은 계약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0년 표준근로계약서 개발을 거쳐 2011년 영화제작지원 사업부터 영화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의 의무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표준계약서는 제작, 연출, 촬영, 조명, 미술, 의상, 분장, 현장편집 등 제작사가 고용하는 여러 스태프 직군을 대상으로 설계됐다.
이 계약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서명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작품별 계약기간, 임금액과 지급 방식, 근로시간, 시간외수당, 4대 보험 같은 항목이 문서로 남아야 이후 임금체불 분쟁이나 보험 자격 확인이 가능해진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9년 말에도 노사 협의를 거쳐 ‘2020년 영화산업 근로 표준계약서’를 수정 게시했다. 표준계약서가 반복해서 손질된 것은 영화 현장의 계약 관행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장에서는 이 서면계약이 공백기를 직접 없애주지는 못한다. 대신 작품과 작품 사이를 잇는 최소한의 기록이 된다. 어느 작품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보수를 받았는지, 보험이 신고됐는지가 남아야 다음 작품이 없을 때 실업급여나 각종 권리 구제를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은 버팀목이지만, 누구나 바로 닿는 제도는 아니다
고용보험의 경로는 영화 스태프의 법적 지위에 따라 갈린다. 제작사가 스태프를 근로자로 고용했다면 일반 근로자 고용보험 체계가 적용된다. 반대로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맺고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면 예술인 고용보험 경로가 열린다. 고용노동부와 고용보험 안내에 따르면 예술인 고용보험은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됐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영화 같은 문화예술 분야의 프로젝트형 노동을 제도 안에 넣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다만 수급 요건은 분명하다. 이직일 이전 24개월 동안 피보험 단위기간이 통산 9개월 이상이어야 하고, 적극적인 재취업 활동을 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비자발적 이직이어야 한다. 법령은 예술인의 특성을 반영해 일정한 소득 감소로 인한 이직도 수급 자격 판단 대상에 포함하고, 둘 이상의 소액 계약을 합산해 적용 기준을 충족하는 길도 열어뒀다.
문제는 제도가 생겼다고 곧바로 현장 전부가 포괄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계약이 구두로만 이뤄지거나, 작품별 신고가 누락되거나, 짧은 계약이 흩어져 있어 피보험 기간을 쌓기 어려우면 공백기 안전망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 스태프에게 고용보험은 작품이 끝난 뒤에 갑자기 등장하는 복지가 아니라, 촬영에 들어가기 전 체결한 계약과 촬영 중 이뤄진 보험 신고가 누적돼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제도에 가깝다.
보험만으로는 부족해 교육수당과 보수 기준 논의가 따라붙었다
실제 현장은 보험 하나로 버티기 어려웠다. 2012년 실태조사에서 표준근로계약서 활용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2.7%에 그쳤고, 고용보험 가입률도 29.1%로 낮았다. 작품 단위의 도급성 지급 관행, 낮은 급여 수준, 불규칙한 고용이 겹치면서 보험 가입 자체가 흔치 않았다는 뜻이다. 임금체불 경험 응답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계는 공백기를 메우는 보조 장치로 교육훈련 지원을 함께 운영해 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21년 모집한 현장영화인 직업훈련 지원사업은 재교육과 함께 훈련수당을 지급해 산업 내 이탈을 막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코로나19로 촬영과 개봉이 멈췄던 시기에는 이 같은 직업훈련 지원이 단기 실업 상태의 프리랜서와 현장 영화인에 대한 긴급 완충장치로 확대되기도 했다. 최근 사업 소개에서도 현장영화인 교육훈련 인센티브는 별도 사업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2025년 10월 처음 공표된 영화산업 표준보수지침은 다른 층위의 문제를 건드린다. 표준보수지침은 실업급여 제도는 아니지만, 작품 안에서 받는 보수의 기준을 직군별·직급별로 정하려는 시도다. 작품 사이 공백기를 견디는 힘은 결국 작품 안에서 얼마를 받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일했는지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보험과 계약만이 아니라 보수 기준 논의가 함께 등장한 것이다.
공백기를 견디는 핵심은 ‘프리랜서 개인기’가 아니라 기록 가능한 노동구조
영화 스태프가 작품 사이를 버티는 방식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개인 저축이나 인맥에만 달려 있지 않다. 제도적으로 보면 첫째는 작품별 계약을 서면으로 남기고, 둘째는 그 계약이 실제 고용보험 신고로 이어지며, 셋째는 실업급여가 닿지 않는 구간을 교육훈련 수당이나 보수 기준 개선 같은 보조 장치가 메우는 구조에 가깝다. 공백기는 영화산업의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제작 방식 자체에서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안전망도 작품 바깥이 아니라 작품 계약 안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 구조는 만화와 웹툰 같은 다른 문화산업을 볼 때도 시사점이 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창작자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는 시장이 커져서가 아니라, 프로젝트가 세분화되고 책임은 외주화되는데 계약과 사회보험, 보수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 스태프의 공백기는 그 간극이 생활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산업협력위원회, 2012년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발표(2013.01.31);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영화산업 근로 표준계약서’ 수정 게시(2019.12.31); 영화진흥위원회, [KOFIC 연구 2025-05] 2024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2025); 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영화산업 표준보수지침(2025.10.01); 고용보험,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열람 2026.10.22); 국가법령정보센터,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104조의5·제104조의8(시행 2026년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공고 2021년 제1차 현장영화인 직업훈련 지원사업 교육생 모집공고(2021.03.12)
